신의 탄생 02

002

by DAR LIM

한울은 늘 생각했다. 죽으면 어떨까. 모든 게 끝일까. 혹은 새로운 시작일까. 천국과 지옥은 정말로 있을까.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도 체험할 수 되나? 사후세계에 철학이 있다거나 이승과 저승을 구분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비관론자 혹은 불멸주의자와는 더더욱 인연이 없었다.


‘죽음이란 무엇인지’ 따위를 진지하게 고찰하기에 한울은 너무 단순했다. 늘 명쾌하게 떨어지는 일을 선호하는 한울이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도 단순한 호기심일 뿐 깊게 들어가지 않았다. 한울은 그저 죽은 다음 어떤 일을 겪을지 궁금할 뿐이었다. ‘엄마, 하늘나라라는 게 정말로 있어요? 천사도 있어요?’하는 어린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의문과 다를 것 없었다.


한울에게 죽음은 일상이었다. 매일 보고 또 봤다. 수십, 수백 번을 반복해도 도통 질리지 않았다. 죽음은 일종의, 아니, 유일한 유희였다. 한울은 눈앞에서 꺼져가는 가련한 영혼들을 몹시도 부러워했다. 자신이 몹시 궁금해하는, 알고 싶어 미칠 것 같은 궁금증을 알게 될 테니까. 그들에게 직접 물어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었다.


그렇다고 시답잖게 손목을 긋거나, 목을 매달거나, 절벽에서 다이빙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소하나 알 도리 없는 의문이었는데, 막상 눈앞에 닥치니 조금 많이 후회 되었다. 적어도 한울의 상상 속 가지 중 이처럼 좆같은 경우는 없었다.


“뭐? 다시 말해 봐. 내가, 뭐?”


귀에 이상이 있지는 않았다. 한울은 분명 제대로 들었고 의미 또한 이해했다. 그렇기에 눈앞에 있는 짐승이 내뱉은,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한울을 제발 농담이기를 빌었다. 일생일대의 호기심의 실체가 고작 이딴 것이었다면 회의를 느낄 것 같았으나 짐승은 아무렇지 않게 같은 말을 반복했다. 한울이 어떤 심정인지 조금도 모르는 그였다.


“만 번째 신이 되셨다고요.”

“아니, 그거 말고 앞에.”

“인간을 초월한 존재라는 거요?”

“더 앞에.”


짐승의 눈썹이 슬쩍 올라갔으나 그뿐이었다. 짐승은 곧 한울이 눈을 부라리며 으르렁거리는 원인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뭐가 문제인지 모른다는, 아리송해하는 얼굴은 덤이었다.


“제물로 뽑혔다는?”

“그래! 시발! 제물? 이제는 하다 하다 못해 제물? 그것도 죽어서?”

“예로부터 영혼 중 제물을 뽑아 신을 만들었습죠. 종말을 막으려면 그에 따른 희생양이 필요한 법이지요. 신은 그러한 일을 하는 자입니다. 억울함을 풀어주고 풀 수 없는 한을 몸으로 받는 거죠.”


이마에 굵은 힘줄이 솟은 한울은 순식간에 짐승의 멱살을 잡았다. 눈을 희번덕 뒤집으며 짐승을 앞뒤로 흔드는 모습은 흡사 미친 놈이었다. 한울을 입에 거품이라도 물고 싶은 심정이었다.


“미쳤냐? 내 몸 건사하기 힘든 세상에서 돌았다고 남을 도와? 아니지, 아니야. 이건 그냥 호구하라는 거잖아! 신인데? 무려 신이라고! 다른 건? 진짜 그게 끝이야? 당장 아니라고 말해, 이 짐승 새끼야.”

“아, 아니옵니다! 그럼요. 아니고말고요.”


한울은 협박을 못 이긴 대답이라고 생각했으나 아니었다. 일말의 기대를 품으며 도대체 뭐가 아니냐고 눈으로 물어보자, 가련한 짐승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한울의 귀가 솔깃해지는 말이었다.


“권능을 쓸 수 있습죠. 무려 신이신데! 산을 쪼개고 바다를 가를 수도 있으시죠. 신께서 바라는 모든 일이 이루어지나이다.”


오호? 그렇단 말이지? 세상이 내 마음대로라고?


한울은 그제야 힘주어 잡았던 멱살을 놓았다. 제물이니 뭐니 하는 건 마음에 안 들었지만, 권능은 달게 느껴졌다. 산을 쪼개고 바다를 가를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보고 싶은 일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내 세상이라, 그거 마음에 드네.”


한울이 뜻하지 않은 능력에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권능이 무엇인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대가가 따르는 것인지 등은 머릿속에 없었다. 어차피 죽은 목숨이니 무언들 두려울까. 또 죽는 일이 생긴다 해도 죽음일 뿐이었다. 섬뜩하게 웃는 한울을 보던 짐승은 본능적인 위기감을 느꼈는지 한 마디 더 보태었다.


“단 억울한 자들의 한을 풀어주거나 악인에게 천벌을 내리실 때만 쓰실 수 있사옵니다. 신이란 무릇 의무와 소명을 다해야 하는 바, 뜻을 받자와 옳은 일을 바라시옵소서.”

“뭐, 시발?”


어이가 없었다. 결국 푸닥거리를 들어주고 남들 똥구멍이나 닦으라는 거 아닌가.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던 한울이 인상을 구기자 백자기만큼 하얀 얼굴에 주름이 졌다. 기껏 신이 되었는데 또다시 타인에게 휘둘려야 한다면 어불성설이었다. 살아있는 것보다 끔찍했다.


“장난하는 거지, 응?”

“아이고 그 무슨 시원섭섭한 소리십니까. 이 해태, 결단코 허튼소리는 하지 않는 주의입니다.”

“시원섭섭한 소리라니! 내가 할 소리다! 내가 섭섭하다고! 이! 이……! 그러고 보니 너는 정확히 무슨 동물이냐? 그걸 알아야 욕이라도 할 거 같은데.”


화가 머리 끝까지 끓어 올랐던 한울은 눈앞에 놓인 짐승을 위아래로 훑더니 의아한 듯 물었다. 얼굴은 언제 화를 냈냐는 듯 의연해져 있었다. 평온한 얼굴은 화가 무언지 모르는 사람 같기도 했다.


짐승은 욕을 하려고 종을 물어보는 새 주인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어쩌다 이런 사람이 새 주인으로 내려졌는지도 의문이었다.


현자님들은 무얼 하면 저런 망나니를……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주인인데 예는 차려야지, 암.


짐승은 오늘이 주인과 첫 대면이라는 사실을 상기했다. 첫 대면이 좋지 않으면 두고두고 고생이었다. 오랜 세월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지혜였다.


“이 해태는 짐승이 아니옵니다. 엄연히 신을 모시는 신수이옵죠. 짐승과는 비교할 수도 없고 인간보다도 높은 존재이지요.”

“그럼 나보다 높아?”

“제가 인간보다는 높지만 그렇다고 신보다 높지는 않지요.”


해태는 한울의 관자놀이 부근에서 꿈틀거리는 가느다란 실핏줄을 놓치지 않았다. 이번에는 눈칫밥 신세가 확정이었다. 한울의 기분을 전광석화로 읽어낸 해태는 최대한 알랑거렸다. 신이 기분 좋아야 자신도 편하고, 그래야 만사가 평화로웠다. 인간은 천벌을 두려워한다고 했던가. 해태는 신의 변덕이 세상 무엇보다 두려웠다.


“그건 기분이 좋네. 그럼 너는 내 마음대로네?”

“그, 그럼요. 신수는 신의 마음대로…… 이지요?”


불안했던 해태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끝을 올렸다. 한울은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해태의 기분 따위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설령 알았어도 쌀 한 톨조차 고려하지 않을 위인이었다.


“내 마음대로인 네가 내 뜻을 거스르면 어떻게 되겠어?”

“아, 안 되지요?”

“당연하지. 그러니까 남 뒤치다꺼리 따위 안 하고도 권능을 쓸 수 있는 방법을 말해.”

“아이고! 그건 안 됩니다! 권능은 현자님들이 주시는 힘이지요. 한낱 신수가 이리 뚝딱! 저리 뚝딱! 할 일이 아니지요.”


해태는 얼마나 놀랐으면 양팔까지 허우적거리며 소리쳤다. 천인공노할 소리였음에도 한울을 모르는 듯했다. 한울은 마음대로 되는 것 하나 없어 짜증이 치밀었다. 반대로 해태는 제멋대로인 주인을 어떻게 달래야 하나 고민했다. 땀이 뻘뻘 흐르고 가슴이 답답하니 앞으로의 고난이 눈에 훤했다.


지금까지 만난 주인들은 하나같이 권능에 감사해하고 허투루 쓰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신이 되었다는 사실에 감격하여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주인도 있었다. 한울처럼 권능을 홍두깨처럼 휘두르려는 이는 결단코 없었다. 과연 신이 될 그릇이기는 한지, 자질을 운운하고 싶었으나 애석하게도 신을 판별하는 일은 세상을 관장하고 다스리는 현자들이었다.


“다시 말해 볼래?”


헉! 해태는 마른침을 삼켰다. 한울은 원하는 대답을 들을 때까지 콩 볶듯 달달 볶을 생각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리던 해태는 눈을 꾹 감으며 외쳤다. 이제는 될 대로 되라지!


“권능의 발동 조건은 결국 한 가지예요. ‘억울한 자들을 도우라.’ 타인에게 희생한다는 마음이 깔리면 어떠한 방식이든 상관 없습죠! 요는 남을 돕는다는 명분만 있으면 뭐든 주인님 마음대로이십니다!”


아이고, 아이고, 이를 어쩐다.


강압을 못 이겨 내뱉기는 했지만 해태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거짓을 고하거나 사실을 부풀리지는 않았으나 소위 말하는 편법이었다. 해태는 한울의 근본이 선하지 않음은 짐작하고도 남았다. 과연 권능으로 무얼 할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필시 되먹지 못한 몹쓸 짓이리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해태는 애꿎은 머리카락만 쥐어 뜯었다. 이건 제 잘못이 아니었다. 저런 영혼을 신으로 올린 현자들 잘못이었다. 해태는 어떻게든 제 몸을 건사하려고 애먼 합리화를 했지만 반은 틀렸다. 일은 현자들이 벌렸으나 그걸 수습하는 건 어디까지나 제 몫이었다.


공명정대하게 주인을 보필해야 할 해태이건만,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주인이 공정하지 못하거나 한쪽으로 치우쳐 졌을 때 저울 역할을 하는 것이 해태였다. 해태는 처음으로 존재 의의에 의문을 두며 타들어 가는 속을 애써 삭였다.


그때였다. 생각에 잠겼던 건지 조용했던 한울이 양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화사함이 넘치는 천진난만한 미소에도 해태는 소름이 돋았다. 저리 어여쁜 미소가 어쩜 이리도 두려울까. 해태는 동물이 아니라고 하였으나 지금 느낀 감각은 본능적인 위험 신호였다. 동물적인 감이었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해태. 남도 돕고 내 욕구도 채울 테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네? 신이라는 자리, 꽤 마음에 들어.”


얼굴에 구름 한 점 없는 한울은 간절하게 바라던 장난감을 손에 넣은 어린아이와 같았다. 너무도 순수하고 악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렇기에 더욱 잔인한 미소였다.


해태는 한울의 머릿속을 알고 싶지 않았다. 더는 저 요망한 입에서 어떠한 말도 떨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일생일대의 소원에 비견할 정도였으나 애석하게도 바람은 저 멀리 날아가리라. 다시금 눈을 꽉 감은 해태는 앞으로 세계가 어찌 될지 걱정했다. 확신할 수 있는 건 어떠한 방향으로 변하든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계가 되리라는 점이었다.


“게임을 하자. 최고로 재미있는 살인 게임이 될 거야.”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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