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
어두운 방 안, 모니터의 환한 불빛만이 주변을 밝혔다. 타다닥, 타다닥. 키보드 타격음이 제법 시끄러웠지만 시윤은 신경 쓰지 않았다. 코를 찌르는 악취도 뒷전이었다. 시윤은 벌써 열두 시간 이상을 가만히 있었으나 일어날 기미는 없었다.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세계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죽어서도 벗어나지 않으리라.
“시발, 제발 좀 죽으라고. 존나 뻐기네.”
말이 없는 것인지, 말을 못하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조용하던 시윤의 입에서 짧지 않은 욕설이 흘러나왔다. 오늘 내뱉은 첫마디였다. 시윤은 어둠에 가려진 미간을 구기며 키보드 위에 놓인 손을 더욱 빠르게 놀렸다. 방을 울리는 소음 또한 거세졌다. 뼈만 남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앙상한 손목이 내는 힘 치고는 제법 거셌다.
“아, 거기, 아니! 악!”
다급하게 무언가 외치던 시윤은 급기야 머리카락을 거칠게 쓸어 넘겼다. 얼굴은 처참할 정도로 구겨졌으나 보는 이라고는 존재감 짙은 어둠뿐이었다. 길게 한숨 쉰 시윤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온몸으로 짜증을 드러냈다.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불만인 모양새였다. 움직임에 따라 언뜻언뜻 손목이나 팔 안쪽이 드러났는데 묘하게도 푸른 빛이었다.
“시발, 이걸 또 처음부터 깨라고? 개 같은 새끼들. 게임을 만들어도 꼭 좆같이 만들어요.”
온종일 자리에 앉아 수십 번을 시도했으나 원하는 것은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퀭한 눈을 부릅뜨며 오늘만큼은 꼭 끝내리라고 마음 먹어도 손은 의지를 반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몸이 의지를 따라오지 못했다. 늘 이런 식이었다. 정말로 바라는 것은 손에 닿을 듯하면서도 절대로 잡히지 않았다. 삶도, 가족도, 인간관계도, 하다못해 고작 게임까지도. 시윤에게 허락된 건 무엇 하나 없었다.
남들은 눈만 깜빡여도 쉽게 얻는 것들을 시윤은 피를 흘리며 발악하고 진창 굴러야만 손끝 한 번 닿았다. 완전히 쥐고 놓지 않으려면 그보다 더한 것, 심지어는 목숨을 걸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렇게 간신히 얻었어도 빼앗기고, 망가지고, 잃어버리기 일쑤였다.
참으로 불공평한 세상이 아닌가.
왜 나만. 왜 하필 내가. 어째서 나를.
게임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지친 시윤은 키보드 옆을 주먹으로 내려치며 연신 씩씩거렸다. 분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연신 소리 지르고, 책상을 발로 차고, 손에 잡히는 모든 걸 집어 던졌다. 무언가를 부수고 싶다거나 통쾌함을 찾는 행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달리 배운 행동이 없는 사람처럼 감정 과잉이 되어 무조건 엉망으로 휘두를 뿐이었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그때였다. 침대 이불에 묻어 놓았던 휴대전화가 대뜸 존재감을 알렸다. 시윤은 헤드셋을 쓰고 있었음에도 휴대전화 벨 소리를 귀신같이 알아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은 궁둥이가 순식간에 의자에서 떨어졌다.
상체를 돌린 시윤은 부릅뜬 눈으로 침대가 있는 방향을 쳐다봤다. 붉은 실핏줄이 불안하게 흔들리며 동공이 한껏 커졌으나 그뿐이었다. 움직여야 함에도 다리는 또다시 의지를 반했다. 아니, 가고 싶지 않다는 본능에는 충실했으나 가야만 하는 의무 행위는 따르려 하지 않았다. 어차피 결과는 정해져 있음에도 매번 쓸데없는 발악을 했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이번에는 다르겠지. 아니, 평생 같을 거야. 전화를 받아, 어서! 가지 마. 손대지 마. 고개를 돌리란 말이야! 이런 머저리 같은 새끼,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야? 이제는 그만할 때도 됐잖아. 보지 마. 무시하란 말이야!
뚜르르르, 뚜르르르.
온몸을 덜덜 떨던 시윤은 결국 눈을 질끈 감았다. 그렇게 지옥으로 한 발짝 내디디려 할 때였다.
「유토피아로 향하는 초대장이 도착하였습니다. 열람하시겠습니까?」
모니터 옆에 세워두었던 스피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 음성이었는데 게임 속 대사는 아니었다. 몬스터를 죽이는 게임에서 유토피아가 웬 말인가. 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헤드셋을 쓰고 있었다. 스피커에서 소리가 나올 수 없었음에도 불가능한 일이 현실로 일어나고 있었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삐거덕, 삐거덕. 시윤의 고개가 망가진 로봇처럼 어색하게 돌아갔다. 모니터에는 생전 처음 보는 창이 떠 있었다.
[당신이 바라는 모든 것을 이루어드립니다. 어떤 것을 소망하든 이루어질 것입니다.
유토피아로 입장하시겠습니까?]
[YES] [NO]
뚜르르르, 뚜르르르.
시윤은 다시금 고개를 돌려 침대가 있는 방향을 응시했다. 벨 소리가 이어지는 시간은 평균적으로 일 분 삼십 초 정도였다. 어림잡아 일 분은 넘었으니 당장 받지 않으면 곧 끊길 터였다.
“예스.”
두려움에 질렸던 시윤은 여전히 어둠을 바라보며 예스를 외쳤다. 누구라도 좋으니 당장 이곳에서 꺼내주기를 바랐다. 지겨운 벨 소리도 사라졌으면 했다. 전화를 받으면 어떤 일을 겪을지, 이번에는 얼마나 견뎌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몇 명이나 모아놨을까. 몇 시간이나 있어야 할까.
뚜르르르, 뚜르르르.
“하, 하하. 하하하!”
그 순간 시윤은 웃음이 터졌다. 그래, 그럴 리 없었다. 비현실적인 일 따위 일어날 리가. 화면에 뜬 초대장은 게임 오류일 테고 낯선 음성도 헤드셋 선이 살짝 빠진 탓일 것이다. 얼마나 절박하면 이딴 행동을 다 하는지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그렇게 시윤의 머리가 현실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할 때였다.
「어서 와. 이곳에서 어디 하고 싶은 대로 해 봐.」
“뭐?”
다음 순간 시윤의 모습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방에 남은 것이라고는 환한 불빛을 내는 모니터와 왼쪽으로 돌아간 의자, 책상 아래로 떨어져 달랑달랑하는 헤드셋, 그리고…….
뚜르르르, 뚜르르르.
***
“여기는 어디야?”
시윤은 뭐가 뭔지 하나도 알 수 없었다. 분명 집에서 게임 중이었는데 눈을 감았다가 뜨니 전혀 엉뚱한 곳에 있었다. 바닥과 벽, 천장까지 모두 하얀 방은 왠지 모르게 거부감이 들었다. 제법 넓은 방 안에는 침대가 여덟 개 놓여 있었는데 모두 똑같은 제품에 침구류 디자인도 같았다. 한 눈에도 비싼 제품임을 알 정도로 좋은 침대였다. 침대에는 각각 사람이 있었는데 시윤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침대 머리에 기댄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미동도 없어 마네킹이나 인형은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시윤은 소리 내서 불러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한편, 불안함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낯선 공간에서 모르는 사람과 있는데 무얼 믿으란 말인가. 뜬금없이 때리거나 괴롭히지는 않을 테지만 두려움까지 떨칠 수는 없었다. 세상에서 사람이 가장 무서운 시윤이었다.
그 순간 본능적으로 오한을 느낀 시윤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엉덩이를 살짝 빼는데 처음에는 몰랐던 감촉이 느껴졌다. 메모리폼은 상당히 푹신푹신하고 촉감 또한 부드러웠다.
시윤은 그제야 침대를 이리저리 살폈다. 헤드에 놓인 베개는 적당히 도톰하여 절로 잠을 불렀고, 부족하지 않은 쿠션들은 아늑함을 더했다. 이대로 눕는다면 포기하고 살았던 숙면 또한 가능할 것 같았다. 낯선 곳임에도 굉장히 아늑했던 시윤은 침대를 내려가고 싶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편안함이 침대 위에 있는 것 같았다. 저도 모르게 이런 곳에서 게임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게임을 떠올리자 다른 침대에 앉은 사람들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여전히 미동도 없는 그들은 꼭 비활성화 된 유저를 보는 기분이었다. 그들은 대체 뭘까. 의문이었던 시윤이 다시금 생각에 잠기려는데 갑자기 삐-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들은 적 있는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초대에 응해줘서 정말로 고마워. 나는 유토피아를 관리하는, 음…… 해태?」
「해태는 제 이름입죠!」
「아, 거참 쩨쩨하네. 그럼 적당히 파우스트로 하자고. 악마의 장난과 인간의 방황! 딱 들어맞잖아.」
「본인의 본질이 악마와 가깝다는 건 인정 하…… 실 필요 없지요. 제가 감히 누구를 입에 올렸나요?」
“뭐, 뭐야? 어디서 들리는 거야?”
시윤은 순식간에 사색이 되었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스피커처럼 생긴 물건은 없었다. 오른쪽 벽에는 굳게 닫힌 문이 있었고 바닥과 벽은 말끔했다. 천장에도 무엇 하나 달리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전등도 없는데 방 안은 지나치게 밝았다. 창문도 없는 공간에서 말이 안 되었다.
갑자기 무서워지기 시작한 시윤은 무릎을 끌어안으며 이불로 몸을 가렸다. 그런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을 테지만 최소한이자 최대한의 방어였다. 그 모습이 웃겼는지 한울이 웃음을 터트렸다. 한참 동안 낄낄거리던 한울은 곧 진정되었는지 다시금 이야기를 시작했다.
「모든 게 궁금하겠지만 간단해. 너는 초대장을 받아 게임에 참가한 유저고 나는 관리자라는 거.」
“초대장이라니?”
「기억 안 나? 유토피아에 입장하겠다고 결정한 건 다름 아닌 너야.」
“유토피아, 설마…….”
시윤은 그제야 마지막으로 했던 행동을 떠올렸다. 게임 중에 휴대전화가 울렸고 그때 이상한 메시지가 모니터에 떴다. 단순히 오류라고만 여겼지, 정말로 뭐가 어떻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물며 이런 이상한 상황은 상상조차 못했다. 시윤의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모든 게 비현실적이었다.
「그래. 네가 분명 ‘예스’라고 말했잖아.」
“아니야! 그, 그건…….”
그저 살고 싶었을 뿐이다. 끔찍한 전화를 받기 싫었다. 뭐가 되었든 좋으니 도망가고 싶었다. 오로지 그 생각 뿐이었다. 이상한 초대장을 믿었다거나 무언가 기대해서가 아니었다. 되는 대로 내뱉은 거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그 새끼들을 죽이고 싶었잖아.」
“어, 어……?”
「너를 아프게 하고 괴롭혔던 놈들. 네 세상을 좁은 단칸방 하나로 축소 시켜 버린 놈들. 모두 뒤졌으면 하잖아? 이곳에서라면 뭐든 가능해.」
시윤의 눈앞으로 반투명한 창이 하나 떴다. 게임 알림창과 같은 모습이었다. 홀로그램이라도 되는 걸까. 점점 더 비현실적이 되어가는 것 같아 불편했던 시윤은 인상을 구기며 내용을 읽었다.
“정말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그 새끼들을 목 졸라 죽이는 것도?”
「당연하지. 뭐든 가능한데도 생각하는 게 고작 목 졸라 죽이는 거라니, 기껏 판을 깔아준 내가 다 불쌍해지지만. 그래서? 해 볼 거야?」
“응.”
시윤은 이번에도 똑같은 선택을 했다. 딱 한 마디, 그들을 죽여도 좋다는 달콤한 말이 그를 움직였다. 현실이고, 비현실이고, 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이고, 그 모든 것을 떠나 본능만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인생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게임을 시작하시겠습니까?]
[YES] [NO]
“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