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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래곤 아저씨 Aug 11. 2023

재활은 부할이 아니라 스스로 다시 일어 나는 것이죠

첫 번째, 입원 이후, 수술이나 시술과 같은 별 조치 없이 퇴원 후 헤이해진 내 정신은 금세 뇌졸중의 위험을 간과하고 잃어버리게 되었다. 삶의 태도에 변화가 생겨야 할땐 한번 쎄게 맞고 상처 받는 것이 차라리 더 나은 건지도 모르겠다. 무언가 어영부영 약하게 맞고 나니 금새 유약한 인간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 위기 따위는 잊고 느슨한 삶을 살아간다. 이것이 인간 본연의 본능과 같은 것이던가. 참으로 운이 좋게도 실제 생활에 장애가 될만한 데미지를 받지 않은 것이 천운인지도 모르고, 나는 담배는 끊었으나 아이코스정도는 괜찮겠지 하며, 궐련형 전자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고, 식 생활도 다시 아프기 이전과 별 다를바 없이 회귀하고 있었다. 나 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천만 다행으로 크게 데미지를 않 받은 나는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가서 그냥 살면 되는구나 정도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야 나는 괜찮고, 별거 없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기도 하여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당시에 와이프가 연출하는 연극 기획작업도 하고, 청년대상으로 기획자양성과정을 매년 몇 개월씩 강의하던 시기여서 바로 무척 바쁜 일상으로 돌아오며, 나 스스로 아무 문제가 없구나 라는 확인을 스스로 자주 하며, 바로 그 1년 이내 가장 높은  재발에 성큼성큼 다가가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재발에 해당했던 지라 뇌경색의 전조 증상과 같은 것들을 돌이켜 보면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일단 첫 번째 전조 증상은 당시 대학로 극장에서무대셋업 및 리허설을 하고 있던 와이프 때문에 현장을 왔다갔다 바쁠 무렵, 차에 가서 무언가를 꺼내고 다시 극장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수 백번도 더 다녔던 대학로 거리에서 주차한 곳을 못찾고 헤매다, 어렵게 찾고나서는 극장을 못찾아서 한참을 대학로 안에서 헤매였다. 당시에는 그냥 혼자 당황하긴 했지만, 이게 뇌경색 전조증상이라는 생각을 못하였다. 또 하나 기억 나는건 몸의 왼쪽 부분이 좀 힘이 빠지면서 걸을 때 균형이 좀 안 맞는 현상도 있었다. 가장 이상적인 건 이럴 때 바로 병원에가 더 이상 뇌가 공격받지 않게 빠른 조치를 하는 것이 바로 뇌졸중의 골든 타임이 되는 것이다. 빠를수록 거의 데미지가 없는 뇌졸중으로 극복을 할수도 있을 것이냐, 많은 공격을 받아 많은 장애를 안고 살아가느냐의 중요한 기로가 되니 스스로를 잘 관찰하여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나의 경우 2차 재발의 경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 당시 청년 층 대상 직업훈련 교육을 진행 중이던 시기인데, 코로나 펜데믹 상황이라 오프라인 수업을 못하고, 모두 온라인 줌 수업으로 대체되던 시기였다. 그런데 마침 그 학급의 반장을 맡은 친구가 어릴때부터 병원에서 행정이나 도우미 알바 같은 것을 많이 한 친구였는데, 병원에서 뇌졸중 환자들을 참 많이 보아왔던 친구였다. 게다가 줌으로 숟업을 하다 보니 얼굴근육과 표정을 특히나 가까이 보아 오다가, 화면상 나의 표정과 얼굴 근육이 일그러지는 듯한 모습을 보고 쎄한 느낌이 들었는지 수업시간에 톡으로 아무래도 이상하다며 빨리 병원에 가보시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글치 않아도 며칠 약간 이상한 전조를 느낀 나는 수업을 마치고, 바로 택시를 타고 다니던 병원 응급실로 가려고 택시를 잡으려니 영 택시가 보이지를 않아 이러다 안되겠다 하는 마음에 카카오택시 앱을 이용해 부르려고 시도하였으나, 조그만 스마트폰 화면으로 장소 선정 및 옵션을 체크하는 것을 도저히 못하겠어서 포기했다. 절박한 마음에 근처에 있던 젊은 총각한테 내가 지금 병원 응급실을 가려고 하는데 카카오 택시를 못부르겠으니 좀 도와주면 안되겠냐 부탁을 했더니, 자기 버스왔다면서 가버렸다. 때마침 택시가 와 타기는 했으나 뭐 저런 매정 한 녀석이 다 있나 싶었다. 

사실 당일 아침에도 전조 증상이 있었으나 그건 내가 겪어 본 적이 없던 현상이라 아주 훗날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집근처에 살 것이 있어 차를 끌고 나와 주택가 일반도로를 막 벗어나는 즈음에 차선을 변경하려고 하다, 무언가 살짝 텅 부딪치는 소리에 깜짝 놀라 보니 옆 차에 사이드미러를 살짝 부딪친 것이었다. 분명 아무 차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하고 차선을 바꾼 것인데 이상하다 싶었지만 어찌되 었든 내가 좋지 않은 컨디션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재빨리 사과를 하고 연락처를 드리고 갈길을 갔지만, 이것이 앞으로 내 삶을 참으로 힘들게 할 ‘인지 장애’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인지 장애’는 뇌졸중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야 대부분의 환자분들에게 나타나기도 하고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라 생각하기에 이것은 따로 다음편에서 좀더 자세히 다루어 보려고 한다. 나도 처음에 이게 뭔가 이해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할수 한 최대한 쉽게 설명을 하고자 함이다.      

재활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장애를 가진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적의 기능을 성취하고 유지하거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이루어지는 모든 치료> 라고 나온다. 처음 뇌졸중으로 아프고 나서 캐나다에 살고 있는 여동생이 걱정을 많이 하며, 이것저것 궁금해 하곤 했는데, 남편인 캐내디언 매제가 여동생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해서 들었는데, 그게 약간 신경쓰이며 자꾸 생각이 나는 메시지였다. 어차피 혼자니까 혼자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걸 잊지 마세요‘ 뭐 그런 말이었던 것 같다. 당시는 뭐 위로는커녕 저런 말을 하나 싶었다. 세월이 흘러 생각해보니 아파서 무너져보니 본래 의존적인 성격이 아닌 나 임에도 병원이 무언가 다 해결해 주기를 바라게 되고, 아직 완전히 정상화 되지 않은 것 같은데 퇴원하라는 것이 서운하고 막막했던 것 같다. 하지만 결국 내 몸이 다시 일어나고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아 물론 모든 걸 혼자 해야 된다는게 아니라 본인의 노력이 기반이 돼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며 병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 친 한 대학동기 친구 한의사가 한명 있어서, 재활을 해야 될 것 같은데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하고 상의를 하였다. 친구는 멀리 지방에서 병원을 하고 있기에, 직접 적인 도움을 줄수 없어서, 내가 사는 지역에 실력있다고 생각하는 한의사가 마침 하나 있어서, 거기 다니며 도움을 받아보라며, 그 병원 원장한테 내 상황을 설명하고, 잘 부탁한다고 전화해서 부탁을 하며, 재활치료를 이제까지 3년째 도움을 받고 있다. 재발 이 후 비로소 두려움을 느낄 때 이 한의사가 ’제가 같이 도와 드릴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라고 하는데, 어찌나 든든하고 안심이 되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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