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이야기
나는 유아특수교사이다.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며 함께 웃고, 행복한 교실을 만들어 장애를 가진 우리 아이들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아이들 또 학부모들이 알아가길 바라며 오늘도 학교로 출근을 한다.
내가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생각해 본다.
남편은 이 글을 보며 ‘이런 일도 있었구나!’라고 할까?
엄마는 ‘내 딸이 이렇게 살았나?’ 싶을까?
유치원 때부터의 친구는 내 이야기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작가나 유명인들의 글을 보면 ‘철저히 나의 사생활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답이다’라는 말도 있고,
‘세상에 비밀은 없다. 세상은 좁고 어차피 다 알게 된다’라는 말도 접한다.
사실 뭐가 맞을까? 내가 내 글로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내 이야기를 쏟아내었던 사람들과 시간도 있었고, 아무리 이야기하려 해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아 숨기고 또 숨기던 시절도 있다.
이 글을 쓰면서도 고민이 된다. 그렇게 고민하다 어떤 배우가 한 말 “세상은 내가 경험하지 않은 것은 절대 모른다”는 말을 되뇐다.
내가 경험한 이야기, 나도 몰랐던 나에게 펼쳐진 나의 삶에 대한 이야기
내 삶의 기억은 조금은 미소를 주고, 눈물이 차 오르게 하며 두려움과 안도감도 있다.
만약 나의 미래를 알았다면 다시 갈 수 없을 것 만 같은 그 기억을 조금씩 꺼내어 본다.
마흔이 넘은 나이이고 또 그 나이가 되어보니 뭘 도전하기에 늦지 않은 나이인가 싶기도 했을 때 유아특수교사 임용고시에 합격했다. 물론 교육 경력은 있었지만 공립에서 내 교실을 가지고 특수교사로 시작한 나이가 마흔이 넘은 나이였다.
큰 아이가 중학교를 졸업하던 해 임용고시에 합격을 한 것이다.
인생은 계기가 있다더니 나도 그랬다.
당시에는 특수학교에서 기간제교사로 근무를 하고 있을 때였는데 뇌병변을 앓고 있는 아이가 우리 반이었다. 뇌병변 1급이라 가정으로 방문하여 순회교육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그 아이와 가을의 나뭇잎 주제로 활동을 했다.
은행잎, 단풍잎, 벚나무 잎, 느티나무 잎, 계수나무잎 등을 씻어 말려서 가져갔다. 아이를 안고 동요를 부르며 나뭇잎을 뿌려주기도 하고, 아이가 뿌려볼 수 있도록 손에 쥐어주고, 나뭇잎 위에 함께 눕기도 하고, 만져보고 느낌을 말하며 활동을 했다.
아이가 말했다.
“선생님 너무 재밌어요. 행복해요” 말하기 힘들어 천천히 온몸을 움직이며 말하는 그 아이의 눈빛이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눈물이 났다. “고마워. 선생님도 너무 행복해”
그때 결심했던 거 같다. ‘임용고시에 꼭 합격해야겠다’라고
기간제 교사를 하기엔 마흔이 넘은 내 나이가 너무 많고 할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학원을 다닐 때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희생이구나. 나 정말 못할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을 하며 특수교사를 할 생각이 없었는데..
인생은 생각한 대로 흐르지 않듯 여러 장애 유아들을 만나고 학부모들을 만나며 이젠 참을성도 있고 내가 아이도 키웠으니 자신감이 생겼던 거 같다.
그렇게 공부를 하고 합격을 했다. 신기했다. 난 유아특수교사 정말 못할 것만 같았는데.......
나는 스물다섯에 대학원에서 유아특수교육을 전공했다.
유아교육학과를 졸업 후 유치원에서 근무할 때였다.
우리 반 유아 중 한 아이가 자폐스펙트럼장애로 우리 반에 배치되었다. 그 당시에는 유아특수교사를 서울에서 1명 임용으로 뽑을 때였으니 그 아이도 사립에 입학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실 그 당시는 특수교육에 대한 의미 정도 사회에서 이야기되는 시기였다.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아이 엄마와 통화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찾아보며 알아가는 정도였다. 그러다 문득 대학 때 한 교수님이 “이젠 특수교육을 해야 해. 앞으로 교육자로 살아가려면 특수교육이 필요해”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당시의 사립 유치원은 토요일도 출근을 할 때였는데 여러 토요일 중 그나마 뺄 수 있는 날이 딱 특수교육학과 학교의 면접이 있는 날이었다.
2001년 대학원 원서 접수가 현장 접수여서 친구에게 부탁해 서류 접수를 하고 서류 합격을 했다. 면접 날은 유치원에서 조부모님 행사가 있는 날이어서 유치원 버스를 타고 포천으로 가는 날이었다. 서류 합격을 한 후 매일 생각했다. ‘뭐라고 말하지? 대학원을 간다고 하면 허락을 할까? 어쩌지?’
결국 며칠 전날 원장님께 거짓말을 했다.
“원장님 가장 친한 친구 결혼식이 토요일이에요. 저 꼭 가고 싶어요”
사실 원장님의 표정으로는 허락을 하는 것인지 조금은 불편한 심기였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그래도 말을 꺼냈으니 아침에 출근을 했다가 결혼식을 가는 척 대학원 면접을 갔다.
그렇게 공부를 하고 졸업 후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10년을 키웠다. 특수교육을 공부하고 유아특수교사 2급 자격증을 받고 아이를 낳아 10년의 힘들고 아픈 시간들이 시작되었다. 장애 아이를 둔 엄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