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번째 이야기
유치원에서 보면 등 하원을 할 때 우리 반 부모님들은 다른 일반유아 부모님들의 눈치를 본다.
유치원에 등원할 때 하원할 때 부모님들과 아이들이 서로 오가며 서로를 만나고 보게 된다.
우리 아이들은 걷고 인사하고 다른 아이들과 다름없이 유치원을 오고 가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행동이
있다.
조금은 뒤뚱거리며 넘어질 듯 걷거나, 발음이 되지 않아 알아들을 수가 없는 말을 하거나 눈 손협응이 어려워 신발을 신고 벗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거나 조금씩 다른 모습에 다양한 눈길이 머문다.
그 시선을 견디는 마음이 어떤 마음일까?.....
서러움인지 두려움인지 부끄러움인지 모르겠는 마음이 뒤엉킨다.
교사로 아침맞이를 하며 다짐한다.
나도 부모님도 우리 아이들도 조금은 행복한 하루의 시작이 되었으면 싶다고...
유치원 현관에서 크게 우리 반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안아주고 환하게 웃으며 인사한다.
내가 조금이라고 우리 반 아이들에게 눈길을 주고 환영해 주면 그 마음이 부모에게도 전달되어 편안한 하루를 보내지 않을까?
그래서 한 번 더 따뜻하게 바라봐주고 한번 더 웃어주고 그렇게 조금은 행복한 하루가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장애 아이의 엄마는 눈을 뜨면 웃는 날 보다 아픈 날, 어려운 날, 불안하고 이해되지 않는 날들이 참 많다.
6살 어린이집을 다닐 때였다.
엄마들이 아이들 버스를 태우기 위해 아침마다 어린이집 버스 정차하는 곳에 서서 기다렸다.
그런데 그 주위를 돌아다니던 우리 아이가 모자를 쓰고 나온 다른 아이 엄마를 유심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려서도 보고 허리를 숙여서도 보고 이리저리 쳐다보는 것이었다.
나는 심상치 않아서 아이와 그 엄마 사이에 서서 아이를 안고 있다 버스에 태웠다.
그 엄마도 기분이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그렇게 주말을 지나 다시 버스 정차하는 곳에 있는데 그 엄마가 모자를 쓰고 힘든 모습으로 난간에 앉아 있었다. 순식간에 아이가 모자를 벗기려고 달려들었다.
“하지 마” 소리를 지르며 아이 두 손을 잡았다.
반사적으로 그 엄마도 모자를 잡았고 정적과 함께 그 공간의 모든 사람이 당황했다.
아이를 잡은 내 손에서 땀이 났다.
머리에 꼭 엑스레이가 지나가는 듯했고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내 마음에서는 다행히도 모자가 조금 기울어지긴 했지만 벗겨지진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옆에 있던 그 엄마의 아이가 놀라서 울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언니 정말 죄송해요”
언니가 화가 난 얼굴로 날 보며
“아니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지금 누구 놀리는 거야?”
그랬다.
언니는 유방암으로 항암치료를 받고 있었고 그로 인해 머리가 다 빠진 상황이었다.
나는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고 “얼른 사과해. 다른 사람 몸에 손대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라고 하는데
아이는 갑자기 웃음이 터져 웃기 시작했다.
재밌는 일이 눈앞에 펼쳐지기라도 하는 듯 웃고 또 웃었다.
그곳의 모든 사람들은 '아무리 아이여도 저럴 수 있을까?' 싶었을 것이다.
나도 이해가 되지 않는 내 아이의 행동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해 달라고 한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버스를 탔다.
그 언니의 아이도 눈물을 닦고 시무룩한 얼굴로 버스에 올랐다.
“언니 정말 죄송해요. 제가 조심시킬게요”라고 고개를 숙여 말했고
언니는 말이 없이 뒤돌아 집으로 들어갔다.
같이 있던 엄마들도 눈치를 보며 모두 집으로 흩어졌다.
그 가족 모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왜 내 아이는 그런 행동을 했을까?
내 인생에서 겪어보지 못한 처음 있는 일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뭘 해야 할까? 아무리 잠을 안 자고 고민하고 책을 보고 전문가를 만나도 알 수가 없었다.
종합심리검사를 받고 놀이치료를 다니고 병원을 다니는 것 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위기탈출 넘버원'을 보며 매일 위험성을 이야기하고, 지하철과 버스를 하루 종일 타며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롯데월드에 가서 기다리기를 배우고, 산을 오르며 잘못한 것을 말하고 이렇게 하고 또 해도 다른 것이 또 나오고 또 나오는... 꼭 커다란 풍선을 작은 상자에 넣고 있는 것처럼 삐죽삐죽 튀어나왔다.
그날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이의 손을 잡고 집 근처 산으로 갔다.
"엄마 왜 저기 가요?"
"응 아침에 네가 친구 엄마가 쓰고 있는 모자에 손을 댔잖아. 그 엄마가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했어. 그 친구도 마음이 아파서 울었잖아. 산을 오르면서 생각하자. 너도 엄마도 미안해야 하니까. 그 엄마랑 친구만 힘들면 안 되잖아" 그 말을 내 아이는 알지 못했겠지만 그래도 잘못하면 생각을 하고 산을 오른다는 것 정도라고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산을 올랐다.
그다음 날부터 조금 일찍 나와 아파트를 돌고 돌아 다른 동에서 어린이집 버스를 탔다.
아이가 물었다.
"엄마 왜 여기서 타요?"
"응 어제 모자 쓴 친구 엄마랑 친구 마음을 아프게 해서 우리가 보고 싶지 않대.
우리 이제부터 여기에서 탈 거야"
아이가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지만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달라진 상황은 알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그렇게 아파트 여기저기에서 버스를 타고 내렸다.
가끔 언니를 마주치면 눈을 보기 미안해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피하고 그렇게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딱 맞는구나 싶은 날들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옆 동에서 인터폰이 왔다.
“그 집 아이가 우리 아이를 자꾸 따라와요. 한 번도 아니고 아이스크림을 사주기도 하고 따라오지 말라고 말해도 듣지 않아요”
그 아이는 5살 된 어린 여자아이였다. 같은 태권도 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아이가 어린이 집에서 돌아왔을 때 물었다.
“120동 아이 알지? 그 어린아이를 왜 따라다녀?”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서요”
이건 안 되겠다 싶었다.
아이를 데리고 120동을 갔다.
음료수를 손에 들고 그 집 앞에 섰다.
심장이 목을 죄어오고 눈물이 차 올랐지만 아이에게 보여줘야만 할 것 같았다.
망설이다 숨을 크게 내쉬고 떨리는 손으로 초인종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조금 전 인터폰 주셨던 아이 엄마예요”
그 집 아이와 엄마가 어리둥절해하며 현관문에 서 있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이가 놀랐겠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앞으로 당기며
“아이한테랑 엄마께 사과해”라고 말했다.
우리 아이가 “죄송합니다. 미안해”라고 말하고 받지 않겠다는 음료수를 두고 돌아서 나왔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16층이었는데 엘리베이터를 탈 용기가 나지 않아 계단으로 내려왔다.
16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동안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아이가 그날 일이 충격이었는지 그 아이를 쫓아다니며 먹고 싶다고 말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주 주말에는 아차산을 갔다.
다른 사람을 힘들게 했고 잘못된 행동을 했으니 그 벌로 산을 간다는 규칙에 따라 산을 올랐다.
새소리가 들리고 나무들이 푸르고 사람들이 웃는 그 산에서 나는 걱정과 불안함. 그리고 막막함이 늘 공존했다. 산은 나에게 편안함보다 숙제 같은 곳이었다. 풀리지 않는 문제 같은...
그 일이 있었던 날부터 매일 마트에 갔다.
돈을 손에 쥐어주고 아이스크림, 과자, 사탕 먹고 싶은 걸 하나씩 사 오도록 했다.
그냥 무작정 매일 갔다.
내 손에 있는 돈을 주고 물건을 사는 것 그 하나를 해야 할 것 같아 이곳저곳을 다니며 사고 또 샀다.
뭐가 맞는지 알 수 없지만 문제 행동이 있었고 그 행동을 해결하는 것, 그 안에서 내 아이가 경험해야 한다는 것 그것만 생각했다.
그렇게 내 첫째 아이와 수많은 일들을 겪어내며 울고 생각하고 해결해 가는 시간들이 흐르고 있었고
유아기가 마무리가 될 때쯤 난 암환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