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그리고 부모의 마음

여섯 번째 이야기

어느 해인가 우리 반 학부모의 말이 떠오른다.

"제가 많이 아파서 아이가 태어나자마자부터 강원도에 있는 시댁에 있었어요."

"어머니 많이 아프셨었어요? 힘드셨겠어요"

"네 제가 암에 걸렸었거든요. 그때 제가 아프지 않았다면 아이가 괜찮았을까요?"

"아니에요. 어머니.... 그냥 사고 같이 일어난 일이에요. 그런 마음은 절대 갖지 마세요"

라고 학부모를 위로했다.


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하루에도 수십 번 생각한다.

내가 그때 그랬다면...

내가 그러지 않았다면....

혹시 아이가 그때 넘어진 것 때문은 아닐까?

의자에 머리를 부딪친 것 때문일까?

수천 수만 가지의 상황이 머릿속을 헤집으며 현실을 살아간다.


지금 나의 첫째 아이가 막 성인이 되었다.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 누군가 물으면...

너무도 슬프지만...

웃으며 행복이란 이름으로 살아가도 마음에서 떠나지 않은 후회의 자리가 있다.

우리 반 아이들의 엄마도 그런 맘으로 살아가는 모습에..

살아가야할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

나는 우리 반 아이들을 보며 매일 행복하게 웃는다.

특수교사인 나의 특권처럼 우리 아이들이 있어서 나의 후회를 덮고 나의 희망을 담는다.


내가 37살이 되던 해의 일이다.

사촌 동생 결혼식이 있어서 가족들을 만났다.

첫째 아이는 시누이에게 맡기고 둘째만 데리고 결혼식에 갔다.

그 자리에서 막내 동생이 나를 보자마자 말했다.

"누나 어디 아파?"

"아니 나 안 아픈데..."

"그런데 왜 그렇게 살이 빠졌어?"

"야~ 아들 둘 키우는 엄마가 살이 찌는 게 신기한 거 아냐?"

"아니야 누나 좀 이상해. 얼굴도 너무 하얗고... 병원 가봐 빨리..."


뭐 좀 피곤하고 힘들긴 해도 아들 둘 엄마가 다 그런 거 아닌가 싶었다.

그러다 위층 언니랑 산부인과 이야기가 나왔고 그 김에 같이 병원 예약을 했다.

병원에서 자궁암, 난소암, 유방암 검사를 했다.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갑상선도 검사하시죠"

그렇게 갑상선 초음파를 하는데 검사를 더 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조직 검사를 하고 집으로 왔다.

일주일 후 병원에 갔더니 CD와 의무기록을 주며 큰 병원을 가라고 했다.


서류를 받아 들고 집에 왔다.

사실 그땐 나 자신도 신기할 정도로 담담했다.

뭐 그다지 서러울 것도 힘들 것도 없었다.


종합병원에 예약을 했다.

그리고 한 일주일 후쯤 검진을 받았다.

목을 만져본 의사 선생님이 암이 맞다며 4개월 후쯤으로 수술 날짜를 잡았다.


수술실로 들어가는 복도의 천장을 바라보는 시간

엄마가 옆에서 눈물을 닦고 힘들어하는데...

난 신기하게도 천장에 우리 첫째 아이 이름이 가득했다.

내가 살아야 할 이유...

우리 둘째는 순하고 뭐든 빠르고 엄마의 걱정을 덜어주는 아이라서

내가 없어도 어디서든 이쁨 받으며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내 첫째 아이는 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무서웠다.

사실 갑상선 암은 착한 암이라고도 하고 또 쉽다고도 했지만...

우리 아이의 옆에 있어야 할 엄마라서 두려웠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의 엄마가 아프다.

세상에서 날 가장 걱정하고 사랑하는 존재인 엄마가 항암을 받고 있다.


내 병엔 담담했고 내 아들의 병엔 마음 절절했지만 엄마의 병 앞에서 후회가 남았다.

후회...

그 단어는 내가 우리 아이를 키우면서 했던 행동들.. 있었던 일들,,

그랬다면~ 그러지 않았다면~이라고 하나하나에 대입한 것인 줄 알았는데....

이제와 돌이켜 보니 후회는 어쩔 수 없었던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을 하지 않은 것에 있다는 것을.....

슬프게도

나의 엄마가 아프고 아픈 엄마의 옆에서 엄마를 들여다보며 이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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