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하기 1

네번째 이야기

아이가 9개월이 되면서 걷고, 점점 움직임이 많아지며, 18개월이 되었을 때 숫자를 100까지 읽는 모습에 불안감이 들었다.

남들은 아이가 영재냐고 칭찬처럼 말하기도 했지만 뭔가 달랐다.


눈 맞춤이 갈수록 짧아지고, 높은 곳에 올라가서 물건을 던지고 뚜껑이 닫혀있는 곳은 모두 열어보고 당겨보고 던져 보았다.

일상언어 사용에는 어려움이 없었으나 관심사는 지하철역 말하기, 기차 지하철 그림책 보기, 기차 한 줄 세우기, 무엇이 궁금한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목적이 있으면 어디든지 달려가고, 들어가고, 만져보았다.

위험한지 다치는 건지 전혀 모르는 아이처럼 행동했다.

매일매일 그런 시간이 일상이 되었다.


내가 교육했던 아이들의 행동이 하나하나 나타날 때마다 너무 두려웠다.

특수교육을 하지 말걸... 하늘이 그 사람의 그룻을 보고 그만큼의 시련을 준다는 말

너무 싫었다.

난 그런 그릇도 되지 못하는데...

'특수교육을 하지 않았으면 하늘이 나에게 우리 아이를 보내주지 않고 조금은 그냥 무난한 아이를 보내주지 않았을까?' 수없이 되뇌었다.

자동차를 보면 뛰어가고 높은 미끄럼틀도 거침없이 올라가는 아이

베란다 난간 사이에 다리를 넣고 앉는 아이, 의자를 끌어다 8층 베란다에서 밖을 내려다보는 아이

손을 잡고 있지 않으면 숫자를 보고 어느 동이든 들어가는 아이

하루의 모든 시간에 아이를 눈에서 놓으면 ‘내가 저 아이를 잃지 않을까? 저 아이가 나랑 엄마 아들로 성인까지 살 수 있을까?’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아이가 36개월 4살이 되었을 때 어린이집을 처음으로 등교했다.

어린이집을 가기 몇 달 전 둘째가 태어났다.

하루는 아이가 좋아하는 지하철 기차 장난감, 동화책 등을 주고 둘째 젖을 먹이고 있는데 너무 조용해서 불안한 마음에 거실로 나갔다.

베란다 문이 열려있고 세탁기 위 선반에 있던 3.5L 물세제가 베란다에 가득 뿌려져 있었다.

잠깐이었고 아이가 노는 소리도 들렸는데..... 정말이지 할 말이 없었다.

나랑 눈이 마주친 아이는 "엄마"라고 말하더니 통을 던지고 거실로 걸음을 옮겼다.

맞다 '내가 저 아이의 엄마구나.' 갑자기 가슴이 쿵쿵 뛰었다.

그 순간 내가 아이의 엄마라는 것이 겁이 났던 것 같다.


발을 떼는 순간 아이가 넘어졌고 아이의 온몸에서 세제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안에서 벗어나려고 미끄러지고 또 미끄러지는 아이를 보며 어찌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이를 수건에 싸서 일단 욕실에 넣어야 할까?’

‘저 물비누가 저렇게 미끄러운데 같이 넘어지는 건 아닐까’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일단 아이를 안아서 욕실에 넣었다.

그리고 거실이며 베란다에 떨어진 세제를 닦기 시작했다.

아이가 물을 트는 소리가 들렸다.

세제를 닦다 말고 욕실로 뛰어 들어갔다. 혹시 뜨거운 물을 틀 것 같아서 겁이 났다.

물을 다 채워주고

“물 더 틀지 마! 엄마 올 때까지 절대로”라고 말하고 다시 뒷수습을 했다.


둘째 아이를 낳은 지 한 달이 막 지났을 때다.

2월 그 추운 날 살얼음이 생기기 시작하는 세제를 닦으며

닦아도 닦아도 끝도 없이 생기는 거품과 발 밑, 손 끝에 느껴지는 미끄러움

방에서 배고픔에 우는 둘째 아이, 이 상황은 모르겠다는 듯 지하철 노선을 말하며 물놀이를 하는 첫째 아이

‘아~ 정말 못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이렇게 울면 내가 너무 비참해질 것만 같아서 꾹 꾹 참았다.

내가 너무도 원한 아이이고 나는 엄마니까......

'그래 안 다쳤으면 된 거지. 이 상황에 병원을 어떻게 가겠어' 애써 마음을 다독였다.


그렇게 베란다의 세제를 닦고 난 후 바로 둘째를 안고 첫째 손을 잡고 어린이 집으로 갔다.

차가 없을 때여서 시누이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받아 가자마자 등록을 마치고 왔다.


첫날 아이를 어린이집 차에 태워 보내던 날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돌아서는 내 마음에 해방감과 자유! 정말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아이의 기관 생활은 또 넘어야 할 산들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난 문이 닫히고 아이가 첫날 울면서 등원했지만 그 순간이 그냥 좋았다.


엄마 참여 수업이 있어 어린이집 방문을 했을 때였다.

아이가 자리에 앉아있지 못하고 뛰어다니고 의자, 책상에 올라가려 하고 당연히 활동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수업이 몇 가지 활동을 엄마와 아이가 자유롭게 돌아가면서 하는 수업이라 그나마 아이의 행동이 많이 도드라져 보이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모르겠다.

나만 아이의 행동이 그렇게 보였는지도... 그나마 오늘은 나은 거라고..... 그래서 다행이라고....


참여 수업을 마치고 어린이집 놀이터에 있는데 3명의 엄마가 모여 손으로 우리 아이를 가리키며 뭐라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면서 날 쳐다보는 눈빛이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싫어하는 사람을 우연히 만난 듯한 눈빛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눈으로 나와 아이를 잠깐씩 보면서 그들만의 이야기를 했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엄마들과의 소리 없는 불편함의 시간들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는 나도 예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경험을 하는 중이기도 했고....


그리고 11월이 되고 재원 원서를 쓰는 시기가 되었다.

난 당연히 힘든 아이 잘 돌봐준 것이 고마워 재원 원서를 써도 되는지 여쭈어 보고 원서를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전화가 왔다.

어린이집 원장님이었다.

“어머니 저 원장이에요”

“네 원장님”


원장님의 망설임이 느껴지고 불안감이 몰려왔다.

“다름이 아니고 부탁드릴 말씀이 있어 전화드렸어요. 그게~~ 재원 원서 보내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아~ 네 많이 힘드셨죠?”

망설이는 듯하더니 “좋아하지 않는 부모님들도 계시고 해서요”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도 않았다.

“네 원장님 알겠습니다. 혹시 불편하시다면 지금 그만둘까요?”

“아니요 올해는 마무리하는 걸로 하고 내년에는..”

“네 그럼 지금 마무리를 해야 할지... 12월에 마무리를 할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핸드폰을 든 손이 떨렸다.

눈물이 났다.

어쩌면 그날 그 엄마들의 반응으로도 알 수 있었고 매번 각오하며 산다고도 생각했는데.....

하루하루 누워서 어찌 되었든 오늘도 지나갔네~ 하며 잠이 들면서... 뭐가 그리 서러운지 많이도 울었다.


그런데 갑자기 시누이가 원장 선생님이 다시 보내라고 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날 원장선생님도 중학교 다니는 아들 학교에서 전화를 받았다며....

아들 문제로 전화를 받고 나한테 미안함이 생겼고 ‘이런 기분이었구나’라고 알고 나니 이러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다음날 오후 아이 담임 선생님이 사과를 들고 집으로 찾아왔다.


갑자기 화가 났다.

꼭 나를 무시한 것만 같았고 다른 엄마들 말에 이런 행동을 하는 기관과 교사의 태도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찾아온 선생님께 친절함이란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그동안은 늘 죄송하고 감사하다만 하던 내 입에서 죄송하다고 하는 선생님의 말에

“선생님! 그 아이들은 소중하고 저희 아이는 소중한 아이가 아닌가요?

이해는 하지만 방법은 잘못하신 거예요.

그 아이들을 생각해서 이런 결정까지 하셨다면 저희 아이도 배려해서 이야기하셨어야죠.

그리고 선생님. 차라리 솔직하셨으면 좋았을 뻔했어요.

운영상의 문제라던지 아니면 선생님이 너무 힘드시다든지 다른 엄마들의 말로 이렇게 결정하셨다는 말은 하시면 안 되는 거였죠.

그 세 아이의 교사이고 어린이집이었나요?

다음부터는 이런 실수하지 마시라고 원장님께도 전해주세요.

교사의 마음으로 아이 하나하나 생각하시고 행동하시라고”


선생님 눈을 똑바로 보고 그동안 숙여왔던 자존심을 풀어내듯이 그렇게 또박또박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실어 말했다. 선생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저런 엄마였나? 저렇게 말하는’이라고 생각이라도 하듯 멍한 표정으로 나를 봤다.

여러 번 반복되는 사과를 하고 돌아갔다.

그 뒷모습에 심장이 뛰고 눈물도 나고 이 알 수 없는 공기 안에서 그렇게 또 한 번의 폭풍우가 지나갔다.

선생님의 여러 번의 설득으로 그곳에서 아이의 4살은 수료까지 마무리를 했다.

선생님께 편지와 선물을 준비하고 인사도 공손히 하고 웃으며 헤어졌다.


생각해 보면 우리 아이가 정말 힘든 아이였는데...

그래서 나도 어린이집에 보낸 거였는데.....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 동안 내 아이는 선생님의 몫이 되었을 텐데.... 정말 양심도 없다.

미안함이 몰려왔다.

그러지 말걸. 선생님이 참 많이 고생하셨는데... 내가 누구보다 경험으로 잘 알고 있는데.....

아직도 그 부분은 깊이 아프게 후회가 된다.


그렇게 아이가 5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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