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이가 태어나던 날

두번째 이야기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에 따라 매년 2회 한 학기에 한 번씩 개별화교육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협의회를 한다. 협의회에는 유아특수교사, 유아교사, 원감, 원장, 학부모가 함께 아이의 개별화교육계획 수립을 위해 참석하게 된다.


협의회를 마치고 나는 유아특수교사라는 이름으로 학부모와 단 둘이 눈을 보며 마주 앉았다.

협의회를 위한 사전조사 내용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머니 언제 처음 아이의 장애를 알게 되었을까요?"

"처음에는 눈 맞춤도 되고 엄마 아빠도 했는데 18개월쯤부터 이름을 불러도 보지 않고 대답을 안 했어요.

유튜브도 찾아보고 검색도 해 보고 그러면서 우리 아이가 다르구나 했어요."

"그러셨어요? 언제 검사를 받으셨어요?"

"아이가 30개월 조금 넘었을 때 검사를 받았어요."

"많이 힘드셨겠어요. 어머니 지금부터 저랑 같이 해요."

그 말에 책상 위로 눈물이 뚝! 하고 떨어졌다.

엄마의 마음. 장애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맞을까?


아이를 낳았던 순간, 아이를 키우면서 관찰된 모습들, 유치원에서의 관찰된 행동들, 아이가 성장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할 것들을 이야기 나누고 협의회를 마무리했다.

인사를 하고 교실에 돌아와 의자에 앉았다.


개별화교육계획협의회를 하고 혼자 남으면 눈물이 난다.

나도 알고 있는 엄마의 그 마음이 너무도 시리다.

눈을 들어 교실의 천장 전등을 보니 시간을 거슬러 우리 아이가 태어나던 날이 떠올랐다.


결혼 후 3개월 만에 아이가 생겼다.

난 아이를 빨리 가지고 싶어 유치원도 그만두고 신혼이라는 생각도 없이 병원을 다니며 배란일을 받아 임신을 했다. 정말 기뻤고 행복했다.

늘 불규칙하고 생리통도 너무 심해서 결혼 전 산부인과도 다니고 한약도 3개월을 먹을 정도였다.

그런데 처음 병원에서 배란일을 받고 바로 임신에 성공했으니 인생이 내 계획대로 된다고 여겼을까? 아니 확신했을까?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노력하면 되는 것이 내가 살아갈 인생이라고...


예정일이 한 달 하고도 이틀이 남았을 때였다.

일요일 남편과 함께 시장을 돌고 들어와 배가 뭉치는 것 같아 누웠는데 갑자기 양수가 흘렀다.

기다리기엔 흐르는 양이 점점 많아졌다. 우리는 택시를 불러 산부인과에 갔다.

양수가 모두 나오고 촉진제를 맞으며 26시간 진통을 했다.

하루를 꼬박 진통을 하고 밤 12시를 넘겨 아이를 낳았다.

아이가 태어난다는 건 행복이 가득하고 하늘을 나는 기분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었다.


그런데 출산 중에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었다.

진통 중 무통 주사를 맞고 한 20분 뒤부터 다시 진통이 시작되었을 때 의사 선생님이 분만실에 오지 않고 간호사 선생님들이 오고 가며 기다림이 길어지고 있었다.

갑자기 복무 초음파 기계가 들어오더니 “머리가 보여요”라고 말했다.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내가 느끼기엔 간호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조금은 날카롭게 들렸다.

의사 선생님이 급하게 오시더니

“제왕절개 하실래요?”라고 물었다.

“아이 머리가 보인다면서요?” 내가 반문을 했더니 갑자기 문을 열고 나갔다.


그러다 잠시뒤 다른 병원 원장님이라며 보지 못했던 의사 선생님과 함께 들어오셨고, 그분의 주도하에 아이를 낳았다. 그 선생님이 내 어깨를 받치고 있다 아이가 나오자 내려놓으며 귀에 대로 속삭였다.

“아이 잘 지켜보세요. 머리가 좀... 충격이... 크면서 잘 보세요”라고 말했다.

"선생님"하고 부르며 내가 애써 눈을 맞추려 했지만 눈을 피하며 문을 닫았다.

병원 당직 선생님이 "힘들었죠? 아이 낳는 게 힘들어요."라고 하며 마무리를 했다.


다른 병원 의사 선생님 말이 머리에 맴돌았다.

'머리에 충격이 갔다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 당시 긴 진통으로 너무 지쳤고, 아프고 힘이 들었다.

아이는 손가락 발가락 이상 없고 머리도 찌그러졌다거나 울지 않는다거나 하는 문제없이 순조롭게 신생아 실로 갔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머리가 찌그러질 수 있으니 잘 보라는 거였나?’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 말이 살면서 점점 생생하게 되뇌고 또 되뇌게 될 줄 그날은 꿈에도 몰랐다.


새벽 1시가 넘어서까지 시댁 시부모님과 시누이가 조카를 업고 재우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기를 보고 인사를 한 후 다들 돌아가고 신랑도 집에 갔다 오라고 한 후 누워서 병원 천장을 올려다봤다.

기분이 참 묘했다.

'내가 그렇게 원하던 임신과 출산인데.......'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기분이었다.

아침 7시쯤 간호사 선생님이 들어왔다.

“산모 분 혼자 계세요?”

“네”

“힘드시죠? 산모님 얼굴이랑 몸에 실핏줄이 다 터졌네요. 난산이셨나 봐요.”

커튼을 활짝 열며

“밖에 눈이 와요. 눈 보시고 좋은 생각 많이 하세요”


내 아이가 태어나던 날 나에게 엄마라는 이름표를 달아준 첫날

창 밖을 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 눈에선 눈물이 끝도 없이 흘렀다. 멈추고 싶어도 멈춰지지 않았다.

외로웠던 건지 서러웠던 건지 가늠할 수 없지만 이상하게 그날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보면서 많이도 울었다. 지금도 그 병원을 지나갈 때면 보기도 싫고, 너무나도 선명한 그 병원 의사 선생님 이름도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그날 그 창밖의 눈을 보며 울던 내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차오른다.

엄마! 그 이름의 무게가 참 무겁구나를 알기 시작한 첫날

그렇게 엄마로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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