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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폴 Nov 27. 2021

모르는 게 나을까요

영화 <남과 여>의 마지막 씬


당신 곁에 있을 수 있다면 다른 건 다 버리겠단 말은 안 했지만, 영화 <남과 여> 속 상민(전도연)과 기홍(공유)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현재의 관계를 포기한 결과는 숱한 이야기 속에서 불행을 향해 질주하는 무모함으로 그려진다. 안나 카레니나가 젊은 장교 브론스킨을 선택한 후에, <우리도 사랑일까 Take This Waltz (2011)>의 마고가 대니얼에게 간 후에 영영 돌아오지 못한 것처럼.


그래서 그런지 <남과 여>는 상민과 기홍, 둘 사이의 감정보다 둘의 일상과 현재 상황을 더 많이 보여준다. 현실이 버거울수록 현실을 버려야 할 이유에 핍진성이 생기니까. 원래 가지고 있던 삶을 떠나려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자면 사소한 말과 몸짓이 다 이별의 복선으로 읽힌다. 화면에선 순식간에 지나가는 희미한 한숨과 짧은 침묵도 어찌나 무거운지, 영화 시작할 땐 팝콘처럼 가볍던 마음이 얼린 두부처럼 딱딱해진다.


영화는 해동의 시간을 주지 않고 얼어있는 마음인 채로 끝까지 간다. 햇살이 축복처럼 쏟아지는 따뜻한 나라가 아니라 성벽처럼 두터운 눈 속에 주인공들이 갇히는 나라가 배경인 것도 처음의 온도를 유지하는 데 한몫한다. 핀란드는 해가 뜨지 않는 극야가 계속되는 겨울과, 해가 지지 않는 백야가 몇 달이나 이어지는 여름을 가진 나라다. 매일 해가 뜨고 지는 나라에서 살던 일상이 낮과 밤 중 하나가 없는 비일상으로 변할 때, 이방인이 현실 감각을 잃는 일은 당연해 보인다.


같은 마음이던 둘 중 한쪽은 살던 세상에서 빠져나오고, 다른 한쪽은 원래 세상에 그대로 머무를 때 더 불행한 건 어느 쪽일까. 혼자가 된 상민(전도연)은 행복해 보이는 기홍(공유)의 가족을 멀리서 보고 도망치듯 택시에 올라탄다. 그러고 불쑥 기사에게 묻는다.

- 지금 몇 시예요?

기사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시계가 없다고 했던 것 같은데 나는 차에 어떻게 시계가 없을 수 있지, 그런 생각을 잠깐 했다가 그것도 이유가 있겠지, 로 생각을 고쳐먹었다.) 영화의 마지막 말은 결국 상민의 이 대사다.

- 모르는 게 나아요.


내가 얼마나 먼 길을 돌아왔는지, 그 사람의 마음이 변했는지 아닌지, 그가 나를 봤는지 아닌지, 모르는 게 나은 마음. 모르는 게 나아요, 로 끝나는 영화라니. 나는 영화의 어떤 장면보다 마지막 장면에 충격을 받았다. 모르는 게 낫단 말이 혼자 갈 거란 말로 들려서 더 그랬다.


Stacey Kent의 This Happy Madness를 듣는다.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긴 하지만, 번거롭고 귀찮고 힘든 게 사랑이라고 했던 황인찬 시인의 말이 생각난다. 사랑이 뭐냐고 질문했던 김현 시인은 대답을 듣고 깜짝 놀라 멈칫했다. 나는 황인찬 시인의 그 말이 다음에 만날 사랑에게 얼마나 달콤한 말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모든 괴로움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너니까 사랑한다, 너라서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고백을 받는 기쁨에 대해.

사랑 없인 못 살아, 사랑이 필요해, 네가 아니라 사랑이.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사랑하는 그런 말보다 사랑 따윈 필요 없지만 네가 있어 (내게 없던) 사랑이 생겨났다는 말이 좋다. 그 말이, 인적 없는 눈밭을 걷느라 눈 속에 자꾸 푹푹 빠지는 사람의 걸음걸이와 닮은 걸 기억하고 싶다. 그렇게 느린 걸음이어도 계속 가면 마을이 나오겠지. 먼 마을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 떠나는 사람의 흰 입김 끝에 매달린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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