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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폴 Jan 09. 2022

잃어버린 사람, 벅


첫인상을 바꾸려면 긴 시간이 필요하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긴 시간이 흘러도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그런데 첫인상이 아예 없다면 어떨까. 벅에 대한 내 첫인상이 그랬다. 인상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목소리를 듣지도 못했고,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고, 그날 어디 앉았는지도 몰랐다. 한 마디로, 아예 관심이 없었다.


우리는 신생 여행사의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한 달 후 떠나는 배낭여행객들에게 주의사항과 여행 경로를 설명해주는 자리였다. 그가 거기 있었다는 걸, 나는 여행지에서의 날들이 한참 지난 후에 알았다. 그는 그날 거기 있었고, 거기 있었던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거기엔 기억에 남을 만큼 괴상한 옷차을 한 사람도, 이상형에 가까운 사람도 없어서 난 여행 경로를 받아 적는 데만 온 신경을 쏟았었다.


인상이라 할만한 게 생긴 순간은 우리가 동시에 어떤 가수의 이름을 발음하던 순간이었다. 그 이름을 발음하자 벅이 말했다.


나도 그 방송 들어.

정말? 나 그 방송 듣는 사람 처음 만나.


벅의 얼굴이 마침내 인상과 표정을 가진 형태로 다가왔다. 늘 배경으로만 존재하던 벅의 뒷모습이나 고개 숙인 모습 속에 숨어 있던, 순수한 기쁨이 가득한 눈을 처음으로 마주 본 느낌이었다. 우리는 가까운 그늘에 앉았다. 그리고 다른 일행이 우리를 찾으러 올 때까지 한 번도 일어나지 않고 그 오후를 다 대화하는 데 썼다. 우리는 서로가 입밖에 내놓은 모든 것을 알고 있거나, 알고 싶어 하는 존재로 거기 있었다. 어제까지 우리가 이름만 간신히 알고 지내던 남이었단 게 믿기지 않았다.


살다가 벅이 떠오를 때가 있다. 기억 속 벅의 얼굴은 마지막에 본 얼굴에서 점점 더 먼 과거의 얼굴로 변해다. 그러다 마침내 우리가 동시에 어떤 이름을 발음하던 순간으로 돌아가야 변하기를 멈다. 누군가 편지를 말아 넣어, 파도에 실어 보낸 병처럼.

병이 세상의 크고 작은 파도에 휩쓸려 다니다 다다르는 곳은 거의 언제나 우리가 오후를 보낸 그늘 아래다. 아니면 함께 타던 자전거. 아니면 은행잎이 쌓인 길을 조심조심 걸어 집에 가던 길, 손에는 저녁거리를 잔뜩 들고.


한순간에 잃어버린 사람들과 달리 벅은 천천히 잃어버렸다. 드물게 연락이 오던 벅을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곳은 계단이 많던 골목길이다. 한낮의 열기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늦은 오후에 만나 계단을 많이 오르고, 또 내려갔다. 한참 걷다 벅은 아무 식당이나 가자고 했고, 나는 모처럼 함께 먹는 저녁을 소중히 기억하고 싶었다. 아무 데나 가자는 말이 성의 없게 느껴졌다.

불쑥 벅이 말했다.


그 사람, 언젠가 사고칠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까진 별일 없었지만 언젠가 크게 사고 치고 연예계 떠날 거라고. 그런 느낌이 들어.


우리가 함께 좋아하던 가수 얘기였다. 누군가 깨끗하게 칠해놓은 벽에 빨간색 락카로 가위표를 치는 걸 우두커니 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말릴 새도 없이, 가위표가 벽을 가득 채운 채 말라 가는 걸 보는 느낌. 내내 같이 좋아해 놓고 어떻게 그래? 너가 그 사람 좋아한대서 내 맘이 봄날 창문처럼 열린 건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같이 그 사람 노래를 듣고, 이야기하고, 노래 들으면서 걷고, 노을을 보고, 첫눈을 맞던 시간이 다 거짓말이었어?

라고 물을 수는 없었다. 어떤 대답이든 믿을 수 없을까 봐.


대신 나는 계단을 많이 오르내려서 짜증 난 사람처럼 말했다. 목소리에서 가시를 빼려고 했지만 꽁치 가시처럼 안 보이는 잔 가시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말해? 어떻게...


그렇게밖에 말하지 못한 것을 나중에 후회했다. 어떻게든 그 말이 불쑥 튀어나온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들었어야 했다. 그런데 설명을 듣기도 전에 포기해 버린 거다. 어떤 말로도 빨간 락카의 벽이 지워지지 않을 걸 알아서 그랬는지도 몰랐다.


우리는 한번 더 만났다. 맨발에 딱딱한 가죽구두를 신고 나온 벅은 발이 아프다는 얘길 몇 번이나 했다. 그만 걷고 싶은 거냐고 물으면 그건 아니라고 했다. 걷는 건 좋은데 그저 신발이 불편할 뿐이라고. 반창고를 사주고 싶었지만 약국도 편의점도 없는 동네였다. 집에 돌아와 카카오톡 선물로 반창고를 보냈다. 그런 것도 선물 리스트에 있다니 카카오톡은 확실히 섬세하다고 생각하며.

선물을 받은 벅에게선 답장이 없었다.

시간이 얼마간 흐르고, 문자가 하나 왔다. 상대방이 선물을 거절해 반창고 가격을 환불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지금도 나는 사람을 만나면 어떤 신발을 신고 왔는지부터 살핀다. 상대가 맨발에 딱 맞는 가죽구두를 신고 오면 인사를 나누기 전부터 마음이 불편해진다. 우리는 맨발과 뻣뻣한 구두처럼 오래 함께 걸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다시 벅을 볼 일이 없을 거란 걸 그때 알았다.


사람은 잃어버려도 어떤 기억은 남아 해가 좋을 때 도드라지는 그늘처럼 불쑥 길 위에 떠오른다. 그럴 땐 그늘에 가만히 서 있다가 충분히 몸이 식으면 다시 해 쪽으로 나온다. 반창고가 문자 한 줄로 돌아온 순간보다 더 아픈 순간은, 벅과 내가 세상에 우리만 있는 것처럼 미친듯이 웃었던 순간들이다. 어떤 길 아직도 그 웃음이 살고 있어서, 지금도 거길 지날 땐 눈을 질끈 감고 전속력으로 달리는 마음이 된다. 달리다 넘어지면 무릎이 벗겨진다. 그러면 벌떡 일어나 다시 달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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