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폴폴 Jan 25. 2022

브런치보다 블로그 글이 더 좋다고요?


정말 아끼니까 해주는 조언이라며 당신이 서두를 꺼냈을 때, 이런 식의 서두가 좋은 이기로 이어지긴 힘들 걸 알기에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당신은 조심스러운 서두 뒤에 거침없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의 블로그 글은 짜임새가 있었고, 여운이 있었다.

그런데 브런치 글을 보면 너무 많은 얘기를 담으려고 안달복달하는 느낌이야. 연결도 안 되고.

글에는 미괄식과 두괄식이 있잖아. 그런데 네 글은 핵심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

블로그 글은 짧아도 좋았잖아. 깊이도 있었고.

지금 네 브런치 글은 그러니까... 길기만 하고, 중구난방이야.


꼭 그것 때문은 아니겠습니다만 당신을 만나고 온 후 이틀을 앓았습니다. 몸이 아픈데 자꾸, 부끄럽고 속상한 마음이 통증 사이사이 끼어들어 잠을 깊이 못 자게 하고, 먹던 숟가락도 내려놓게 했습니다.

그런가요. 제 글이 그렇게 엉망인가요.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진과 글이 반반인 블로그와 달리 글로만 말하는 브런치라서, 제가 욕심을 냈는지도요. 검색하는 누군가에 도움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올린 맛집과 카페 이야기랑은 다르게 아무것도 소개하지 않는 브런치 글은 재미없을지도요.


왜 한 페이지 안에서 많은 얘길 하려고 안달복달하며 핵심도 맥락도 없는 글을 썼을까요. 저는 거기에 대해 이틀 내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정보를 찾으러 온 사람들을 위해 쓴 블로그 글은, 저를 많이 보여줄 필요가 없었어요. 맛집에 가면 맛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영화를 보면 영화에 대한 이야기만 한 건 그래서예요. 그 이상을 쓰면, 블로그를 찾아온 사람들이 읽고 싶은 글이 아닐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브런치는 시작점부터 달랐어요. 무언가를 소개하는 포스팅이 아닌, 한 편의 완전한 글을 쓰고 싶어 시작했기 때문에 이곳의 글은 필연적으로 저를 보여주는 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블로그에 살고 있는, 예쁘고 신기하고 맛있는 것에 둘러싸인 저는 저의 아주 작은 부분일 거예요. 화를 내고, 울고, 심장이 쿵 내려앉는 순간과 피가 바짝바짝 마르는 기분을 꼼꼼하게 느끼는 저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굳이 그렇게 약점을 드러내는 이유가 뭐야, 글을 그렇게 쓸 필요는 없잖아,라고 당신이 말하면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어요.


이게 저예요. 누구한테도 화내지 않고, 억울한 건 썼다 지우고, 속상한 일은 쓴 약 삼키듯 삼느라 그동안 말 못한 사연, 짓지 않던 표정까지 다요.


욕심을 부리느라 맥락이 없었던 건 인정합니다. 네 글은 구려,라고 누군가 말하면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던 요조(훌륭한 글을 쓴 작가입니다.)와 달리, 저는 왜 쿨하지 못할까요. 아마도 내 글은 구리지 않아, 라는 쓸데없는 자존심이 있었던 거겠죠.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래도 한번 이렇게 인정하고 나면 앞으로 어떤 평에도 고개를 끄덕일 용기가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가 다 네 글은 내 마음을 울려,라고 하진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늦가을 출근길, 다음 신호를 기다리다 "브런치 작가가 된 것을 축하합니다."라는 문자를 받고 이 기쁜 소식을 누구한테 먼저 알리지, 고민하며 뛰어가던 그날감정은 진짜였습니다. 이제 여기서 너를 보여줘, 어지럽고 서툰 너의 생각과 느낌글로 풀어도 좋아, 라는 승낙을 받은 기분이었어요. 그 승낙이 저를 오만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누굴 만나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게 된 건 그 말을 해도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걸 안 뒤부터였습니다. 말로는 못 하는 걸 글로는 쓸 수 있는 이유는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위로의 유전자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쓰면서도, 쓰고 나서도 저는 위로받습니다. 상실과 고통을 이야기하는, 대체로 멋지지 않은 글을 쓰면서요.


그러니 저한테 그렇게 얘기해 주세요. 네 글은 확실히 구리다, 그래도 계속 읽게 되더라. 너무 부족해서 부족한 부분을 내가 채워주고 싶었어. 독자만 채울 수 있는 그런 구멍이 있잖아,라고. 그러면 저는 무얼 쓸까 종일 고민하, 퇴근 후에 집안일을 마치고 모니터 앞에 앉아 잠들 때까지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을 계속할 힘이 생길 겁니다. 후회하게 되더라도 오늘은 조금 더 어리석어지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셔틀콕의 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