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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폴 Jan 19. 2022

어떤 사람이 네 명의 친구를 초대했어


그런데 세 명만 온 거야.

- 와야 할 사람이 안 오네.

생일을 맞은 사람이 말했어.

- 그럼 나는 안 와도 될 사람이었단 말이야?

친구 하나가 가 버렸어.


- 가지 말아야 할 사람이 갔네.

생일을 맞은 사람이 말했어.

- 그럼 나는 가도 되는 사람이란 말이야?

또 다른 친구도 가버렸어.


- 이제 아무도 없네.

그 말을 듣고, 남은 친구 하나가 말했어.

- 내가 여기 있는데, 나는 너한테 중요하지 않은가 보구나.


생일을 맞은 사람은 혼자 남았어.

이게 오늘의 이야기.


락이 이 이야길 하길래 어디서 읽었어? 물었더니, 본인이 만든 이야기래.

 얘기 내 글에 써도 돼?

고개를 끄덕여서 여기 적어둔다.


얼마 전에 <틱, 틱... 붐!> 이란 영화를 봤어. 보면서 네 생각을 했지. 자막 있는 영화는 보고 싶지 않 너에게 이 말을 하면 보고 싶은 마음이 들까. 이 영화는 너가 사랑하는 뮤지컬에 관한 영화야. 처음부터 끝까지 뮤지컬이고, 뮤지컬을 만드는 사람들이 나오는 영화야. 이렇게 말해도 너가 흠... 하고,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침묵에 잠긴 팔짱을 안 푼다면 나는 넌지시 진짜 하고 싶은 말을 털어놓겠지.

뮤지컬 영화긴 한데, 마냥 신나는 트랙이 많진 않아. 창작이 얼마나 힘든지 보여주는 영화야. 실패에 대처하는 자세에 대한 얘기, 삶과 예술을 동시에 가동하면서 어느 쪽도 버려선 안 되는 세상 모든 지망생들의 이야기야.


정신없이 바쁜 존(앤드류 가필드)은 파티를 하다가도 작품을 쓰고, 이별을 하는 중에도 작품을 생각하고, 일요일 오전의 브런치 카페에서 수십 명의 주문을 동시에 받으면서도 작품을 떠올려. 애인은 일 때문에 다른 도시로 간다는데 잡을 수도 없고, 같이 갈 수도 없지. 같은 꿈을 꾸던 친구는 존이 가장 좌절한 날, 시한부 판정받은 사실을 털어놓고.


존은 이뤄야 하는 꿈이 너무 크고 무거워서 가까운 사람들이 꿈 대신 뭘 택했는지 들을 시간도 없었어. 대신 곧 서른이 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되뇌지. 서른이 되기 전에 멋진 작품을 세상에 내놓아야 해서, 주소 안 쓴 봉투를 우체통에 넣답장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살아. 빠뜨리면 안 되는 걸 놓치고도 그 사실을 몰라서, 바쁘게 지내다 편지는 잘 갔을까 문득 떠올리는 사람처럼.


영화를 보고 나서 <삼십 살>이라는 만화도 봤어. 이 작품 속 앙꼬도 서른이야. 뉴욕과 성남, 다른 공간에 사는 동갑의 청춘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같은 시간을 치열하게 지나는 걸 본 셈이야. 두 작품을 연달아 만난 건 우연이었을까? <삼십 살>을 서가에서 꺼낸 게 <틱, 틱... 붐!>을 본 며칠 후였으니까 머릿속에 '30'이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펄떡이고 있는 때였는지도 몰라.


삼십 살은 처음 봤을 때도 멋부리지 않아서 멋진 작품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봐도 그랬어. 동네에서 십 년을 만난 순대 아줌마가 친구보다 좋다는 이야기나, 항암 치료를 받고 머리칼이 다 사라져도 예쁜 엄마 이야기, 나흘에 걸쳐 먹으려고 일부러 멀리 가서 사 온 노래방 포스틱을 한자리에서 다 먹어버린 이야기 같은 건 정말 좋지.


작가의 다른 책도 있나 찾아봤는데 <나쁜 친구> 한 권 빼고는 다 품절이더라. 그걸 주문해 놓고 기다리면서 작가 사진을 찾아봤어. 만화 속에선 늘 추리닝 차림에, 삼각김밥 같은 헤어 스타일이었는데 사진 속 작가는 다른 사람이었어. 냉장고없어서 모든 계절을 여름과 겨울처럼 지내는 사람으로는 보이 않았어. 건강해 보이는 발그레한 뺨과 장난기 린 눈이 만화 페스티벌에서 받은 트로피를 들고,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웃고 있었어.


그림을 그릴 줄 알면 그게 좋은 것 같아. 거울에 비친 모습 말고도 스스로 그린 자신의 모습을 하나 더 갖게 되는 것. 둘 중 더 마음에 드는 게 어느 쪽인 모르겠어. 몰라도 웃고 있는 걸 보니 안심은 되더라, 완전히 마음이 놓인 건 아니지만. 만화에 나온 것처럼, 앙꼬가 며칠 밤을 새우 작업을 하고 전기장판에 살이 타는 것도 모른 채 잠든 게 아니면 좋겠어.


영화 속 존도, 만화 속 앙꼬도 서른으로 가는 시간 절벽으로 질주하는 자동차에 탄 시간인 것처럼 그렸지. 그런데 막상 거기 다다른 후에는 도착지가 적힌 왕복행 티켓처럼 편안해 보였어. 옆에 사람들이 있어서 그랬을 거야. 잠긴 문장과 풀린 문장 사이, 형광펜으로 칠한 문장처럼 중요한 사람들. 요즘 너 너무 정상 같은데 그래 가지고 작품이 나오겠냐고 걱정해주는 사람들.


어느 날 난 소용돌이 모양으로 말린 통통한 순대를 썰 거야. 순대를 썰다가 터지기 직전의 굵은 마디가 나오면 아, 해-라고 말하면서 네 입에 그걸 넣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러고 나면 뱃속이 따뜻해져서 멀리 갈 힘이 생기겠지. 노래방용 대형 과자 봉지를 바스락거리면서, 가자, 거기가 어디든. 서로에게, 세 명의 친구가 오지 않아도 곁에 머무르는 한 으로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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