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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폴 Mar 18. 2022

한때였든 한결같든


선물 받은 책의 책날개를 들여다본다. 권태를 모르는 사람처럼 변함없이 다정하게 건 고백에 흔들리다 글을 쓴 사람의 얼굴이 궁금해질 때. 고요하고 다부진 표정과 연한 그림자를 만드느라 살짝 접힌 옷 주름을 본다. 가만한 눈길이 마지막으로  곳은 팔을 움직일 때마다 살랑, 소리를 내며 흘러다니다 결국 자리를 잡팔찌들이다.


그녀를 여행객이 아니라 현지인으로  건, 웃음기 하나 없이여유로운 표정이나 빗방울 끝까지 살아서 미끄러질 것 같은 촉감의 재킷이 아니다. 나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양의 장신구들이다. 렇게 많은 패물을 하고 있는 사람은 분명 가까운 데 돌아갈 이 있을 것다.


단단한 동그라미는 사람의 둥근 부분에 채워지는 순간 뿌리를 내린다. 채워지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자 숙명이다. 밤이 깊어 뿌리를 벗기고 내려놓으면 문고리를 닮은 동그라미들은 문을 닫아 놓은 방처럼 잠이 든다.

 

맥박이 뛰는 자리마다, 스치면 마음이 화들짝 놀라는 자리마다 걸어주는 고백.

그건, 자리에 머물고 싶다는 뜻이다.


반짝이는 것들 한번 흘리면 다시는 찾을 수 없는 정글이나 툰드라걸고 가는 사람은 없다. 금방 돌아올 수 있는 거리만, 다시 풀어놓을 자리 금 도착할 수 있을 때만 데려가는 마음은 얼마나 아끼는 마음일까.



홍대 앞보다 마레 지구가 좋았다

내 동생 희영이보다 앨리스가 좋았다

철수보다 폴이 좋았다

국어사전보다 세계대백과가 좋다

아가씨들의 향수보다 당나라 벼루에 갈린

먹 냄새가 좋다

과학자의 천왕성보다 시인들의 달이 좋다


멀리 있으니까 여기에서


김 뿌린 센베이 과자보다 노란 마카롱이

좋았다

더 멀리 있으니까

가족에게서, 어린 날 저녁 매질에서


엘뤼아르보다 박노해가 좋았다

더 멀리 있으니까

나의 상처들에서


연필보다 망치가 좋다, 지우개보다 십자

나사못

성경보다 불경이 좋다

소녀들이 노인보다 좋다


더 멀리 있으니까


나의 책상에서

분노에게서

나에게서


너의 노래가 좋았다

멀리 있으니까


기쁨에서, 침묵에서, 노래에게서


혁명이, 철학이 좋았다

멀리 있으니까


집에서, 깃털 구름에게서, 심장 속

검은 돌에게서


- 진은영,  <그 머나먼>


나에게 둥근 것을 준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한때였든 한결같든 모두 가깝고, 고, 깊은 사이인 얼굴들. 만난 지 한참 지나서든 얼마 안 되어서든, 그들은 몸의 둥근 데 걸어야 생명을 얻는 것들을 주었다. 아주 멀리 가도 금방 돌아올 사람처럼 지니고 있으라고, 이걸 두르고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고. 마음속 사막헤맬 때 나는 어김없이 그것들을 북극성 삼아 돌아올 수 있었다.


어디 살든 떠날 곳과 때를 명심하며 사는 나는 장신구를 오래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라, 멀리드나드는 마음을 붙잡는 지긋한 마음이 어떻게 생겼는지 이제 알았다. 그 마음이 처음과 끝을 알 수 없는 원으로 태어나 벽이 많은 방에 살고 있는 걸 이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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