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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폴 Mar 19. 2022

피아노 선생님 지망생의 역사



질문은 몰랐던 하나를 접하고 나서, 다음 단계도 알고 싶을 때 생겨난다. 아무것도 모를 때는 그 세계가 도무지 궁금하지 않은 것이다. 세계가 직선처럼 단순하던 시절, 선 바깥에는 뭐가 있는지 본 적이 없어 궁금한 게 던 시절, 물음표가 없는 표정으로 그 앞에 앉았다.

거대한 과묵함이, 빛나는 검은색 뚜껑에서 우러난 광택은은하게 눈부신 아이였다. 눈을 뜰 수 없는 눈부심이 아니라 손으로 쓸어보고 싶은 눈부심이었다. 푹신한 소파와도 딱딱한 식탁 의자와도 다른 엉덩이 촉감을 가진 갈색 스툴에 앉으니 다리는 땅에 닿지 않고, 손끝에 힘이 안 들어가 울리는 소리 연약했다.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의 꼬맹이가 피아노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이유가 뭐였는지는 모른다. 다만 여물지 않은 손가락으로 건반을 누를 때, 따뜻한 손가락과 서늘한 건반이 어색하게 만나 울리는 리가 서로 닮은 온도가 될 때까지 애쓰던 게 기억난다. 손과 건반의 온도가 같아지면 그때부터 건반과 손가락은 구분이 안 되기 시작하고, 한 건반에서 다음 건반으로 날아가는 손가락의 뒷모습에 신경 쓸 겨를 없이 머릿속으로 악보의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그럴 때, 사람의 목소리가 말하지 않는 걸 사물의 목소리가 이렇게 풍부하게 표현하다니, 하는 감탄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악보와 건반은 어린 시절 나의 거의 전부가 되었다. 책을 읽거나 숙제하는 시간을 빼고는 피아노 앞에 주로 앉아있었다. 선생님이 오늘 배운 걸 서른 번 연습해오라고 해도, 쉰 번 같은 곡을 쳐보라고 해도 그게 얼마나 오래 걸리고 번거로운 일인지 계산해본 적이 없었다. 건반은 누를 때마다 매번 다른 목소리로 말을 거는 친구 같았으니까.


대회라도 나갈라치면, 전국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대부분의 수강생이 대회에 나가는 걸 까맣게 모르는 사람처럼 열심히 연습했다. 대회에 입고 나갈 옷은 계절과 상황에 맞으면서도 뚜렷한 존재감을 심어주는 것이어야 했으므로, 차차 레이스가 많이 달린 드레스보다 모던하고 심플한 옷을 선택하게 되었다. 무대에 올라 피아노까지 걸어가는 동안 내 머릿속은 갑자기 손가락이 다른 건반을 누르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으로 가득했지만 터질 듯한 긴장감과 불안을 없애고 싶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키가 자라며 색과 디자인이 다른 몇 벌의 대회용 의상을 입었다 벗는 동안 피아노만큼 재밌는 것들이 세상에 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른 즐거움에 눈떴다는 건 무엇보다, 기분이 내킬 때만 하는 연주의 양으로 알 수 있었다. 이젠 선생님도 피아노 전공을 진지하게 권하지 않게 되었고, 건반을 잘못 짚어도 귀여운 아이인 시절은 사진으로만 남게 되었다.

그래도 피아노는 계속 쳤다. 적성 검사를 하든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든 음악과 문학 여전히 나를 지탱하꿈꾸게 하는 굳건한 축이었기 때문이다.


인문계 고등학교와 예술 고등학교 중 어디를 가는 게 좋을까 고민하다가, 전문가에게 실력을 점검받아 보기로 했다. 외우고 있는 곡을 휘몰아치듯 연주하고, 뿌듯하게 선생님을 쳐다보자 선생님이 손을 좀 보자고 하셨다. 손을 들여다보던 선생님가벼운 한숨을 쉬며 말씀하셨다.

손이... 작네요. 피아노를 치기엔 작은 손이에요.


손의 크기가 피아노 연주에 중요한 조건인 줄 몰랐던 나는 놀라고 어리둥절한 눈으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전공을 하면, 엄지와 새끼손가락이 도에서 다음 미까지 동시에 누를 일이 많아요. 그런데 도와 미를 동시에 누르기 힘들어 보이는 손이에요.


그 말눈앞에서 닫히는 문 같았다. 손이 작은 사람은 들어올 수 없다는 표지판이 꽂힌 성 앞에서, 서서히 문이 닫힌다. 나귀를 타고 국경을 몇 개나 넘어 도착한, 후드를 뒤집어쓴 나그네는 손이 너무 작은 아이. 그 아이는 닫힌 문 앞에 서서,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보기 시작한다.


나는 왜 손이 작은가.


피아노 뚜껑을 덮고 나서 피아노 근처에 가지 않았다. 피아노 연주곡이나 피아노 반주가 유려한 노래도 듣지 않았다. 십 년 넘게 몸담았던 클래식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나는 발라드와 과 포크와 재즈와 힙합의 세계로 들어갔다. 클래식을 제외한 모든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음악의 세계는 지구본 위의 동네들만큼 다채롭고, 노을이 퍼 하늘만큼 다양한 조각을 갖고 있어서 어느 동네에 머물든 지루할 틈이 없었다. 연주자가 아니라 감상자여도 행복한 세계였다. 음악 속에서, 나는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나그네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같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둘만의 언어로 대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내가 따르고 나를 아꼈던 피아노 선생님들이 생각난다. 선생님은 꼭 너 같은 딸을 낳고 싶다며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에 나를 데려가 제자라고 소개했고, 저녁 대신 과일 샐러드를 나한테만 몰래 나눠주기도 했다. 선생님이 반주자, 내가 보컬이 되어 함께 동요 대회에 나가기도 했고, 성당의 반주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다른 아이가 피아노 레슨을 받는 동안 빈자리가 나길 기다리며 학원에 비치된 어린이 만화 잡지를 다 읽었고, 선생님 친구결혼식에 반주자로 초청을 받다.


그거면 된 건지도 몰랐다. 그 정도의 추억이면 충분한 건지도. 지금도 나는 모든 악기 중에 피아노를 가장 좋아하는데, 거기 꿈을 품은 적이 있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혼자서는 도저히 옮길 수 없는 육지의 고래 같은 늠름한 위용에 감탄하다, 고래의 매끄러운 등을 어루만질 때가 있다. 그때 잠깐, 아주 잠깐 손이 작은 사람도 칠 수 있는 작고 귀여운 피아노의 세계로 들어서는 나를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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