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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폴 Dec 27. 2022

여름 방학

- 겨울에 부치는 여름, <강과 나_ 김소연>


사진 한 장이 있다. 여물지 못한 다리를 책상 위에 ㄱ 자로 올리고 머리는 하나로 질끈 묶고 있다. 책을 무릎에 올리고 있는데, 내용은 안 보인다. 그 모습 그대로 몇 시간째여서 어느 때 렌즈를 갖다 대도 흔들림 없는 사진이 찍혔을 것이다.


일어나서 늦은 아침을 먹고, 그림자를 늘이며 앉아 있었겠지. 여름 방학은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공기 중의 끈적임 함유량만큼 많은 니까.


동생들은 아침부터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축구나 태권도를 하러 갔을까. 아니면 와아아- 소리 지르며 몰려다니기만 해도 아드레날린이 샘솟는 시간을 즐기러 나갔을까. 식구들이 빠져나간 거실의 침묵은 묵처럼 굳어 있다. 살짝 밀면 그대로 미끄러지지만 들어 올리기 전엔 부서지지 않는다. 묵을 반으로 나누는 젓가락처럼 사뿐히 공기를 가르며 걸어가 냉장고를 연다. 희미 진동이 잦아든 후에 퍼지는 냉장고 허밍을 따라 하다 문득, 속이 궁금해지면.


자두나 복숭아나 포도 같은 게 있는지 둘러본다. 여름날은 여름 과일 색으로 물들고, 여름을 지나는 사람은 과일의 즙을 마셔야 작열하는 공기 속에서도 말라붙지 않으니까.


엄마가 할머니한테 보따리를 갖다 주라고 한 날이었다. 아이가 들 정도로 가벼웠던 걸 보면 잃어버려도 큰일날 물건 아니었을 것이다. 혼자 멀리 갈 수 있는지 알아보는 목적이 절반은 성공이 보장된 임. 어릴 때부터 버스 통학을 해서, 창문을 열고 바람을 온 얼굴로 맞으면 목적지까지 빨리 가는 걸 아는 아이다. 버스 라디오에서 기분에 어울리는 노래가 나오면 거기 기대 공상을 하고, 비 오는 날엔 소리에도 날개가 달려서 멀리까지 가는 걸 아는 아이.


신호를 기다리느라 멈춰 선 차들은 소리 내는 법을 잊은 동물들처럼 엎드려 숨죽이고 있다. 배부르고, 천적은 멀리 있는 짐승들처럼. 생명 있는 것들은 다 눈꺼풀에 볕을 쬐어 에너지를 비축하라고 말하는 듯한 햇살 사방에 가라앉아 있어서.


집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대문은 쉽게 열렸다. 대청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신발을 흔들어 벗으니 허벅지에 시원한 마루느껴다. 나무는 뿌리에서 분리되어 다른 사물이 되도 자기만의 온도를 갖고 있다. 여름엔 그늘을 간직하고, 겨울엔 햇살을 가두는 형태로. 몸통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에이 머무를 수 있단 걸 알려주려는 것처럼.


버스에서 내려 걸어오는 동안 축축해진 목덜미와 손을 씻고, 마루에 길게 몸을 누이자 기다렸다는 듯 바람이 몸을 덮는다. 뜨거운 허공에 찬 입김을 불어 넣은 이불을 둘러 주듯이.


펄럭이고 싶을 때만 펄럭이는 바람을 덮고 눈을 감으면, 더듬더듬 잠의 페이지가 펼쳐진다. 눈을 감지 않고, 바람의 이불을 덮지 않고는 누구도 그 페이지에 적힐 수 없다. 일단 들어가면 모든 잠의 징검다리를 빼곡히 밟지 않고는 나올 수 없고.


베고 잘까 어쩔까 고민될 정도로 신한 보따리를 옆에 밀어 놓고 연못 위를 겅중겅중 뛰어가는 소금쟁이 속도로 눈을 깜빡이다가, 의식이 펄럭이는 페이지 아래로 미끄러져 들어가면

탕,


닫히는 소리를 들을 새도 없이 속눈썹이 잠의 입구를 잠근다.


멀리서 희미하게 타다닥거리는 소리,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 자박자박 걷는 발걸음 소리. 손으로 문질러 닦은 비 오는 날 차창처럼 풍경을 보여 줬다 가렸다 하는 소리다. 누운 채로 고개를 돌리면 반쯤 뜬 눈두덩에 힌 할머니 뒷모습...


더 자지, 왜.


꼭 안아주지도, 언제 왔냐고 묻지도 않고 할머니는 멀찌감치 쭈그려 앉아 불을 피우고 있다. 마당은 순하고 끈질긴 연기로 무럭무럭 뒤덮이는 중이다. 이름을 부른 사람도 없는데 발딱 일어나 신발을 꿰고 할머니 곁에 앉아, 지금부터 그걸 바라보기로 결심 사람럼 열심히 연기를 본다. 연기 속에서


생선이 버적버적 구워지고 있다. 햇살이 퍼질 무렵 수면처럼 빛나던 비늘이 단단한 밤의 색으로 변하는 동안, 바다 냄새 마당을 채운 생선이 씹기 좋게 연해진다. 여린 손가락으로 눌러도 뭉개질 정도로 홈홈 생선이 손에 쥐어진다. 할머니가 다음 생선을 태우지 않으려고 몸을 돌리면, 눈만 끔뻑이다 연기 속을 빠져나온다.


그 마당에서 가장 실한 걸 들고 있는 에 힘이 들어간다. 무거워서가 아니라, 바스라져 흩어진 낙엽처럼 모양을 간직하지 못하게 될까 봐. 놓치지 않을 정도로힘을 주되 반으로 갈라지지 않을 만큼 힘을 빼 하는 일은, 저녁 마지막 임무일까.


입안이 바스라진 처음으로 가득차면, 갓 퍼낸 밥알처럼 은근히 쫄깃한 순간을 지나 나긋나긋하게 퍼지는 살이 느껴진다. 달고 짜고 기름진 맛의 두루마리를 으깨서 한입에 넣고 읽는 느낌. 지느러미를 활짝 펼고 종횡무진하던 생동감이 입속에서 재현된다. 흰 살은 무르익은 열매처럼 달고 녹녹한데 껍질은 간간짭짤해서 해 아래 바싹 말린 소금의 짠맛과는 다다. 연한 혀서질 정도로 부드러워 입 속에서 펴진, 접힌 순 같다.


입가에 시커먼 걸 잔뜩 묻힌 것도 모르고 연기 쪽으로 다가가 앉으면 할머니는 생선 한 마리를 내밀고, 도무지 도리질할 틈 없어


두 마리는 많아요...


속으로만 말한다. 뜨겁고 짭조름한 여름 저녁을 받아 입에 넣는다.





진샤와 폴폴이 시에 관한 모든, 뭐든 주고받습니다.


침묵 속에서 얼마나 많은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그걸 아는 이들 눈을 맞추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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