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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폴 Nov 26. 2021

잡지 <페이퍼>와 <씨네 21>

안개를 뚫고 보러 간 <프렌치 디스패치>


학창 시절 가방엔 자주 두 권 중 한 권이 들어 있었다. 잡지를 읽으며 생각했다. 이렇게 쓸모 있고, 전문적이고, 여운이 남는 글이 한 달 후에(혹은 며칠 후에) 사라지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월간지인 페이퍼는 한 달이 지나면, 주간지인 씨네 21은 한 주가 지나면 새로운 호의 발행과 함께 지난 호가 잊히게 마련이었다. 아끼던 이 잡지들에는 액자에 담아놓고 싶을 정도로 소중한 기사와 칼럼이 넘쳤다.

가깝거나 먼 곳의 최신 정보로 사회의 흐름을 파악하고, 간직하고 싶은 문장을 아껴 읽는 일. 잡지를 읽는 일은 그런 일이어서, 잡지를 닮은 인간이란 말은 찬사로 느껴졌다.


사는 곳이 바뀔 때마다 언젠가 펼쳐볼 거란 생각에 잡지를 가장 먼저 싸고, 풀었다. 실제로 몇 번 펼쳐 보기도 했지만, 잡지를 오래 간직한 건 순전히 보존하고 싶은 욕구 때문이었다. 잡지는 방에 풀어놓을 수 있는 활자로 가득한 숲이었다.


 -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담배와 커피 한 잔, 친구와의 대화, 너와 나, 그리고 5불이야.

라던 <청춘 스케치> 대사처럼, 그때의 나는 두 권의 잡지와 하루치 밥값이면 충분히 만족했다.  


밥벌이를 스스로 하면서부터 가방에서 잡지가 사라졌다. 잠도 야금야금 아껴 자고, 통근하는 전철 안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날들이 이어지면서 가방에 잡지 대신 두꺼운 업무 일지를 넣어가지고 다녔다. 최신 문화와 예술을 가까이 두고 향유하는 시절은 초보 운전자의 장거리 운전처럼 먼 미래가 되었다.


프렌치 디스패치를 보는 동안,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이야기가 아닌데도, 관객이 놓칠 수도 있는 엄청난 양의 정보와 미장센의 화면이 쉴 새 없이 휙휙 지나가는데도, 나는 내 잡지들이 떠올라 가슴이 아팠다. 잡지로 가득한 지구를 떠나 텅 빈 책장이 놓인 달로 이주한 마지막 주민이 된 기분이었다. 잡지를 모으는 게 취미라는 감독 웨스 앤더슨이 부러워졌고, 미니멀리스트로 살겠다며 모은 잡지를 다 내놓고 다른 것들로 그 자리를 대신 채운 나의 지난날이 스크린 위에 겹쳐 보였다.


그래도 세상엔 그런 사람이 있다. 우리가 내놓은 어떤 시절을 고스란히 불러와 옆에 앉힐 계획이 있는 사람이. 모두 최신호에 열광할 때 혼자 가만히 오래된 잡지의 접힌 페이지를 펼치는 사람이. 그들이, 세상에 영원히 사라지는 건 없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꿈에 나오길 바라게 되는 다채로운 화면들 뒤에서 접힌 시절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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