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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토라 Mar 04. 2023

퇴사했다. 직업-'주부'라고 적었다. 우리 엄마처럼.

아주 짧은 순간의 결정이었다. 

만 4년의 고민을 멋쩍게 할 만큼 짧은 찰나였는데, 

"퇴사하겠습니다"라는 말이 내 입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 이후로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너무 행복했으며, 동시에 혼란스러웠다. 


나도 결국에는 엄마처럼 교사를 하다가 전업주부가 되었다는걸 깨달은 건 한참 후였다. 


퇴사 후, 

망가졌던 몸을 산책이 가능할 정도로 되돌리는 데에만 6개월이 걸렸다. 


그리고 '토리'가 생겼고, 우리는 세 가족이 되었다. 

글을 쓰는 지금 토리는 26개월의 귀여운 여자아이이다. 


뇌구조에 온통 '토리'였다. 

토리가 잘 먹는지, 잘 싸는지, 잘 크는지, 건강한지만 궁금했다. 

내가 밥은 먹는건지, 쓰레기를 치우는건지, 설거지를 하는건지, 청소를 하는건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임신을 포함해서 3년의 기간동안 계속 집에서 일을 했다. (코로나때문에 더 집에 있기도 했다.) 


그게 '전업주부'라는 걸 최근에서야 인식하게 됐다. 

토리가 다음달에 어린이집 입소를 하게되는데, 

이런저런 준비를 하면서 대외적인 나의 역할은 '토리엄마'이고 '전업주부'임을 새삼 상기하게 됐다. 


내가 '주부'라니. 

평생 생각해보지 않았던 단어라 당황스럽기도 한 마음에 브런치를 시작하게(?) 되었다.


10대부터 30대까지 오로지 공부만 했고, 

나만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내가 상상했던 미래는, 내 커리어를 끊임없이 발전시켜나가고

보다 좋은 교육을 하고,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인간으로서 

쿨한 엄마이자, 든든한 가정의 뿌리가 되고 싶었다. 


현실은, 청소와 빨래, 그리고 사랑하는 토리를 껴안고 집에서 부대끼는 한국엄마다.


요즘 살림을 배우는 친구들이 있을까?

자신의 일 외에 타인을 챙겨야만 하는 일 있었나?

나는 없었다. 

내가 하고싶은것만 했고, 나를 위한 일만 해왔다.


그런 나에게, 이 귀여운 '토리'는 

생각보다 훨씬 더 나를 뿌리끝까지 뒤흔드는 존재였다. 

내 가치관, 존재의 이유까지 바꿔버리는 그런 신같은 존재랄까.


우리 엄마의 삶에 대해 궁금했던 적이 없었는데, 

엄마의 삶이 얼마나 치열했던 건지 이제야 알겠다.

왜 항상 엄마는 전업주부인데 그렇게 바빴던 건지.

똑같이 살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어렸을 적 엄마의 뒷모습만 보였었는데, 

이제는 그 뒷모습을 넘어 엄마가 고군분투하고 있었을, 또는 당황하고 있었을 

앞표정까지 그려진다. 


그렇게 나도 똑같이 '엄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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