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은 말은 대중적 보편적 일반적 정석 등이 있다
나는 어렸을적 타로나 사주를 보는게 재밌었다.
학교에서는 기질검사,적성검사 등 테스트 보는게 재밌었다. 지금에서야 보니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객관적인 언어”로 나를 표현해주는 그 말이 너무나 통쾌하고 재밌었던것 같다.
지금도 주저리주저리 적긴 하지만
조금씩 “키워드”로 나를 정제해나아가고 있다.
나만의 특별함, 개성을 존중받기를 원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영재”교육의 인기는
사실 똑똑한 아이도 있지만
*내 아이의 개성을 존중해주고, 특별하게 여겨달라는 외침일 수도 있다.
내 아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집중도가 높아지고, 교육수준이 높아지면서 “인정해달라, 잘 보살펴주고 특별히 관찰해달라”는 것이다.
영어유치원을 보내는게
정말 영어를 원어민처럼 시켜달라는 것 뿐일까?
소수정예로 케어를 매우 잘하기 때문이다.
특별하게 잘 돌봐준다는 거다. 거기에 영어는 덤.
그런데 섬세하게 케어받던 아이를 초등학교1학년에
갑자기 한반 30명의 공립초 보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러면 이제 국제학교(미인가까지도)로 눈을
돌리는건 당연하다.
영재교육의 기본은 “개별화”이다.
사실 진짜 영재교육보다는 개별화(때로는 조금 더 전문적인 내용추가)를 추구한다는 뜻에서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공교육도 1:5 (말도 안되지만)로 케어해준다면?
중학교 1:10, 고등학교 1:15라면?
보내볼만 하지 않을까?
강사든 교사든 가르치는 사람들은 성향상 대부분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아이들을 좋아한다.
(사회적 경제적이유로 오랜기간 재직후 성향이 바뀔뿐..)
학생 인원수만 적어도 훨씬 더 교류가 잘되고
이해를 잘해주고 심도 있고 전문적인 교육이 될 것이다.
아이에게 최고의 선생님은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관심과 칭찬으로 인정해주고 동기를 부여해주는 것이니까.
난 이런 이유로,
공립학교도 망설여지고,
작은 인원수만을 지양하는 미인가 학교를 보내기도 고민되고,
한국 문화와 다른 외국학교를 보내기도 어렵고,
내가 낯설을 시골학교를 보내자는 결정도 어렵다.
기관보다는 좋은 선생님을 만났으면 하는 바램으로
열심히 찾아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