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시절

강박과 불안에 지배당한 유년기

by 유리멘탈

초등학교 2학년, 아침 조회시간에 우리 반 학생들의 의무였던 '운동장 10바퀴 돌기'를 하며 강박 사고의 악몽은 시작되었다. 갑자기 어제 본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에 나온 아주 말 안듣고 얄미운 아이를 '패주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내가 그렇게 폭력적인 생각을 하다니?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릴때부터 몸이 약하던 사촌동생이 '감기에 걸렸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툭 튀어나왔다.

나는 또 충격을 받았다. 그런 생각은 나쁜거라는 죄책감이 들면서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나쁜거니까 하면 안돼'라고 생각할수록 자꾸만 그 생각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저학년때 들던 생각은 약과였다. 그때의 어린애가 할수 있는 나쁜 생각이라곤 '감기에 걸려라' '때려주고 싶다'가 전부였다. 하지만 커가면서 매체에서 접한 것들이 많아지고 점점 '원치 않는 생각'의 수위가 높아졌다. 그리고 점점 내가 너무나도 사랑해서 그런 잔인한 생각의 대상으로 삼으면 죽고 싶을 만큼 죄책감을 느끼는 대상으로 뻗쳐나갔다. 가족 말이다. 내가 죄책감을 느끼면 느낄수록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초등학교 4학년쯤 되니 일상의 모든것이 큰 자극으로 느껴졌다. 정말 내 일상의 모든 것이 내 '잔인한 사고'의 먹잇감이 되었다. 예를 들어 사극 드라마를 본다. 죄인을 참수해서 창에 꽂아두는 장면이 간접적으로라도 나온다. 그러면 내 강박적인 뇌는 바로 그 장면에 우리 부모님을 대입한다. 이때쯤 되면 이제 드라마는 안중에도 없다. 이미 나는 드라마에 나오지도 않았던 아주아주 잔인한 장면을 상상해서 부모님을 대입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일상에서도 항상 불안해서 아무것도 할수가 없었다. 내가 접하는 모든 것들이 '잔인한 사고'가 되기 때문에..


그리고 나 때문에 그러한 생각들이 실현될거 같은 불안 때문에 나중에는 그런 생각을 하고 나면 바로 하나님께 '정정 기도'를 올리는 강박도 생겼다. 이건 절대로 내 진심이 아니니까 내가 무슨 생각을 하든 절대로 들어주지 말라고. 쓰다보니 정말 가지가지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나는 3년 넘게 강박의 세계에 갇히게 되었다.

내 뇌는 쉬지않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내 죄책감을 자극하는 생각들이, 잔인하고 무서운 생각들이 떠오르니까. 내가 접하는 모든게 시도때도 없이 잔인하고 무서운 생각으로 변해버리니 아무것도 할수가 없었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고 들을 수 없었다. 매일같이 생각에 빠져 살았다. 나중에는 머릿속에 확성기를 하나 상상하고 계속해서 사이렌 소리가 나오는 상상, 누가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는 상상을 했다. 잔인한 생각이 침투하지 않도록. 지금 생각하면 강박으로 강박을 누른거였지만.


부모님에게도 말해봤지만 점점 생각의 수위가 높아지자 입 밖으로 꺼내는 것도 너무 죄송스러워서 그냥 혼자 견뎠다. 그리고 솔직히 부모님과의 상담은 전혀 도움이 안되고 죄책감만 자극했다. 엄마는 항상 '우리 00이가 엄마아빠가 미워서 그런 생각을 했나보네~ 그럴수 있어' 했으니까. 나는 전혀 진심이 아닌데!


아마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항상 음침한 아이였을 것이다. 항상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서 멍하게 있으니까. 아마 가끔 기도문을 외운다고 중얼거렸을수도...

그때 나는 항상 머릿속으로는 치열하게 강박사고와 싸우고 있었다. 하나님께 '이건 내 진심이 아니에요'라고 기도문을 올리면서 (웃긴건 나는 무교다.) 확성기에서 사이렌이 울리는 상상을 하며 잔인한 생각을 막아내고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쯤 서서히 강박 사고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내가 병원에 가고 상담을 받고, 제대로 치료를 받아서 벗어난 것이 아니다. 언젠가부터 이런 생각들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되고, (왜냐하면 이건 병이니까, 내가 원해서 하는 생각이 아니니까!)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되니 무시하는 것도 쉬웠다. 그렇게 서서히 자연스럽게 강박 사고에서 탈출하게 되었다.


내가 생각한 강박 사고를 탈출하는 핵심은 이거다.


죄책감 갖지 않기
이건 병이고, 내가 원해서 하는 생각이 아니다.


이런 강박적인 사고 외에도 '강박증'하면 흔히 떠올리는 손 씻기, 양말 색 맞추기, 개수 맞추기, 가스밸브 확인 등의 '강박 행동'도 있었다. 그리고 이런 강박은 성인이 된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지만, 아직도 강박적인 성향이 남아있긴 하다. 성인이 된 지금도 정신이 불안정할때면 강박적인 사고가 스멀스멀 올라오려고 하지만, 아직까지는 잘 막아내고 있다. '아 또 강박 올라왔네'하고 아무렇지 않게 넘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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