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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준 Feb 10. 2023

분홍빛 하늘

추체험의 여로

몽환적인 분홍빛 하늘.

 

마치 사랑에 빠진 것처럼

종종 하늘이 분홍빛으로 보이는 경우가 있다.


사실은 그저 8분 전에 태양에서 출발한 빛이 대기 중의 수많은 입자와 부딪치며 일어나는 산란 현상에 불과하다. 산란 현상으로 파장이 상대적으로 짧은 푸른빛이 감쇠되고, 파장이 상대적으로 긴 붉은 계열의 빛이 차창으로, 그리고 우리의 눈으로 도달하는 것이다.


막연한 사랑 따위와 상관없는, 그저 지구가 둥글고 태양빛이 전자기파이기에 일어나는 현상일 뿐. 그리고 무엇보다 그 순간 지구의 대기가 태양빛을 산란시켰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일 뿐이다. 만질 수도 없고 두 눈으로는 볼 수조차 없는 입자들 간 작용이고 지구를 구성하는 거대한 자연의 인과이다. 또한 지구 이상으로 광막한 태양계라는 코스모스에서 부리는 조화이다.


운전대를 잡고 액셀을 밟으며 고작 시속 100km 내외로 달리는 우리는, 저 커다란 우주적 세계관에서는 한낱 점보다 작은 존재이다. 분홍빛 하늘은 보잘것없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장엄하고 숭고한 현상이다.

 

우리가 어찌할 수 없고 뜻하지 않게 일어나기에 우리에게는 ‘우연’이지만

분홍빛 하늘은 코스모스를 구성하는 모든 존재들이 실처럼 면밀하게 엮은 ‘필연’에 가깝다.


자유로를 따라 달리는 차 안에서 너와 내가 나란히 앉아 음악을 들으며 마주한 분홍빛 하늘이 우연이 아니고 필연이라면,
우리가 만나고 있는 이 순간도 혹시 아득한 세상에서부터 시작된 필연이 아닐까.


‘타이밍’이라 부르는 우연적인 요소들이 모여 우리는 인연을 맺고 살지만 사실은 필연적 요소들에 의존하는 것이 아닐까. 옛날부터 우리는 그것을 ‘운명’이라고 부르곤 했다.


사랑에 빠지면

종종 하늘이 분홍빛으로 보이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온 세상이 분홍빛처럼 아름답게 보이기도 한다.

하늘거리는 초목들, 그 사이로 숨어드는 적적한 도로, 하늘을  유영하는 새들이 빚어내는 울음소리와 그 아래 하찮은 인류가 만들어 낸 회색의 건물들까지.

사랑하는 우리의 눈은 어느 화가의 붓놀림이 되기 바쁘다.


코스모스에서는 그 질서 아래 놓인 수많은 우주적 존재들이 각자의 목적을 지니고 상호작용하며 살아간다. 우리의 목적은 무엇일까. 세상을 분홍빛으로 물들이고 그 아름다운 풍경을 그저 아름답게 바라보며 살아가는 삶은 어떨까.


삶에 노을이 지는 순간까지도 아름다워 보이게끔 살아가고 싶다.

2022. 어느 여름날

자유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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