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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에서 Aug 26. 2021

고칠 수 있으니까

마음이 편해지는 생각

 말하기 시험은 학생들이 가장 떨린다고 하는 시험이다. 인터뷰 시험을 보는 날 시험을 앞두고 자꾸 시계를 보는 학생이 있었다.


“긴장돼요? 긴장하지 말고 준비한 대로 하세요”

내가 말하고도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드는 말을 또 해 버렸다. 말은 참 쉽다.


 말하기 시험은 확인이 필요할 때를 대비해 모두 녹음을 한다. 집에 와서 평가지를 정리하면서 녹음 파일을 다시 들어 봤다.


“쓱쓱 쓱쓱”

이게 무슨 소리지?


알았다. 녹음기가 내 손에 너무 가깝게 있었나 보다. 지우개로 평가지에 쓴 메모나 점수를 지우고 나서 지우개 가루를 손으로 치우는 소리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전까지는 괜찮다가 ‘쓱쓱’ 소리가 난 후에는 학생의 목소리가 떨렸다.

 시험을 볼 때는 학생의 말을 들으면서 어휘나 문법을 사용했는지, 내용에서 빠진 부분은 없는지 등 세부 항목을 확인하고 평가해야 해서 나도 정신이 없었다. 시험 시간에는 전혀 눈치를 못 챘는데 ‘쓱쓱’ 다음은 항상 떨리는 목소리였다.

 나도 모르게 가혹한 짓을 했다. 이미 대답을 했고 이제 돌이킬 수도 없는데 선생님은 뭘 자꾸 지운다. 얼마나 불안했을까?

 이제 말하기 시험 시간에는 지우개를 안 다른 공간에 다시 잘 써 둔 후 시험이 끝나고 재빨리 고친다.


 시험이라는 것은 보통 단 한 번의 기회만 주어질 때가 많다. 나의 대답이 마음에 안 들고 틀린 것을 뒤늦게 알았더라도 바꿀 수 없고 고칠 수 없다. 그래서 떨리고 긴장된다. 잘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된다.

 소심한 나는 뭘 할 때마다 틀릴까 봐 겁을 낸다. 연습할 때는 잘하다가도 막상 실전에서는 이제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에 쫄아서 실력 발휘를 못하는 ‘쫄보’ 타입이다. 이러면 참 실속이 없다. 모의고사에서 잘하면 무슨 소용인가. 실제 시험에서 잘해야지.

  나는 시험을 볼 때 앞부분에서 실수를 해 버리면 그것이 마음에 걸려서 남은 시험 잘  어려운 사람이다. 그래서 김연아 선수가 경기 초반에 점프 실수를 하고도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남은 경기를 완벽하게 해 내는 것 정말 놀다. 흔들림 없는 강한 정신력감탄 수밖에 없다.


 꼭 시험이 아니더라도 이 세상에는 고칠 기회가 없는 것이 많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은 항상 아쉬움이 남는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면 클수록 잘하지 못한 것이 아쉬워서 자꾸 미련이 남고 잘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게 될 때도 있다


 유화를 배우러 다닌 적이 있다. 처음에는 스케치 연습을 했다. 스케치북에 원기둥, 삼각뿔 같은 것을 그리는 날이 며칠 있고 드디어 캔버스에 유화 물감을 칠하게 된 날, 성격대로 소심하게 물감을 칠하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괜찮아요. 과감하게 하세요. 하다가 틀려도 고칠 수 있어요. 유화는 수정하면 돼요.”


유화는 칠하고 나서 마음에 안 들거나 잘못 칠해서 선 밖으로 튀어나오거나 해도 물감으로 덮어서 고치는 것이 가능했다. 고칠 수 있다니. 그 점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토요일 아침의 늦잠을 포기하고 3년 가까이 유화를 배우러 다녔다.


고치면 되지 뭐.   

그림을 그리다가 마음에 안 들면 다른 색으로 덮어도 되고 형태를 틀리면 덧발라서 언제든지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했다. 결과에 대한 기대도 낮았다. 미술 전공자도 아니고 취미로 그리는 거니까 그림의 완성도는 내 마음에 들 정도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림 실력은 크게 늘지 않았지만 그림을 그리러 가는 날이 기다려지고 즐거웠다.




 무슨 일이든 마음을 편하게 가지고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하는 것 같다. 시 해 볼 기회가 없다면 혹시 결과가 아쉽더라도 끝난 일이니 어쩔 수 없다. '잘한 나'도 '잘 못한 나'도 '잘하려고 애쓰고 수고한 나'니까 아쉬움빨리 잊고 나를 편안하게 쉬게 해  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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