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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에서 Aug 22. 2021

언제부터 어른일까?

 수업 시간에 ‘인생 그래프’를 그려 보라고 할 때가 있다. 0을 기준으로 위 아래로 그래프를 그린 다음 살아오면서 좋았던 때와 힘들었던 때를 이야기하는 말하기 연습 활동이다.

 그래프를 다 그리고 첫 번째 학생들이 자기가 그린 그래프를 설명했을 때 내가 질문을 했다.

“그런데 왜 2000년부터 그렸어요?”

 학생들이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을 때 아차 싶었다. 나는 지금 인생이 2000년에 시작된 사람들과 함께 있구나.


 1999년에 지구 종말이 오지 않고 무사히 2000년이 되었을 때 날짜를 쓸 때마다 연도에서 습관적으로 1을 쓰는 실수를 했다. ‘2000년’의 ‘2’를 자연스럽게 쓰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는데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연도가 ‘2’로 시작되는 것이 당연한 사람들이다. 9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 썼다는 ‘90년생이 온다’라는 책도 있는데 무려 2000년생이다. 외국인이라는 사실보다 2000년에 태어난 사람이라는 사실에 더 거리감이 느껴진다.


 요즘 한국어를 배우러 오는 학생들의 평균 연령이 많이 낮아졌다. 대학에 입학하려고 오는 어린 학생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어학 공부를 한 후에 한국 대학에 입학하려고 유학을 온다. 학생들을 보고 있으면 참 귀엽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유학 온 어린 학생들은 천진하고 해맑은 구석이 있다. 학생들을 보고 있자니 스무 살은 영락없는 아이다. 그 시절의 나도 그랬을 텐데 나는 스무 살 때 내가 꽤 어른인 줄 알았다.


 언제부터 어른일까? 어른이 됐다고 느끼는 때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순간은 대학생이 되고 하이힐을 처음 신은 날이다. 하이힐을 신은 내 모습을 거울로 봤을 때 어른이 된 것 같았다. 발은 불편했지만 걸을 때 나는 또각또각 소리가 좋았고 키가 한 뼘 커져서 하이힐을 신으면 뭘 입어도 예뻐 보였다. 하이힐을 신고 내 키보다 높은 곳의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걸으면 어른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첫 월급을 탔을 때도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월급이 찍힌 통장을 몇 번이나 들여다보며 이런 맛에 어른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번 돈으로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자유의 맛. 그것이 이제부터 죽을 때까지 내가 벌어 써야 한다는 뜻인 줄도 모르고 그때는 마냥 기뻐했다.


“올해는 윤달이 껴서 더위가 늦게 오는 거래”

점심을 먹는데 친구가 윤달 이야기를 했다.


“야, 너 되게 어른 같다. 윤달 이런 거 알면 어른 아니야?”


 어렸을 때는 어른이 되면 ‘윤달’ 같은 것은 자동으로 알게 되는 줄 알았는데 나는 지금도 모른다. 친구도 엄마한테 들어서 알고 있을 뿐이라며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나이가 들고 나서 알았다. 나이를 먹어도 윤달을 모를 수 있으며 나이를 먹는다고 그만큼 성숙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릴 때 내가 완전한 어른이라고 생각한 나이에 차례차례 도달해 왔지만 여전히 미성숙하고 서툴다. 나이가 든다고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가르치는 스무 살 학생들보다 나는 훨씬 어른이어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다.  

 내가 기대한 어른은 조금 더 여유가 있고 생각 깊 감정을 잘 다스리는 성숙한 존재였다. 그런데 그렇게 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빨갛게 익어 가는 사과인 줄 알고 언제 익나 마냥 기다렸는데 알고 보니 끝까지 초록색인 아오리 사과였던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눈에 거슬리는 것이 많아지고 노여움이 많아진다고 한다. 슬프게도 나이가 들면 자동으로 되는 것은 어른이 아니라 꼰대인가 보다. 꼰대는 누구나 될 수 있지만 어른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는 슬픈 진실을 알았다.

 내가 기대한 어른은 되지 못할 수도  있다. 나는 직업부터 꼰대라서 약간 망한 느낌이지만 꼰대력이 더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최선 다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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