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원에서 Oct 01. 2021

단체 사진은 사람 배경의 독사진

 학생들에게 중간고사 성적표를 나눠 줬다. 표정이 심각해지는 학생이 있다. 기말고사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중간고사 성적이 진급 기준인 70점에 못 미치는 것은 불안하고 걱정되는 일이다. 반면 말하기, 읽기, 듣기, 쓰기 네 과목 중에서 두 과목이나 100점을 받은 학생은 표정이 밝다. 그 성적표를 본 옆 자리 친구가 주위 학생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다들 대단하다고 놀란다.

 유급을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 학생은 다른 학생들처럼 같이 놀라고 대단하다고 칭찬해 줄 여유가 없다.


 단체 사진을 받아 들면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먼저 찾아본다.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찍혔는지 확인한 후에야 다른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단체 사진은 사람 배경의 독사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의 일이 가장 우선이고 중요하다. 자신의 일이나 문제가 해결되고 마음이 편안한 상태가 되어야 주위를 돌아볼 여유도 생기는 것이다.  


며칠 전 책장을 정리하다가 2012년 가을에 쓴 일기를 보게 되었다.


2012년 10월 19일 금요일


 남의 슬픔을 슬퍼해 주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남의 기쁨을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것은 열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오늘의 나는 마냥 부러워서 아무 생각이 안 났다. 좋겠다. 이 생각뿐.


 기억을 더듬어 봤는데 무슨 일이었는지 전혀 기억이 없다. 하긴 9일 전에 있었던 일도 기억이 안 나는데 9년 전 일이 기억날 리가 없다. 무슨 일이었을까? 일기를 매일 쓰는 건 아닌데 그날은 집에 와서 일기를 쓸 정도로 울적했나 보다. 그땐 그랬는데 지금은 무슨 일인지 기억에도 안 남아 있다. 만약 9년 전의 내가 앞에 있다면 '시간 지나면 괜찮아. 나중에 기억도 안 나'라고 말해 주고 싶다.


 슬픔보다 기쁨을 함께 해 주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부러운 마음과 질투가 나는 옹졸한 마음에 진심으로 축하해 주지 못할 때가 있다. 그리고 자신의 상황이 안 좋 다른 사람의 일을 축하해 주기 더욱 어진다.

2012년 가을에 기쁜 일이 생긴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그때 나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나 보다.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함께 기뻐해 주지 못한 것이 아쉽다. 럴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일기에서는 남의 슬픔을 슬퍼해 주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했지만 힘든 일이 있는 사람을 돌아보고 마음을 써 주는 것도 여유가 없을 때는 어려운 것 같다. 내가 힘들 때는 다른 사람의  슬픔보다 나의 작은 고달픔이 당장은 더 아프게 느껴기 때문에 그 사람의 슬픔에 공감해 주고 진심으로 위로해 주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의 슬픔도 함께 슬퍼해 주고 기쁨도 함께 기뻐해 주고 싶다. 진심으로 그럴 수 있는 여유가 나에게 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좀 잘 되어야 할 것 같다. 

단체 사진에서 내 얼굴이 멀쩡 친구의 미모도 칭찬해 주고 눈 감아 버린 친구의 마음도 달래   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