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에게 중간고사 성적표를 나눠 줬다. 표정이 심각해지는 학생이 있다. 기말고사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중간고사 성적이 진급 기준인 70점에 못 미치는 것은 불안하고 걱정되는 일이다. 반면 말하기, 읽기, 듣기, 쓰기 네 과목 중에서 두 과목이나 100점을 받은 학생은 표정이 밝다. 그 성적표를 본 옆 자리 친구가 주위 학생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다들 대단하다고 놀란다.
유급을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 학생은 다른 학생들처럼 같이 놀라고 대단하다고 칭찬해 줄 여유가 없다.
단체 사진을 받아 들면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먼저 찾아본다.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찍혔는지 확인한 후에야 다른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단체 사진은 사람 배경의 독사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의 일이 가장 우선이고 중요하다. 자신의 일이나 문제가 해결되고 마음이 편안한 상태가 되어야 주위를 돌아볼 여유도 생기는 것이다.
며칠 전 책장을 정리하다가 2012년 가을에 쓴 일기를 보게 되었다.
2012년 10월 19일 금요일
남의 슬픔을 슬퍼해 주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남의 기쁨을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것은 열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오늘의 나는 마냥 부러워서 아무 생각이 안 났다. 좋겠다. 이 생각뿐.
기억을 더듬어 봤는데 무슨 일이었는지 전혀 기억이 없다. 하긴 9일 전에 있었던 일도 기억이 안 나는데 9년 전 일이 기억날 리가 없다. 무슨 일이었을까? 일기를 매일 쓰는 건 아닌데 그날은 집에 와서 일기를 쓸 정도로 울적했나 보다. 그땐 그랬는데 지금은 무슨 일인지 기억에도 안 남아 있다. 만약 9년 전의 내가 앞에 있다면 '시간 지나면 괜찮아. 나중에 기억도 안 나'라고 말해 주고 싶다.
슬픔보다 기쁨을 함께 해 주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부러운 마음과 질투가 나는 옹졸한 마음에 진심으로 축하해 주지 못할 때가 있다. 그리고 자신의 상황이 안 좋으면다른 사람의 일을 축하해 주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2012년 가을에 기쁜 일이 생긴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겠지만그때 나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나 보다.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함께 기뻐해 주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럴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일기에서는 남의 슬픔을 슬퍼해 주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했지만 힘든 일이 있는 사람을 돌아보고 마음을 써 주는 것도 여유가 없을 때는 어려운 것 같다. 내가 힘들 때는 다른 사람의 큰 슬픔보다 나의 작은 고달픔이 당장은 더 아프게 느껴지기 때문에그 사람의슬픔에 공감해 주고 진심으로 위로해 주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의 슬픔도 함께 슬퍼해 주고 기쁨도 함께 기뻐해 주고 싶다. 진심으로 그럴 수 있는 여유가 나에게 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좀 잘 되어야 할 것 같다.
단체 사진에서 내 얼굴이 멀쩡해야 친구의 미모도 칭찬해 주고 눈을 감아 버린 친구의 마음도 달래 줄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