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원에서 Sep 03. 2021

손톱이 단단해지는 동안

 첫 조카가 태어나고 언니가 몸조리를 하러 왔을 때 대학생이었던 나는 놀지도 않고 매일 일찍 와서 아기를 들여다봤다.

 아기 가까이 가면 아기 냄새가 났고 만져 보면 몸이 늘 따끈따끈했다. 젖병과 호환되는 앙증맞은 사이즈의 입도 귀엽고 하늘 높이 솟은 불꽃 머리는 비싼 패딩에 달린 천연 모보다 부드러웠다.

 오리지널 아기 피부의 감촉에 연신 감탄하며 식빵같이 볼록볼록 한 팔을 눌러봤다.

 모든 게 너무 조그마해서 귀엽고 신기하고, 만지기 조심스러웠다. 사람이란 저렇게 작았다가 이렇게 커지는 거구나 경이로움도 느꼈다.


 아기의 모든 것이 신기했지만 내가 가장 놀랐던 건 손톱이다. 가위로 잘라지는 소프트한 재질. 손톱이 손톱 같지 않게 참 얇고 말랑말랑했다.

가위로 조카 손톱을 자르는 언니 옆에 앉아 아기 손톱내 손톱을 번갈아가며  봤다. 같은 게 맞나 싶게 달랐다.  내 손톱도 처음부터 이렇게 단단하지는 않았나.

손톱은 어른이 되면서 점점 단단해지는 거였다. 손톱이 계속 그렇게 말랑말랑하고 약하면 코도 팔 수 없고 모기 물린 곳을 긁을 수도 없으며 스티커 같은 것도 뗄 수 없어 마나 불편. 그리고 무엇보다 네일 아트를 하는 데 제약이 을 것 같다.


 수업 시간에 스트레스 푸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면 네일 아트를 하는 것이라고 답하는 다. 교실을 다니면서 학생들이 쓴 연습 문제의 답을 봐줄 때 자연스럽게 손 눈이 가는데 예쁘고 화려하게 네일 아트를 한 학생이 많다. 내 취향대로 그리고 칠할 수 있는 캔버스가 손끝에 10개나 달려 있다니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무료인 데다가 기다리면 리필도 된다. 손톱 스트레스를 풀고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는 좋은 도구 된다.


 손톱이 단단해지는 동안 다른 것들도 튼튼해졌다. 연약했던 피부는 자극을 덜 받는 거친 피부가 되었고 머리카락은 굵어지고 억세 졌다. 뼈도 튼튼해졌고 몸도 커지고 입도 이제 밥 숟가락과 호환되는 사이즈가 되었다.

 몸은 어른이 될수록 튼튼해지고 단단해지는데 마음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한국어를 어느 정도 공부하고 나 한국어로 책을 읽어 보는 학생들이 있다. 며칠 전에도 책을 추천해 달라는 학생이 있다. 처음에는 표현이 쉽고 내용을 이해하기 쉬운 책들을 추천해 줄까 했는데 생각해 보니 한국이 즐겨 읽는 책을 추천해 주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다.  한국 사람들이 어떤 책을 많이 읽었는지 보려고 교보문고 연간 베스트셀러 목록을 훑어보는데 마음이 좀 아팠다.

 왜 미움도 용기까지 내서 받고, 괜찮다고 다독여 주는 말을 듣고 싶어 할까. 답게 사는 방법과 상처 주는 사람들에게 상처 받지 않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다들 애쓰고 있구나.

 그런 책을 찾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여서 일 심리 상담가 배르벨 바르데츠키가 쓴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읽은 적이 있다. 1권과 2권을 도서관에서 대출하면서 다음부터는 기계로 대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책 제목이 누가 봐도 상처를 받는 사람이 빌릴 것 같이 생겨서였다.




 어른이 되어도 쉽게 마음의 상처를 는다. 프고 쓰릴 때가 많다. 마음도 손톱처럼 시간이 지나면 단단해져서 웬만한 자극에 끄덕 없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닌가 보다. 마음은 여전히 상처에 취약한 재질이라서 다치지 않게, 상처 받지 않게 각자의 마음을 돌보고 지켜 주며 살아야 하는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