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약국 앞을 지날 때면 떠오르는 일이 하나 있다.
예전에 동네 병원 이비인후과에서 진료를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았다. 병원이 모여 있는 건물이라서 대부분 나처럼 진료를 받고 1층에 있는 약국에 가는 사람들이었다. 약국에서 오래 기다려야 할 것 같아서 그 약국에 가지 않고 집에 가는 길에 있는 다른 약국에 가기로 했다.
집 근처 약국 문을 열고 들어가니 손님은 남자아이와 그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사람뿐이었다. 약국 위층에는 소아과 병원이 있다.
처방전을 내고 앉아서 기다리는데 안쪽에서 약사가 나왔다. 봉투에 적힌 이름을 보며 "지율이~"라고 불렀다.
"네" 하고 남자아이가 씩씩하게 대답하자 엄마가 아이가 손을 잡고 앞으로 걸어가 약을 건네받고 인사를 하고 약국을 나갔다.
잠시 혼자 앉아 있으니 다시 약사가 나왔다. 봉투에 적힌 내 이름을 보며 불렀다.
"지민이~"
...
잠시 망설였다. 대답을 해야 하나? 약사가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기는 했다.
대답이 없자 고개를 들어 나를 본 약사가 당황해서 사과를 했다.
"어머, 죄송해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예전에 친구가 사회 생활을 시작했을 때 "~씨"라고 불리는 게 어색하면서도 좋았다는 말을 했다. 그렇게 불리면 어른이 된 것이 실감이 났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씨"는 죽을 때까지 불릴 수 있지만 약사가 불러준 것처럼 이름이 불리는 건 어릴 때뿐이다. 감사하게 생각하고 씩씩하게 대답을 해 볼 걸 그랬다.
약을 받아 나오면서 김춘수 시인의 시를 떠올렸다. 오늘은 내가 꽃이 된 날이구나 생각하면서.
꽃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