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의해 어느 소설가의 유튜브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영상이 시작되고 소설가가 구독자들에게 인사를 한 후 앞으로의 계획을 알렸다. 곧 다음 소설을 마무리해서 출간할 것이며 그 이후에도 여러 일들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리고 웃으며 '신을 웃기는 방법'에 대해 말해 주었다.
신을 웃기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냥 자신의 계획을 말하면 된다.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신은 알고 있는 것이다.
어제 일기를 쓰다가 일기장 맨 뒷장에 써 놓은 새해 계획을 발견했다. 나도 신을 웃기는 데 일가견이 있구나. 최소한으로 줄여서 쓴 건데 8월인 지금까지 지키고 있는 건 없다.
회사처럼 분기별로 계획을 세우면 좀 나을까. 아직 4/4분기 계획을 세울 기회는 남았는데.
외국인 학생들이 보는 TOPIK이라는 한국어능력시험이 있다. 학부 교양 국어 수업을 할 때 말레이시아 유학생이 그 시험을 준비한다고 해서 어떤 교재를 샀는지 물어봤다. 야무지고 꼼꼼한 학생이라 어떤 책을 골랐을지 궁금했다. 학생이 산 책은 나도 써 본 책이었다. 책을 써 보니 어땠는지 물었을 때 내가 예상 못한 답이 돌아왔다. 앞쪽에 공부 일정이 나온 계획표가 있어서 너무 좋다는 것이었다.
음..계획표
나는 그 책에서 계획표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사실 있는 줄 몰랐다.
물론 그렇게 공부한 적은 드물지만 교재를 사면 분량을 확인하면서 이렇게 나눠서 공부하면 되겠다고 내가 계획을 세운다. 계획만 세웠는데 공부를 끝낸 것 같은 기쁨은 나만 느끼는 걸까. 아무튼 계획을 세우고 나면 기분이 좋다.
친구는 자신도 계획표가 있는 책이 좋다고 했다. 계획 세우는 것을 어려워하거나 귀찮아하는 사람에게 그런 계획표 제공은 상당히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그냥 정해진 분량대로 하는 것이 속이 편하다고 했다.
사람들은 참 비슷비슷한 거 같으면서도 또 많이 다르다.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잘하는 타입이 아닌데 퇴사하고 나니 할 일의 종류가 많아져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못 쓰고 있다. 계획은 자꾸 미뤄지고 슬그머니 없던 일이 되곤 한다.
유튜브에서 계획을 잘 세우는 법을 들었다. 그래서 계획을 잘 세우기 위한 계획을 세워 보았다.
1. 현실적으로 계획을 세워야겠다. 욕심이 나서 통 크게 세우면 안 하게 되는 것 같다.
2.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야겠다.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표현해야 지킬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3. 잘게 쪼개서 계획을 세워야겠다. 큰 산처럼 느껴지는 일도 단계를 나눠서 세분화하면 부담감이 줄어든다고 한다.
글을 꾸준히 쓰는 것도 나의 계획 중 하나였는데 브런치 재촉 알림이 오고도 한참 동안 쓰지 않았다.
나는 '계획을 세우는 맛'이나 '지키는 맛'보다 감칠맛 나는 '안 지키고 다시 세우는 맛'을 좋아하는 것 같다. 신이 웃으시겠지만 현실적으로, 구체적으로, 세분화하여 글을 꾸준히 쓸 계획을 다시 세워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