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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에서 Mar 04. 2023

미라클 모닝이 흔한 나라

작년 가을 학기에 온라인으로 네팔 학생들을 가르쳤다. 네팔 현지에 있는 학생들이 줌 프로그램에 접속해서 한국어 수업을 들었다. 수업을 고 나서 생각해 보니 20년 동안 일하면서 네팔 학생을 가르쳐 본 게 딱 한 번다. 이렇게 네팔 사람만 있는 수업은 처음이었고 수업을 하면서 네팔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초급에서 맞는 첫 번째 고비는 숫자가 아닐까 싶다.  특히 시간 읽기를 가르칠 때 학생들 괴로워는 표정을 보게 된다.

10:10
'열 시 열 분'이거나 '십 시 십 분'이면 좋겠지만 머리 아프게도 '열 시 십 분'이다.

시간 읽기를 배우는 날은 연습을 시키려고 기상 시간과 취침 시간을 꼭 물어보는데 네팔 학생들에게 물었다가 낯선 대답을 들었다.

"몇 시에 일어나요?"

"다섯 시에 일어나요."

아직 한국어로 시간을 말하는 게 익숙하지 않구나 생각했다. 화면에 5를 쓰고 학생이 정정해서 말하기를 기다렸는데 환하게 웃으며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학생도, 다음 학생도 다섯 시에 일어난다고 대답했다. 지금까지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기상 시간에 '다섯 시'가 이렇게 흔하게 나온 건 처음이었다.

나중에 '여섯 시'에 일어난다는 대답이 나오자 '좀 늦게 일어나네'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선생님 몇 시에 일어나요?"

아...질문을 받고 말았다.

"저는 일곱 시에 일어나요." 학생들이 까르르 웃었다. 외로웠다. 이 정도면 K-기상 시간 범위에 들어가는데.


취침 시간도 역시나 낯선 대답이 나왔다.

"저는 아홉 시에 자요."

나의 취침 시간을 물어보길래 그 주에 제일 일찍 잔 걸로 말했다.

"저는   에 자요." 학생들이 또 웃었다.


장소 명사를 배우는 날 네팔 학생들 '편의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영어로 제시했는데 모른다고 해서 교재 그림보다 조금 더 편의점스럽게 생긴 그림을 찾아서 보여 줬다. 그래도 모르겠다고 해서 온갖 편의점 체인 이름과 사진을 보여줬지만 실패했다.

시간 읽기 수업을 하고 그 이유를 알았다. 다들 9시에 자는데 편의점이 왜 필요한가.


학생들이 네팔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겨울 학기부터 한국에 와서 공부한다고 해서 날씨에 적응하는 것만 걱정했다. 가을이지만 한국은 꽤 쌀쌀한데 학생들이 네팔은 덥다고 했기 때문이다.

날씨 말고 한국에 와서 놀라고 적응해야 할 것은 더 많을 것 같다.


예) 한국 사람들은 5시에 일어나는 것을 '미라클 모닝'이라고 부르고 도전까지 한다.


예) 한국 사람들은 밤에도 안 자고 돌아다니고 24시간 물건을 살 수 있는 작은 마트 같은 것이 있다.


그래도 네팔 학생들 수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으라면 학생들의 표정이다. 네팔은 행복 지수가 높은 나라 '부탄'과 가깝던데 수업에서 만난 네팔 학생들 잘 웃고 표정이 밝았다. 인터넷 환경이 안 좋아서 학생의 화면이 멈추었다가 다시 연결될 때가 많았는데 화면이 멈추기 전에 웃고 있었 연결이 된 후에도 웃고 있어서 궁금했다. 계속 웃고 있었던 것일까?

그런 표정의 생산국 네팔에 가 보고 싶어졌다.




가을 학기에 급하게 연락이 와서 한 학기만 맡은 수업이기 때문에 이후에 네팔 학생들이 한국에 와서 어떻게 지내는지는 모른다. 한국어가 많이 늘었으려나. 그리고 기상 시간과 취침 시간에 변화가 생겼는지 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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