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원에서 Mar 08. 2023

친구를 5분 만에 행복하게 하는 법

일요일에 친구를 만나서 놀다가 이제 집에 가려고 지하철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친구가 갑자기 나라 잃은 표정으로 내 팔을 꽉 잡으며 말했다.

"어떡해. 주말 끝났어. 내일 월요일이야."


친구에게 하고 싶은 질문이 떠올랐다.

"너 만약에 일 안 하고 매달 나라에서 생활비 준다면 얼마면 될 것 같아?"

"주거비는 빼고?'

"응 그냥 한 달 생활비."

"세전, 세후?"

쓸데없이 디테일하다.

"세후"


친구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난 200, 아니 150만 원이면 될 거 같은데. 왜냐하면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서 보면 되고, 출퇴근 안 하니까 교통비 안 들고, 아껴 쓰면 그 정도로 충분해"

"응, 그렇구나."


다시 현실로 돌아와 나라 잃은 표정을 짓는 친구에게 물었다.

"그래도 잠깐 행복했지?"

"응, 나 좀 설렜어."


한동안 주말 저녁에 만난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해 봤다.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다들 진지하게 예산을 세워 본 후 신중하게 금액을 말했다. 그 선량한 국민들은 얼토당토않게 큰 액수를 말해 국가의 세금을 축내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나마 행복했노라고 말했다.


가정법을 가르칠 때 학생들은 '가정'의 의미를 쉽게 이해한다. 래서 모든 언어에 가정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가정'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사실이 아니거나 또는 사실인지 아닌지 분명하지 않은 것을 임시로 인정함'이라고 나온다.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하고 있고 쓸 필요가 있어서 말이 생겼을 테니 잠깐 동안 사실로 생각해 보는 그 이 세계인에게 공통적으로 필요한가 보다.

사는 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안 될지 몰라도 행복해질 기회를 주는 착한 문법. 가정법.

물론 끝나고 나면 씁쓸한 웃음이 나올 수는 있다.

나도 예산은 오래전에 세워 뒀는데 요즘 물가가 너무 올라서 약간의 상향은 불가피할 듯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