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어떤 이의 기원(祈願)에 대하여

by 중구난방

내가 아는 어떤 이의 기원(祈願)에 대하여

김경일

힙한 분위기가 절정에 달해 요즘은 외국인들까지 제법 드나든다는 을지로가 구리기 짝이 없는 동네였던 시절의 이야기다.

십몇 년 전이었을까? 거미줄처럼 좁고 복잡하게 얽힌 을지로 뒷골목은 크고 작은 인쇄 관련 업체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기업에서 의뢰받은 브로슈어나 애뉴얼 리포트 같은 홍보물의 디자인을 마치면 눈과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던 데이터가 컴퓨터 모니터를 벗어나 손에 잡히는 실체로 구현하기 위해 찾아가는 곳이 을지로의 인쇄소들이다. 그 동네는 고속버스 크기쯤 되는 대형 인쇄기부터 복사기만 한 낡은 수동인쇄기까지 첨단과 구닥다리가 공존하는 곳이다.

돈 좀 되는 어느 기업의 홍보용 브로슈어 디자인을 마치고 이미지와 컬러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인쇄소에 데이터를 보내고 한숨 돌리던 순간, 그 프로젝트를 의뢰한 기업 담당자의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임원 회의에 내놓을 자료집을 인쇄해 달라는 것이었는데, 계약서부터 재무제표까지 수백 장에 이르는 문서를 책으로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수량은 고작 20권, 그리고 내일까지.

방금 데이터를 보낸 브로슈어의 제작 수량은 5천 권이었다. 불가능할 것 같다는 대답에 돈 좀 되는 프로젝트를 주문한 상황을 무기 삼아 한 번 도와줄 수 있지 않냐는 항변이 돌아왔다.

어쩔 수 없이 머리를 굴렸고, 시간은 없고 돈은 안 되는 이 일을 해줄 이는 이 바닥에서 딱 한 분이었다.

진보적 성향의 시민단체 홍보물을 디자인하다 소개받은 인쇄소 사장님인데, 사실 인쇄소라고 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작은 기계를 직원도 없이 혼자 운전하셨다. 그분의 형님이 서슬 퍼런 군사정권 시절, 독재에 항거하던 이들의 유인물을 몰래 인쇄해 주다 몇 번이고 경찰서니 안기부에 끌려가 고초를 겪다 돌아가시는 바람에 대신 이어받아 운영하는 중이리고 들었다.

쇼핑백 한가득 복사된 문서를 들고 허름한 두어 평짜리 공간에 들어섰다.

“어쩐 일이냐?”

낡고 작은 인쇄기를 돌리는 사장님이 고개도 제대로 돌리지 않고 물었다.

“그러니까 이 자료를 정리해서 내일 아침까지 스무 권만…”

“이런 씨벌 그게 되겠냐?”

날 선 반응에 “돈은 얼마든지 드릴 테니 제발”이라고 말했지만, 그 ‘얼마든지’는 고작해야 ‘몇십만 원’에 불과할 것이다. 수천만 원 규모의 프로젝트로 제법 쏠쏠한 이득을 본 건 나인데, 돈 몇 푼을 내세워 그 성과에 대한 서비스로 그분에게 철야 작업을 요구하는 것이다.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본체만체하던 그분의 입에서 “놓고 가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감사하다는 말을 휙 던지고 냉랭한 공간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다음 날 아침 문을 살짝 열고 고개를 들이미는 내게 “지하 제본소에 있으니 가서 받아 가라”는 한마디가 돌아왔다.

제작비를 묻는 내게 제본하는 양반이 늦게까지 고생했으니 한 오만 원 더 놓고 가라는 예의 퉁명스러운 대답을 내놨다.

같은 담당자로부터 다시 다급한 전화를 다시 받은 건 그 일을 처리하고 채 일주일도 안 지났을 즈음이었다.

“이런 놈들은 잘해주면 안 돼. 남 고생하는 걸 당연한 걸로 안다니까.”라는 내 마음속 푸념과 같은 반응이 인쇄소 사장님 입에서도 나온 건 당연지사다.

아침 일찍 자료를 들고 인쇄소를 찾은 나는 중간중간 인쇄 품질을 확인하기 위해 아예 그 좁은 공간에서 진을 치고 앉아 있어야 했다.

아홉 시부터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장님의 모습은 작은 인쇄기의 부품과 다름없었다. 아니, 기계 자체인 양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일사불란한 움직임이 경이로울 정도였다.

정확히 열두 시가 되자 기계를 멈춘 사장님은 “밥 먹자”는 말을 던지고 공장을 나섰다. 비싸고 맛있는 점심을 대접해 드리는 게 이분의 수고에 대한 보답이라 생각하고 괜찮은 식당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나를 잡아채듯 끌고 간 곳은 부대찌개를 파는 허름한 식당이었다.

그곳에는 마치 예약이라도 해 둔 듯 을지로의 작은 인쇄 관련 업체 사장님 대여섯이 먼저 앉아 있었다. 인쇄에 필요한 종이를 판매하는 지업사, 인쇄한 종이를 책 형태로 묶는 제본사, 코팅 업체부터 작은 공장 간에 인쇄물을 옮겨주는 배달 기사까지. 그곳은 밥 먹는 자리보다 대부분 한 명에서 기껏해야 두세 명이 일하는 업체의 사장님이나 기장들이 밥을 앞에 두고 오전 내내 꾹 닫았던 입을 여는 귀한 자리 같았다.

시답지 않은 농담 섞은 대화에 더해 빨간 뚜껑의 독한 진로소주 서너 병과 함께 식사를 마친 여러 업체 사장님들은 가게 앞 자판기에서 뽑은 달콤한 커피와 담배 한 대를 맛있게 즐긴 후 각자의 일터로 돌아갔다.

식사 중 얻어 마신 소주 몇 잔에 규칙적인 기계 소리가 더해지자 졸음이 쏟아졌다. 졸다 깨다를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던 일이 어느새 끝난 모양이었다.

다음 날 아침 제본되어 비로소 책의 꼴을 갖춘 보고서를 거래처에 보낸 후 거드름 피우며 넉넉한 제작비를 청구하는 것으로, 이 귀찮은 일은 마무리될 것이다.

인쇄소 사장님께 진심을 담아 감사 인사를 드리고 돌아서는 내게 “저녁 먹고 가라”는 대답이 돌아왔고, 작은 선술집에서 얇은 파전과 막걸리 주전자를 두고 마주 앉았다.

술이 가진 경이로운 힘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막걸리 몇 잔은 한 마디 이상을 하지 않는 사장님이 서너 마디의 긴 질문과 대답을 꺼내게 했다.

뭐, 그렇게 바쁘게 사냐, 쉬엄쉬엄 일하라는 충고는 내가 그분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었다.

누구나 알 만한 기업의 일을 가끔 부탁했기 때문인지 그렇게 큰 회사와 일하면 아는 사람도 많겠다고 물었다.

아는 사람이야 많지만 일로 만난 사이니 술 한잔 밥 한 끼를 함께 해도 불편한 접대 자리로 끝나는 게 대부분이라는 대답에 “친한 사람 있으면 우리 딸들 취직자리 좀 알아봐 주라”는 푸념 뒤에 막걸릿잔을 내려놓고 고추장아찌 하나를 입에 넣으며 말을 이었다.

김혜수가 영화 대사에서 자랑스럽게 “나 이대 나온 여자야”라고 외친 그 대학의 법대와 음대에 딸 둘을 보낸 것에 대해 딸 하나는 유럽 유학, 또 한 명은 대학원까지 보냈지만, 둘 다 집에서 놀고 있으니 답답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대단한 능력이 있다고 믿어서 그런 말을 한 건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두 딸의 처지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한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잉크 냄새 가득한 두어 평 좁은 공간으로 돈 안 되는 일감을 갖고 일 년에 몇 번쯤 찾아갈 때마다 그분은 항상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움직임으로 일하고 있었다. 날이 쌀쌀해지면 반 팔 티셔츠에 점퍼 한 벌을 덧대 입을 뿐이었다. 그 모습이 초라하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저 검소하고 성실한 그분의 하루하루가 감동스러웠고, 그분의 노동은 항상 숭고하고 정직해 보였다.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낸 것이 아니, 자식이 좋은 대학에 간 것이 한 인간 성과의 전부일 수 없겠지만, 자식들의 성장을 뒷바라지한 삶도 정직한 노동의 일부일 테고, 그 과정에서 보인 성실한 성정이 두 딸의 가치관 형성에 좋은 자양분이 된 것은 분명할 것이다. 하지만, 자식의 현재와 미래는 벗어날 수 없는 부모의 숙제인지 그분의 어깨가 무거워 보이는 것은 안쓰러운 일이었다. 거기에 이제 갓 아버지가 된 나의 처지가 투영되었다면 지나친 감정이입이었을까?

짧지만 한 사람의 솔직한 인생을 온전히 지켜본 듯하다면 섣부른 착각일 수 있지만, 뭐가 어쨌건 내게 그 하루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완벽한 시간이었고, 그분은 책을 통해서가 아닌 직접 만난 이 중에서 가장 멋지고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 힙한 동네가 된 을지로 인쇄 골목은 개성 있는 콘셉트를 가진 작은 술집이나 식당이 곳곳에 자리 잡았고, 별점 많이 받은 멋진 가게를 찾는 젊은이들과 아직도 그곳에서 더운 쌀쌀한 늦가을에도 러닝셔츠 바람으로 바쁘게 일하는 그들의 부모뻘 되는 분들이 뒤섞인 이질적인 풍경의 공간이 되었다.

지금도 가끔 그 동네를 지나다 보면 그분을 뵙는다. 이제 그 고물 인쇄기가 필요한 일은 없지만, 그 성실함에 기대어 소소한 작업을 부탁하는 이는 아직 있는 모양이다. 성능 좋은 디지털 인쇄업체를 통해 인쇄를 대신하고 지업사에서 저렴한 가격에 종이를 받아 전달하는 것으로 조금의 이윤을 얻는 모양이다.

“어디 가냐?”

정정하시다는 표현을 더 해야 하는 연세가 되었지만, 그 퉁명스러운 말투는 변함없고 정직한 노동의 가치를 간직한 모습 또한 여전해 보인다.

두 딸은 잘 지내고 있을까? 여전히 그분의 걱정과 부담으로 남아있을지 삶의 자랑이 되었을지 궁금하지만, 그 또한, 겉으로 보이는 성과에 집착하는 내 아둔한 마음에서 나온 궁금증에 불과한 게 아닐까?

부모는 그저 자식의 소중한 기원(起源)이자, 간절한 기원(祈願)이 전부인데 말이다.

그분의 두 딸이 그렇고, 내 아들이 나에게 그러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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