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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소망 Jun 17. 2024

어머니는 퓨전 요리사

라면에 국수를 넣는 이유

어릴 적 어머니는 가끔 칼국수를 만들어 주셨다. 먹을 때는 간단하게  한 끼 때우는 음식이지만 만드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밀가루와 콩가루로 반죽을 만들고 여러 번 치대고, 콩가루를 뿌려가며 홍두깨로  후, 적당히 말아서 칼로  썰어 면발을 만들고  애호박, 배추 같은 야채와 함께  물에 넣어  끓였다. 칼국수가  밥상에 올라오기까지 힘도 들고 시간도 많이 걸렸지만 그런 어머니의 수고 덕분에 가족들은 맛있는 칼국수를 먹을 수 있었다. 간단히 만들 수 있는 음식이 아니므로 칼국수를 언제 만들지는  어머니의 기분과 시간달려있었지만 면요리를  좋아하던 아버지가 칼국수가 먹고 싶다고 할 때는 어김없이 홍두깨와 밀가루가 방 한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그때마다 나는 맛있는 칼국수를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저녁 메뉴로 가끔  올라오던 칼국수 대신 국수가 올라오는 빈도가 잦아졌다. 칼국수는 만드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반면  국수는 아주 쉽고 빠르게  요리할 수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나만 제외하고 다른 식구들은 국수를 좋아했. 둘 다  밀가루로 만든 면요리임에도  나는 국수가 맛이 없었다. 국수가 나올 때는 식구들 중 나만 밥을 먹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라면이라는 것을 끓여주셨다. 정말 새로운 맛이었다. 칼국수나 국수 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었다. 꼬들꼬들하면서 꼬불꼬불한 면의 식감도 좋았지만 소고기 맛이 나는 라면 국물에 밥을 말아먹으면 정말 맛있었다.  어머니에게 라면이  맛있다고 자주 해달라고 졸랐다.  그래서인지 라면을  가끔 끓여주셨지만  처음 먹었을 때의 그 맛을 다시 느낄 수는 없었다. 라면과 국수를 섞는 일은  다반사였고 라면수프대신  된장을 넣기도 하셨고, 야채를 많이 넣어 끓이기도 하셨다. 다른 것 넣지  말고 라면만 넣어서 끓여 달라고 했지만 어머니의 라면 레시피는  계속 다양해졌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이렇게 해야 더 맛있다고 나를 설득시켰다. 어머니가 이런저런 말을 해도 내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다섯 식구가 라면을 충분히 먹기에 양이 부족해서  대충 둘러대는 핑계라고  생각했다.  라면양이 부족한 데는  라면을 끓이기 전 생라면으로  한두봉은  먹어버리는 형제들의 책임도 있다고 여기고 어머니의 라면요리 맛에 적응해야 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어머니의 라면 요리법이 이것저것 마구 섞어버리는 퓨전요리로 바뀌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아버지의 입맛에는 라면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름기가 많아서 그럴 수도 있고, 내게 국수가 그냥  맛이 없듯이  아버지에게는 그냥  라면이 맛이 없었던 것 같다.  어머니는 남편과 아들의 입맛이 서로 다른 탓에  고민을 하신 것 같다. 그래서 국수를 좋아하는 아버지와  라면을 좋아하는 나를 만족시키는  요리법을 다양하게 개발해 본 거였다


어릴 적에 라면을 싫어하는 아버지 입맛의 정도를  수 없었다.  단지 라면보다 국수를 더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를 먹다 보니 내 입맛이 아버지 입맛과 비슷해졌다. 라면을 좋아했고  많이 먹었는데 언제부턴가 맛이 없어졌고 먹기가 싫어졌다. 대신 국수가 맛있었다. 아버지는 홍어를 좋아하셨는데 나는 냄새도 싫고 코를 톡 쏘는 것도 싫고 맛도 없어 전혀 먹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홍어를 좋아한다. 아무런 계기나 이유도 없이 입맛이  바뀌었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  입맛으로 유추해 볼 때 아버지에게 라면은 정말 맛이 없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내가 라면을 좋아하니 어머니가 라면요리를 준비하실 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고 이것을  알아챈 어머니가 이것저것  섞어서 아버지가 조금이라도 맛있게 드시도록 만들었던 것이었다. 


`부모의 마음은 부모가 되어봐야 안다'는 말처럼   나도 아버지가 되어보니 어릴 적 부모님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먹고 싶은 것보다는 자식이 먹고 싶은 것이 우선이고 내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자식 입에  들어가는 것이 더 좋은 부모마음을.. 그리고 국수가 드시고 싶었지만 라면을 끓이라고  말하시던  아버지의 마음을..


 위 사진은 어머니가 칼국수 만드는 걸 재연하는 모습. 재미있으신지 너무 즐겁게 재연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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