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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소망 Aug 22. 2024

먹지 못한 환타

1970년대 반 국민학교 1학년때  학교에서 소풍을 간다고 했다.  1학년이기 때문에 소풍이란 걸 한 번도 경험해보진 못했지만 형들이 학교생활을 하는 걸 봐왔기 때문에 소풍은 도시락이랑 과자를 싸가지고 가서 재밌게 놀다가 오는 것이라고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보물 찾기라는 놀이가 있는데 보물이라고 써진 종이를 선생님이 숨겨놓고 아이들이 그걸 찾으면 상품을 주는 놀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소풍을 가기 며칠 전부터 설레고 기대가 됐다. 학교를 벗어나 야외에서 재밌게 놀고 보물찾기 놀이를 하는 것이 기대가 된 것이 아니고, 소풍 갈 때 엄마가 빵을 사주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우리 가족은 작은 시골 마을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빵을 파는 가게가 없었다. 빵을 먹을 수 있을 때는 형들이 소풍 갈 때가 유일했다. 학교에서 소풍을 가면 엄마는 버스를 타고 읍내에 가서 빵을 사가지고 왔다. 지금까지는 형들이 소풍 갈 때 사 온 빵을 내가 얻어먹는 셈이었는데 이번 소풍은 얻어먹는 것이 아니라 내가 빵의 주인공이었기에 더 기대가 됐다.

나는 빵 중에서도 카스테라빵과 카스테라와 비슷하지만 모양을 둥글게 만든 보름달빵을 좋아한다. 둘 다 입안에 넣으면 부드럽게 녹으면서 단맛이 안에 가득 차는 느낌이 좋았다. 소풍 가서 친구들과 같이 빵을 먹을 생각을 하니 군침이 돌고 기분까지 좋아졌다.


소풍 전날 엄마는 어김없이 소풍을 준비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읍내에 갔다. 당연히 빵을 사 오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잊지 말고 꼭 빵을 사 오라고 당부했다. 엄마는 알겠다고 약속을 하며 버스에 올랐다. 그때부터 엄마가 빨리 오기만을 바라는 행복하고 달콤한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몇 시간 후 드디어 시장바구니를 가득 채운 엄마가 돌아왔다. 시장바구니 안을 보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빵도 있었고 생각지도 못한 음료수 환타가 있었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광고로만 보던 환타가 내 앞에 그것도 나를 위해 있는 것을 보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과연 어떤 맛일까? 너무 궁금했다. 다음날 소풍 가서 환타를 마실 생각을 하니 흥분이 됐다. 가방에 환타와 빵을 넣고 소풍 갈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설렘을 가득 품고 잠자리에 들었다.


소풍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열이 나고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감기에 걸린 것 같았다. 어제의 몸상태와는 완전 달랐다.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내 모습을 보고 엄마는 소풍을 가지 라고 했지만 나는 내 생애 첫 소풍을 이렇게 허망하게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아픈 몸을 겨우 추슬러 환타가 들어있는 가방을 메고 소풍을 갔다.

 소풍은 학교 인근 강가로 갔다. 날씨도 좋고 경치도 좋았지만 내 몸상태는 좋지 않았다. 머리에 열이 났고, 몸에 힘도 없고 식욕도 없었다. 점심시간이 되었지만  도시락도, 빵도, 환타도 먹기가 싫었다. 그냥 그늘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 내가 최선으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점심시간 이후에 보물찾기 놀이를 했다. 강가 자갈밭 및 숲으로 아이들이 보물을 찾으러 나섰다. 나도 조금 힘을 내어 강가 자갈밭으로 갔다. 발로 자갈을 굴리며 걷는데 몇 발자국 가지 않아 자갈밑에 숨겨진 보물을 찾았다. 몸이 아프지 않았다면 정말 기분이 좋았을 텐데 몸이 아프니 좋은 일이 있어도 그냥 덤덤했다.


 공책 한 권을 선물로 받고 선생님께 아프다고 말하고 아이들보다 먼저 집에 왔다. 집에 오니 손님이 한분 계셨다. 부모님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맞이했다. 그리고  빵도 환타도 그대로 있는 내 가방을 보고 측은해 하며 방에 들어가 쉬라고 했다. 방에 들어가 누워있는데 엄마가 내 소풍 가방에서 환타를 꺼내 손님에게 대접을 했다. 손님은 유리컵에 따라놓은 환타를 단숨에 들이켜시면서 맛있다고 좋아하셨다.      

환타의 병뚜껑을 따면 안에 있는 탄산가스가 거품과 함께 넘치며 사라지듯, 환타를 향한 전날의 기대와 설렘이 허무하게 물거품이 되어 사라져버렸다. 환타를 먹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가 환타를 먹지 않고 가지고 와서 부모님이 손님 접대를 잘해서 잘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1학년 2학기가 되면서 우리 가족은 도시로 이사를 왔다. 도시에 오니 곳곳에 빵과 과자와 환타를 파는 가게가 있고, 공장에서 만든 빵이 아닌 직접 빵을 만들어 파는 제과점도 있었다. 돈이 없이 자주 사 먹을 수는 없었지만 소풍 때가 아니라도 빵과 환타를 먹을 수 있었다.


도시에 오니 물질은 풍요로워졌는데, 환타 한 병처럼 작고 소소한 것에 느낄 수 있었던 설렘이나 기대, 흥분, 아쉬움, 고마움 등의 감정이나 정서는 빈곤해진 것 같다.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말이 이런 상황 때문에 나왔나 싶다

이 세상은 얻는 것이 있으면 반대로 잃는 것이 있는 것 같다. 참 아이러니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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