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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소망 Aug 23. 2024

골목길과 아이들

아이들이 점점 줄어가는 골목길을 걸으며

직장과 집이 가까워 출·퇴근을 걸어서 한다. 가장 빠른 길로 가면 20분이 걸리지만 그 길은 왕복 4차선 옆에 있는 인도여서 걷기는 편하지만 쌩쌩 달리는 차들의 소음 때문에 천천히 걸으며 즐기는 사색의 시간을 갖기가 어렵고 골목길에서 볼 수 있는 삶의 모습이나 운치를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출근은 빠른 길로 하지만 퇴근은 조용히 걸으며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좁은 골목길과 생동감 있는 삶을 볼 수 있는 시장통으로 한다. 이렇게 하면 1시간 정도 시간이 걸린다. 시간은 더 걸려도 골목길과 시장통으로 가면 왠지 즐겁다. 때로는 그 길을 걷는 게 좋아 퇴근시간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어느 날 골목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맞은편에서 초등학교 3~4학년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걸어오고 있었다. 내가 걷는 골목길은 빈집이 많고 성인 혼자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좁으며 경사가 심한 달동네였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도 많이 없고 더군다나 아이들은 볼 수가 없었는데 한 아이가 걸어오니 좀 의아했다. 그 아이와 나와의 거리가 좁혀지고 내가 살짝 담벼락 쪽으로 붙어 길을 비켜주려는데 날 보고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했다. 길거리에서 모르는 아이에게 인사받는 것이 뜻밖이었지만 나도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 아이를 지나쳐 대여섯 걸음을 더 걸어가고 있었는데 그 아이가 누군가의 이름을 크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나의 몸은 반사적으로 소리 나는 쪽으로 향했다. 누군가의 대문 앞에 서서 이름을 부르는 것을 보니 분명 친구를 부르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모습이 반갑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다.

내가 어렸을 때는 핸드폰이 없어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는 집 앞에서 불러대는 것이 당연하고 흔한 모습이었기 때문에 어린 시절이 생각나 반갑기도 했지만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다 핸드폰이 있는데 집 앞에서 크게 친구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이 너무 낯설게 보였다.     

친구를 부르는 아이를 계속 지켜보지 않고 갈길을 갔기 때문에 그 아이가 친구를 만났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그 이후의 내 발걸음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 동력이 되어 한결 가볍고 경쾌해졌다.     


골목길을 걸을 때마다 예전에는 어떤 골목의 모습이었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골목마다 아이들이 많이 돌아다니며 놀았을 것이고, 집집마다 아이들의 소리로 시끌벅적했을 것이며, 여기저기서 친구를 불러대는 우렁찬 목소리도 울려 퍼졌을 것이다. 사람 사는 맛이 있는 골목길이었을 텐데 지금은 너무나 고요하고 적막하다. 출산율이 많이 저하되고 아파트라는 주거공간이 대세가 되어버린 현실 속에서 예전에 누릴 수 있었던 골목길의 정서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 많이 아쉽고 안타까웠다.  그래서 이 모든 과정을 다 겪고 있는 골목길이 생명이 있다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라는 의문으로 골목길을 의인화시켜 아이들의 관점에서 동시를 지어봤다.     



                  골목길과 아이들     


골목길은 좋겠다

학교 가는 아이들의

즐거운 발걸음을 느낄 수가 있어서   

  

골목길은 재밌겠다

재잘대는 아이들의

얘기를 들을 수 있어서     


골목길은 외롭겠다

밤이 되면 아이들이 집에 가서

안 보이니까     


골목길은 슬프겠다

집집마다 아이들이 줄어들고

빈집이 늘어나서      



이젠 내가 어릴 때처럼 골목길이 아이들로 넘쳐나진 않겠지만 고향이 그립고 유년이 그리워 골목길을 찾는 이들에게 격세지감이나 쓸쓸함을 느끼게 하는 곳이 아닌 향수를 달래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친근함을 주는 골목길로 거듭 났으면 좋겠다.  


※  위 동시는 2024년 공직문학상 은상 수상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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