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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소망 Sep 17. 2024

나만의 기념일

나라에 기념일이 있듯 사람들에게도 저마다의 기념일이 있다. 대표적인 게  생일, 가족의 추도일  같다.  연인들 사이에서는 만난 날을 기준으로 100일, 1주년  어떻게든 다양한 명목으로 기념일을 만들어 이벤트를 하려고 한다. 이렇듯 기념일은 함께하는 사람에게 사랑과  관심을 표현할 수 있고, 삶을 진지하게 돌이켜 볼 수도 있으며, 새로운 다짐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무더위가 떠나가기 아쉬운 듯 태양이 마지막  힘을 다해  뜨거운 햇살을 쏟아내는 9월이 되면 아무도 관심 없고 알지도 못하는 나만의 기념일이 있다.

1991년   9월 18일  맑고  파란 하늘을 보며 가을 정취를 느끼기에 딱 좋은 날에  나는 군입대를 하게 되었다. 

군입대 약 한 달 전에 입영통지서를 받고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그 당시 나는 친구들보다 군입대가 늦었기에 나도 빨리 군대에 가고 싶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군생활을 잘수 있을지 걱정도 많이 됐다. 학교를 휴학하고 집에서 빈둥 빈둥 놀고 있었지만 노는 게 노는 것이 아닐 정도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군휴가를 나온 친구들의 과장이 많이 섞여 무용담처럼 들리는 경험담이 더욱 군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갖게 했다.


군입대 전까지 나에게 주어진 자유의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귀했다. 그래서 책상 위에 있는 달력에 9월 18 일을 D-day로 정해놓고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엑스표를 쳐가며 지나간 날을 아쉬워하고 남아있는 날을 유익하게 보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이런 나의 감정이나 생각을 부모님께는 전혀 말하지 않았고 도리어 운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군생활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행여나 걱정하는 마음을 원천차단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모습 때문인지, 아니면 2명의 형들이 군생활을 잘하고 전역해서인지 부모님은 딱히 걱정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드디어 입대일이 되었다. 강원도나  경기도에 있는 군부대로  입영을 하면 하루 전에 출발해야 하는데,  나는 전주 35사단으로 가기 때문에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부모님과 친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군입대를 무사히  했고, 그때부터 2년 4개월의  군대라는 색다른 시간이 시작되었다.

전주 35사단


 훈련소에서 1주일 정도  지나니  편지 쓰는 시간을 줬다. 조금은 강요하는 분위기였지만 부모님이 보고 싶기도 하고 잘 지내고 있다고 안심도 시켜드릴 겸 편지를 썼다. 얼마 후 아버지에게 답장이 왔다. 책상 달력에 매일매일 표시하는 엑스표를 보며 하루하루를  아쉬워하며 고민하는 내  마음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아버지도 마음이 편치 않으셨고  군생활을 잘할 수  있게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기도하셨다고 했다.

그 글을 읽으며 마음이 뭉클해졌다. 부모님은 내 마음을 다 알면서도 군대에 대해 자꾸 이야기하면 내가 더 불편해하고 힘들어할까 봐 마음속으로만 나의 고민과 걱정을 함께 나누신 것이었다. 

친구들과 교회 청년들에게지를 썼는데  그들에게도  답장이 왔다. 다 나를 걱정하고 격려하고 건강하게  군 생활을 잘할 수 있게 바라고 기도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당시 그런 편지가 정말 힘이 되었다. 처음 입대하여 인격이 무시당하고 모든 게 생소해 어리바리해서 자존감. 존재감. 자신감이  바닥을 칠 때 내 등뒤에서 나를 생각해 주고 응원해 주고 기도해 주는 사람이 있음에 너무 감사했고 군생활을 잘 헤쳐나갈 큰 원동력이 되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등뒤에서 나를 도와주고 응원해 주고 기도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런 깨달음의 시작일이 군입대일 9월 18일이다. 그래서 매년 9월 18일은  나만의 잊지 못할  소중한 기념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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