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소망 Sep 22. 2024

행복한 시간, 즐거운  라디오

어릴 적 잠을 자고 있으면 꿈속에서 가끔씩 아주 익숙한 음악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애국가였다. 애국가는 4절까지 들렸기 때문에 꽤 길게 느껴졌고, 후렴부 마지막에서 들리는 장엄한 악기소리에 나라를 위해 뭔가 열심히 해보려고 다짐하는 순간 애국가도 끝나고 잠에서도 깨어났다. 그런데 애국가는 꿈속에서 들은 것이 아니고 현실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예전에는 아침 6시 텔레비전 방송이 시작하면서 애국가가 나왔는데 아버지가 그 시간에 맞춰 TV를 켜신 것이었다. 어릴 때라 아침잠이 많아 더 자고 싶었지만 TV소리 때문에 다시 잠들지 못하고 아버지와 함께 산책을 가는 것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애국가는 나에게 알람소리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꿈속에서도 애국가가 들리면 이소리는 '꿈이 아니고 현실에서 일어나라는 소리구나'라는 의식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꿈속에서 애국가 소리가 아닌 다른 소리가 들렸다. 찬송소리도 들렸고 목사님들의 설교소리도 들렸다.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 집중하는 순간 잠이 깨었다. 이것도 꿈속에서 들리는 소리가 아니고 현실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그 소리의 근원지는 아버지가 켜놓은 라디오 기독교방송인 아세아방송(2001년 현재 극동방송으로 합병)이었다. 아침에 아세아방송을 계속 듣다 보니 내 귀에 익숙해졌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TV소리에 잠이 깨면 다시 잠들지 않았는데 라디오 소리는 다시 잠들 수도 있었다. 그만큼 라디오 소리는 나를 편안하게 했다. 시각을 자극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때부터  듣기 시작한 극동방송이 지금은 혼자 있을땐 하루종일 듣는 방송이 되었다.


1980년대 고등학생 시절,  그 당시 많은 중고생들이 그랬듯이 나도 라디오를 많이 들었다. 그중에서 밤 10시에 방송하는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프로그램은 정말 재밌었다. 좋아하는 통기타 가수들의 노래도 나오고 재밌는 사연도 나와서 매일 밤 라디오를 듣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는  학교에서 밤 10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이라는 것을 했다. 말이 자율학습이지 반 강제적으로 해야 했다. 밤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공부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더욱 나를 힘들게 하는 건 '별밤' 방송을 처음부터 들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방송 시간인 10시가 가까워지면 '별이 빛나는 밤에' 방송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방송은  특히 오프닝 음악이 감성을 자극했고, 그 당시 DJ는 가수 이문세였는데 목소리도 좋고 진행도 잘해 재밌었다. 학교가 끝나고 빨리 집에 와서 씻고 11시부터나 방송을 들으며 하루를 편안히 마무리했다. TV와 달리 눈을 감고도 방송을 들을 수 있으니 공부로 피곤한 고등학교 3학년에게는 참 좋은 휴식도구이었던 것 같다.


군대에 갔다. 군대에서는 기상나팔이라는 것이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내가 근무하던  부대는 기상나팔이 없었다. 그 대신 아침 6시가 되면 행정병이 방송으로 라디오를 틀었다. 삐이익~ 옛날증기기관차 기적소리가 들리며 '오성식의 굿모닝팝스'라고 힘차게 외치는 오프닝소리가  들렸다.  단잠을 깨는 그 소리가 싫으면서도  매일 듣다 보니 왠지 모르게 굿모닝팝스라는 방송이 친근해지고 궁금해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팝송과 영화 속 영어대사를  가르쳐주는 방송이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1분 남짓 나오는 그 라디오 소리가 좋게 들리고 프로그램  제목처럼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이하게 됐다. 그 여파였는지 전역후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굿모닝팝스가 생각났고 영어공부가 목적이 아닌  그때의 추억을 소환해 주는  방송이 좋아서  굿모닝팝스 월간지까지 사서  듣고 있다.

어릴 적부터 우연히 시작된 라디오와의 인연이  라디오로 시작해서 라디오로 끝나는 나의 일상을 만들었다. 

 함께하면 행복하고 즐거운 친구 같은 라디오가 정말 고맙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만의 기념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