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도 쉼과 여유가 필요해
나는 꽃이나 나무향기를 좋아한다. 산길을 거닐다 꽃이 보이면 멈춰서 꼭 향기를 맡아본다. 봄에는 벚꽃, 아카시아꽃, 여름에는 장미, 가을에는 들국화, 목서꽃 등 계절마다 산행을 하는 나의 코끝을 행복하게 한다. 그리고 나뭇가지 냄새도 좋아하다. 향나무, 소나무, 편백나무처럼 향기를 가지고 있는 나무뿐만 아니라 특유의 향기가 없어도 나뭇가지나 줄기에 코를 대고 있으면 신선함과 생동감이 느껴져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안정된다. 가끔씩 부러지거나 가지치기하고 모아둔 나뭇가지가 있으면 껍질을 벗겨내고 그 향기를 계속 즐기기도 한다.
개가 산책할 때 대부분의 시간을 냄새 맡는데 집중하는 것을 보고 어떤 냄새를 맡으려고 하는 것인지 많이 궁금했다. 다른 개의 흔적을 찾는 것인지, 그냥 후각이 발달해서 다양한 냄새에 반응하는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나무나 꽃에서 나는 냄새를 그냥 좋아하는 나처럼 개들도 그들이 좋아하는 냄새를 맡으려는 본능적 취향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겨울에 들어서면 산에서는 꽃향기를 맡을 수가 없다. 나뭇가지에서도 수분활동이 줄어들어 봄이나 여름처럼 신선함을 내뿜지 않는다. 그 대신 낙엽을 흩뿌린다. 1년 동안의 노고를 다 잊어버리고 쉬려는 듯 몽실몽실 자기를 감쌌던 잎을 무거운 짐을 덜어내듯 떨구어 버린다. 그 수고를 알기에 낙엽을 떨치는 나무를 다독여 주고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리고 떨어진 낙엽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주고 싶다. 1년 동안 나무를 성장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광합성작용을 했을까 어림짐작도 되지 않는다. 자기의 할 일을 다하고 이젠 땅바닥에 나뒹굴며 여유의 시간을 갖는 낙엽에서 쉼이 필요한 삶의 이치를 생각해 본다.
대학시절 기숙사 뒤편 공터에는 나무가 많아 가을이면 낙엽이 많이 떨어졌다. 그걸 모아서 불을 피웠다. 하얀 연기를 뿜으며 조금씩 타들어 가는 낙엽을 보고 있으면 머릿속이 정돈되고 맑아지는 느낌이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불멍을 한 것이다. 하얀 연기가 나를 감싸며 코끝에 그 향기가 전달되고 내 온몸에 밸 때 마치 고향의 품의 안긴듯한 편안함으로 정신적 쉼을 가질 수 있었다.
프랑스 리미 드 구르몽 시인(1858~1915)은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라는 시구절로 낙엽의 쓸쓸함을 노래했는데 나는 낙엽을 밟을 때 쓸쓸함 보다는 가고자 하는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쉼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안도감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