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의 검은 꽃을 읽고
이 소설은 조선이 몰락하던 대한제국 시절 새로운 삶을 희망하며 멕시코로 떠나는 1,033명의 사람들 이야기로 시작된다. 1900년대 초반 많은 조선사람들이 미국 하와이로 이민을 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멕시코까지 갔다는 사실은 소설을 읽으며 처음 알았다. 이민 중개인들의 속임수로 지구 반대쪽 먼 이국만리로 가서 노예와 같은 비참한 삶을 살았지만 그들의 아픔과 슬픔의 현실을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잃고 1910년 주권까지 잃어버린 나라가 품어 주고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멕시코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은 사람들은 고아. 전직군인, 박수무당, 황족, 전직신부. 도둑등 다양했다. 하지만 이민의 목적은 하나 같이 희망을 찾는 것이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희망, 양반 상민의 신분차별이 없이 공평한 세상이라는 희망, 과거의 삶을 잊고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희망을 기대하며 배로 한 달이나 걸리고 말도 통하지 않고 문화차이도 많은 이국만리로 갔다.
그런데 막상 도착한 그곳은 희망은커녕 절망이 기다리고 있었다. 뜨거운 뙤약볕에 하루 종일 농장에서 일하지만 싼 임금을 받았고 이에 반해 비싼 식료품값으로 돈을 벌지 못하는 구조였고, 4년간 일을 해야 하는 채무계약서 때문에 농장을 떠나 고국에 돌아갈 수도 없었다. 노예취급을 당하며 채찍에 맞아도 하소연할 사람도 없었고 외교권을 빼앗겨 버린 나라도 도움을 주지 못했다.
이런 절망적인 환경에서도 그들은 조금씩 희망을 현실화 시켜갔다. 부당한 대우와 처우에 집단 항의로 개선을 했다. 메마른 사막처럼 감성과 정서가 빈약한 환경에서도 사랑도 피어났고 새로운 생명도 태어났다.
4년 동안의 채무계약이 끝난 후의 장밋빛 삶도 꿈꿨다.
희망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멕시코 혁명이 있을 때는 용병으로 활약했고 인근 과테말라의 내전에도 참여했다. 돈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담보로 내놓았다.
그런데 운명은 야속했다. 소설 속 주요 등장인물들의 삶이 순탄하지 않았다. 죽어라 일만 하다가 남의 나라의 전쟁에서 사선을 넘나들다 죽음을 맞이했다.
그들의 기구한 삶에 연민의 정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들 중 일부에게는 분노가 일어났다
과테말라 내전에 참여한 사람들 중에는 자기들만 살기 위해 다른 사람들 몰래 도망쳐버린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내전 참여를 주도한 사람들이었다. 자기들 때문에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부분 죽었는데도 반성과 참회도 없이 한인 사회로 다시 돌아와 지도자로 살았다. 자기 행동이나 말에 책임을 지는 게 지도자가 가져야 할 최우선의 덕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록 허구이지만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등장인물들의 일이 꼬이고 고통당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이야기가 마음을 먹먹하게 하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