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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님 Jul 04. 2024

부족한 완벽주의자

나의 말 02.

  몸에서 먼저 신호를 보낸다. 옆사람에게 들리지 않을까 싶도록 두근거리는 심장부터 시작된다. 둥, 둥, 둥, 둥, 일정박을 치다가 두둥, 두둥, 두둥, 두둥 조금씩 빨라지더니, 퉁퉁퉁퉁퉁퉁퉁퉁 박자를 쪼개어 변주하기 시작하면 심호흡도 소용없다. 자꾸만 주먹을 쥐었다 펴는 건, 손에서 나는 땀을 남몰래 말리기 위해서다. 수분이란 수분은 손바닥으로 다 빠져버렸는지 입술이 쩍쩍 붙는다. 더 이상 삼킬 마른침도 없어 깡생수만 벌써 두통째 들이켠다. 급기야 얼굴에 경련이 일고 마는데, 입가 근육이 마음대로 툭툭 튀어 오르면 절정에 다다른 거다. 평소엔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던 안면근육은 부위마다 자아가 따로 있는 건지 제멋대로 존재감을 뽐낸다. ‘웃자,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했어.’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지만 한쪽 입꼬리만 비죽 올라간다. 아마도 굉장히 비열해 보이는 웃음일 테지. 피카소 그림 속 비대칭 얼굴을 가진 여인을 떠오른다.


  강의를 앞두고 며칠 밤을 잠 못 이루며 준비했다.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는 마음으로, 크게 달라진 것도 없는 PPT를 고치고 또 고친다. 타이머로 초단위까지 확인하며 원고를 수정하고, 몇 차례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다. 이쯤에서 가벼운 농담 한번 쳐주며 분위기 환기시키고, 반응이 없을 경우를 대비한 플랜 B 멘트까지, 모든 것에는 계획이 있다. 마지막 원고 읽기가 끝났을 때, 기가 막히게 타이머 알람이 울려주면 드디어 의자에서 일어날 수 있다. 크게 기지개를 켜면 발끝부터 손끝까지 만족이 차오른다. 따깍, 캔맥주 따는 소리와 목구멍을 짜릿하게 때리는 첫 모금까지, 이제 준비는 완벽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어야 했다. 분명 어젯밤 최종 원고 수정과 리허설은 완벽했다. 뭐가 문제인지 내 몸이 다시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다. 빨라지는 심장 박자가, 여기저기서 샘솟는 땀방울이, 파르르 떨리는 입가가 심상치 않다. 힐끗 넘겨다 본 룸미러 속 내가 안쓰럽기까지 하다. “긴장”이란 단어를 떠올리자, 이마와 콧잔등에 맺히던 땀방울이 목덜미로, 겨드랑이로 점점 범위를 넓혀가며 걷잡을 수 없이 솟아난다. 지적인 이미지를 위해 신경 써서 고른 하늘색 셔츠 곳곳에 짙은 파랑이 물들고 말았다. 앞으론 하늘색 셔츠 절대 금지다.  

   



  지금껏 남 앞에서 말하는 일로 밥을 먹고 살아왔다. 햇수로 18년, 초등학교 교사로 사는 동안 수백 명의 학생 앞에서 수업을 했고, 그 수의 약 두 배에 달하는 보호자를 상대했다. 하지만 같은 교사들 앞에서 하는 강의는 다르다. 상대는 나를 믿고 의지하는 학생이나 학부모가 아니다. 어디 뭐라고 말하나 한번 보자,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무표정으로 앉아있는 그들의 마음의 소리가 들려온다. 그 마음을 충분히 알기 때문에 나는 잘해야 하고, 들을 만한 강의였다고 증명해야만 했다. 그러니 긴장이 될 수밖에. 그렇더라도 이래서야 강의는커녕 마이크나 잡을 수 있겠나 싶겠지만, 어떤 날은 그런대로, 또 어떤 날은 꽤 박수를 받으며 무사히 마쳤다는 엔딩이 반전이라면 반전이랄까. 미리 준비한 애드립(준비를 했다면 이미 애드립이 아니지만)도 적절한 타이밍에 쳤고, 소소한 웃음이 터져서 플랜 B까지 갈 일도 없었고, 약속된 시간보다 오 분 먼저 발표를 마치고 질의응답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최고의 강사는 마치는 시간을 넘기지 않는다고 하지요. 딱 일 분 전이네요.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은은한 셀프 칭찬으로 최고의 강사 코스프레를 마무리하면 비로소 무대가 끝난다. 긴장을 철저히 숨기고,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 낸 배우가 된 기분이다.      




  참 실속 없게도 나는 공식적으로만 완벽주의자다. 이제 막 강의를 마친 완벽주의자의 실체를 살펴보기 위해 그가 사는 집을 관찰해 보자. 침대에는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옷가지가 여기저기 누워 있다. 책상 위에는 얼음이 녹아 옅어진 갈색빛 물만 고여있는 커피잔 두어 개, 먹다 흘린 음식으로 엉망이 된 식탁 주변도 꼴이 말이 아니다. 바닥 가득 어지럽게 널려있는 아이의 장난감과 책, 채 완성하지 못한 종이 접기와 뒤집어 동그랗게 말아놓은 양말이 굴러다니는 거실도 만만치 않다. 마른 옷무덤이 된 건조기, 세탁기 속에도 빨래가 한가득이다. 한 시간의 강의를 위해 지난 며칠간 집은 이 지경이 되었다. 식탁 위 말라붙은 빨간 국물 자국을 닦으며, 나는 왜 이렇게 기를 쓰고 잘하려고 하는가를 생각해 본다. 오늘 말을 버벅거렸다면, PPT 순서가 꼬였다면, 강의 시간을 넘겨서 끝냈다면, 준비하느라 애쓴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괴로워하며 밤마다 이불을 차고 있을 거다. 냉장고 속 맥주와 와인을 있는 대로 꺼내 마시며 남편에서 매일 두 시간쯤 하소연을 퍼부었을 거다. 내가 얼마나 바보 같고 멍청하고 부족하고 엉망인지를 최선을 다해 설명했을 거다. 세상에서 나를 제일 미워하는 사람이 나인 것처럼 날카로운 말들을 쏟아내겠지. 한없이 가라앉은 나를 달래느라 애쓰는 상상 속 남편을 위로하며 다시 주변을 돌아본다. 여기저기 발에 차이는 장난감으로 아이와 둘만의 시간을 보냈을 남편과 아이가 그려진다. 갈아 신을 양말이 없어 세탁기와 건조기를 돌렸지만 빨래를 갤 짬까지는 도저히 나지 않았을 거고, 아이에게 밥을 해먹이고 재우느라 이 빨간 국물까지 닦을 정신이 없었을 테지. 공식적으로만 완벽주의자인 엄마 또는 아내를 둔 아이와 남편의 흔적이 온 집안에 흩어져 있었다. 내 모자란 틈을 채워주는 가족들 덕분에 나는 오늘도 그럭저럭 완벽주의자 행세를 하며 살아갈 수 있다.     




  딸아이가 한참을 그리던 그림 위로 마구 검은 칠을 하다가 거친 손길로 종이를 넘기는 걸 본 적이 있다. 다시 한참을 그리다 급기야 씩씩거리며 종이를 찢어버리기까지 한다. 가만 보니 그리고 싶은 것과 제 손이 그려내는 그림이 달라 자꾸만 지워버리고 찢어버리고 있었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던데, 지금이 딱 거울 속 나를 직면하는 순간이다. 그까짓 그림쯤이야 좀 안 되면 어떤가.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닌데 눈물까지 글썽일 일은 아니지 않은가. 아이와 나를 번갈아 보며 웃는 남편을 보니 괜히 부아가 치민다. 고작 일 학년 꼬마가 얼마나 대단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걸까. 답답하고, 안쓰럽고, 같이 속상한 마음까지 들다가 급기야 화가 나지만 오늘은 참기로 한다. 지금 네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아니까. 그리고 다짐할 뿐이다. 조금 덜 괴로워하고, 가끔은 즐겁고, 때로는 충분한 마음으로 살아가겠다고. 내 거울 같은 너에게 부족한 완벽주의자가 세상과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을 보여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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