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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블루스 Apr 16. 2022

분홍 소시지 랩소디

음식이 인생이 된다

분홍 소시지를 계란 입혀서 부치다 문득 과거로 회귀 하여 어릴 적의 기억이 떠올랐다.

특별히 잘 살거나 못 살거나 하진 않은 어린 시절.

마당에 감나무가 있었고 가을이면 감나무 꽃을 엮어서 목걸이를 하고 놀았었다. 지하수를 끌어올려서 사용하는 펌프가 마당에 놓여 있었고 마중물을 부으면 물이 올라오는 것이 신기하여 형제들이 서로 하겠다고 싸우기도 했었다. 동네에는 그때만 해도 냇물이 흐르던 공동빨래터가 있었고 여름이면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첨벙거리던 그 어린 시절. 그 시절은 나의 뇌 속에 여름날의 햇볕으로 저장되어 있다. 김현철의 "동네"라는 노래는 그때의 아련함을 떠올리게 해서 지금도 가끔 찾아 듣기도 한다. 

그러나 행복은 그때까지였고 열 살 이후의 어린 시절은 회색과 흰색이 섞인 흑백 필름에 가깝다.

하던 사업을 몽땅 엎어버리고 부모님은 야반도주 같은 걸 하셨고 부모님의 경제력이 형편없어진 아이들은 그 삶의 무게를 견디면서 살아가야 했다.

분홍 소시지 같은 건 자주 먹지도 못하는 시절이 되어 버린 것이다.

도시락을 펼치면 김밥 속에 들어 있던 분홍 소시지. 

맛이 있어서 내가 좋아하는 아이템이었건만 그것마저도 감추어야 했던 소풍. 

다른 아이들의 도시락통 속에 어여쁘게 놓여 있는 소시지가 아니라 햄이나 소고기가 들어 있는 김밥을 보고 만 것이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오늘 아침 분홍 소시지를 기름에 부치면서 왜 나는 아직도 이 녀석을 좋아하고 있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즐거운 소풍이어서 한껏 들떠야 했지만 햄과 소고기가 들어 있는 다른 아이들의 도시락을 보는 순간 주눅이 들어 버리고 마는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떠 올리면 분명 지금쯤 나는 이 녀석을 미워하고 있어야 하는 게 맞는데 여전히 나는 반찬으로 즐겨 먹는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내 인생이 되어버렸다.

좋았던 기억도 창피했던 기억도 모두 추억이 되어 온전히 내가 되어 버린 것이다.

어린 시절 길을 들인 음식은 나이가 먹어도 다시 찾게 되지만 어린 시절 즐겨 먹지 않았던 음식은 지금도 길 들여지지 않고 있다. 입맛이란 게 그렇게 전개가 되고 길이 들여진다.

어육이 들어간 밀가루떡이지만 누군가가 분홍색 색소를 넣기 시작했고 그 영롱하고 먹음직스러운 분홍 소시지는 소소한 인생을 걸어온 사람들의 과거가 되고 현재가 되었다.

요즘은 키토 김밥이라고 야채만 들어 있는 김밥이 인기를 얻고 있고 가격도 비싸다.

못 살던 시절에 내 소풍 도시락에 키토 김밥이 들어 있었으면 나는 어땠을까. 

어린 시절의 나에게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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