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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다 Jul 02. 2024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 심포니로서 건축

# 욕망과 현실의 딜레마


건축주는 핀터레스트 또는 인스타그램에서 찾은 듯한 사진을 내민다. 저는 이게 좋아요. 이런 느낌으로 해주세요.

건축설계, 그중에서도 주거공간을 다루다 보면 수많은 건축주들의 집약된 로망을 접하게 된다. 사진은 대게 비슷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캘리포니아 또는 발리의 녹음 가득한 풍경 속 사방으로 트여있는 창을 가지고 있는 모던한 건물들, 정갈한 잔디가 깔린 넓은 대지.

한국의 주택들을 살펴보면 그런 쿨한 주택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핸드폰 속에 모아둔 사진들은 더욱 소중해진다. 나는 꼭 이렇게 지을 거야! 다른 집들은 왜 저럴까? 요즘에는 멋진 카페들도 많은데 집은 왜 저렇게 안 하지? 대체 왜일까?

하늘은 청명하고 유리에는 서리가 껴 있다. 핸드폰으로 오늘의 기온을 체크한다. 반팔을 입고 다니던 기억이 흐려지지 않았는데 코트를 꺼냈다.

한국의 날씨는 아차 하는 사이 주기가 바뀌기 때문에 전기매트나 선풍기 같은 계절성 기기를 너무 잘(깊숙이) 보관해 두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에어컨을 켜고 2주 뒤에는 난방을 트는 나라가 한국이기 때문이다. 평균적인 기온을 따져보았을 때 여름과 겨울의 온도차가 60도에 가깝다. 변덕스러운 날씨만큼 습도도 대단하다. 이것은 주거공간에서 첫 번째로 중시되는 것이 단열성능이라는 뜻이다.



# 남으로 창을 내겠소


주택에서 단열성을 잡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창이다. 창 사이즈가 클수록 열손실이 많아지고 결로의 위험성은 커진다. 주택설계 시 법적으로 명시되어 있는 기준을 지키면서 건축주가 수용 가능한 합리적 금액의 창을 배치하다 보면 캘리포니아의 저택은 점점 멀어진다.

창 사이즈에 대해서는 환경에 따른 또 다른 제약이 있다.

한국은 인구밀도가 굉장히 높은 나라이고 구만리 산골을 제외하면 주택이 지어지는 대부분의 대지는 건폐율을 최대한으로 채워 지어 지기 때문에 마당이 넓지가 않다. 이는 사생활 보호가 쉽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상업건물이야 우리가 이렇게 사람이 많다 외치며 오픈되어 있지만 주택에서 지나치게 큰 창은 주거자의 일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결국 하루의 대부분이 블라인드로 가려지게 된다.

벽면 전부를 창으로 채우지 않는 세 번째 이유가 있다.

수많은 매체에서 미니멀리즘에 대해 찬양하고 인스타그램 속 인테리어는 최소한의 가구로 정갈함을 강조한다. 많은 이들이 미니멀리즘을 동경하지만 우리는 정말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 있을까? 최소한 나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다.

하나를 살 때 하나를 버릴 수 있기라도 한다면 좋을 텐데 버리자면 언젠가는 쓸 것 같고 화가 나면 새로운 물건이 사고 싶다. 우리가 사랑하는 물건들을 버려내기란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고, 이를 숨겨주기 위해서는 드레스룸 또는 창고나 수납공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또한 여의치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주택에는 창 양쪽으로 가구와 잡다한 물건을 숨겨주기 위한 날개벽이 필요하다.



# 아름다움을 향한 욕망


주택에서 설치되는 창에는 이러한 기능성뿐만 아니라 안전에 대한 요소도 숨어있다.

법적으로 정해진 단열성능을 충족해야 허가가 가능하지만 필수적으로 성능이 낮아야 하는 창이 있다. 2층 이상의 주택에 해당하는 소방관 진입창이 그렇다. 소방관 진입창은 화재가 났을 시 소방관 진입과 인명대피가 가능하도록 설치되는 창이다.

도로에 면한 방향의 2층 이상에 설치되어야 하며, 쉽게 깨질 수 있도록 다른 창보다 얇은 유리가 들어가고 사람이 통과할 수 있는 사이즈가 확보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몇 가지 예시들처럼 설계를 할 때는 기능과 규제, 안전을 건물 안에 녹여내 계획을 하여야 한다.

이는 필수적인 조건임에 틀림없지만 이렇게 기능만 따져가며 우리가 염원하는 아름다운 주택을 포기해야 할까?

최대한 시끄러운 소리를 골라내 5분 간격으로 서너 개의 알람을 맞춰놓고 해가 완전히 뜨기 전 어둑한 커튼을 걷어내고 출근을 한다. 고통스럽기도 때로는 뿌듯하기도 한 일상을 반복한다.

업무를 하고 잠시 즐거운 점심시간을 가지고 다시 업무를 하고 바쁜 날에는 야근을 하고 아주 바쁜 날에는 철야를 하고, 한 달에 한 번 정해진 날에 급여가 통장에 들어오고 쉬는 날에는 친구를 만나 식당이나 카페, 바에 가고 특별한 날에는 신경 쓴 멋진 곳에 간다.

인생 전반을 아우르는 이 모든 행위들의 대부분이 아름다움을 향한 욕망을 향해 뻗어있다 생각한다. 원하는 옷과 물건을 사고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먹고 분위기 좋은 곳에 가고 공연과 전시회에 가고 차를 사고 멋진 집을 꿈꾸는 이러한 모든 것들. 각자의 세계에서 취향에 맞는 아름다움을 향유하고 쟁취하기에 삶은 충만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가 빠진 주거공간은 건조할 뿐이다.



# 기능으로서의 건축


설계자란 물리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건축주의 니즈를 최대한으로 충족시켜야 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아름다움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한국의 주택은 바다 건너 따뜻한 기후와 광활한 대지를 가진 해외의 나라들과는 다른 방향성을 띤다. 대체로 작은 대지에 지형이 고르지 않고 3인 이상의 인원이 거주하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 입체감 있는 구조로 설계된다.

건축주를 만나 첫 번째로 하는 일은 대지의 모양을 살펴보고 원하는 공간구성, 동선을 파악하는 일이다.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규모 상관없이 꽤 많은 실이 필요하게 되는데 가장 큰 이유는 주방과 다용도실에 있다.

양문형 냉장고 두 개, 김치냉장고 스탠드형 하나, 스탠드형 냉동고 하나. 다용도실에는 보조주방을 설치해 곰국을 끓이고 김장을 한다. 어떠한 건축주들은 이 공간이 없다면 주택을 지을 필요가 없어!!라고 외치는데, 극단적 예라 하기에는 풍성한 한국인의 식탁이 땅에서 솟는 건 아니기 때문에 나 역시 깊은 공감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합리적인 공간구성을 통해 수납공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다양한 실 구조는 건물 외관의 풍부한 매스감으로 풀어낸다.



# 욕망과 현실은 어떻게 절충되는가


집을 짓는 모두가 해외의 주택을 동경하는 것은 아니다. 기술이 발전하고 환경이 풍요로워질수록 문화에 대한 욕구는 강해지고 자연스럽게 전통에 대한 관심 또한 커진다. 한옥에 대한 선호도의 증가가 그렇다. 하지만 한옥은 공사가 까다롭고 공기가 길다. 일반적인 주거공간으로 택하기에는 큰 맘을 먹어야 한다.

그것은 할 수 없습니다, 안됩니다로 자르는 것 또한 건축주가 한옥에서 살겠다 마음먹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한옥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구조와 형태적 방법이 있다. 나무를 깎아 홈을 파 결속하는 방식으로 시공하는 한옥과 달리 중량목구조는 전용철물을 사용해 구조적 안전성을 높인다. 가공된 목재로 한옥과 마찬가지로 기둥과 보를 세우는 방식이기 때문에, 구조체의 자연스러운 노출이 가능해 보 노출을 통해 목재의 질감을 살려 한옥의 분위기를 간접적이나마 즐길 수 있다.

형태적 방법으로는, 한옥의 전통적인 건물 모양을 살리는 것이다. ㅁ자 또는 ㄷ자 모양의 건물을 통해 중정을 살리고 거실 앞에는 와이드 하게 뻗어지는 툇마루를 만들고 작은 별체를 지어 다실 또는 게스트 룸으로 사용하는 식이다.

어느 건축사사무소에서는 갈색 징크 지붕과 스타코로 외벽 마감을 하고, ㄷ자 형태의 구조를 이용해 분위기만으로 한옥을 표현한 사례가 있다. 이 주택은 많은 인기를 끌었는데, 이는 한옥에 대한 관심과 한옥을 대체하는 모던한옥에 대한 수요를 증명하기도 한다.

주택은 그 어떤 건축물 중에서도 사람들의 피부에 근접하게 맞닿아있다. 사소한 디테일 하나로도 불편이 수천수만 번 중첩될 수도, 매일의 일상을 황홀하게 만들어줄 수도 있다.

건축주의 생활패턴에 맞춰진 흐르는 듯한 동선, 인접건물들의 위치와 향에 맞춘 따스한 채광, 건축주가 편리함을 느끼고 모든 요소가 제 기능을 발휘할 때 비로소 거주지로서의 건축물이 완성되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아름다운 건축물이란 이렇게 입체적인 것이다. 내가 건축을 심포니(交響曲, Symphony)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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