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게 받은 프로젝트로 인해 강릉을 향하고 있었다. 영업담당인 H의 햇볕에 그을린 큰 손이 핸들을 틀었다. 그와 출장을 가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고, 차 안에는 약간의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다. 영업팀에 입사한 지 두 달이 된 H는 이전에는 보험회사에서 일을 했었다고 했다. 그의 사나운 인상과 달리 차는 흔들림 없이 가로수 사이를 고요히 미끄러졌다.
강릉의 현장까지 가는 길은 한산했다. 형식적인 몇 마디의 대화가 지나고 다시 침묵이 흐르자 영업직원은 잔잔히 흘러나오던 팝송의 볼륨을 키우고 나는 가방에서 서류를 꺼냈다.
미팅할 내용을 검토하던 중 메시지가 왔다. 세 살 난 조카의 사진이었다.
젖살이 가득한 오동통한 볼과 처진 눈매의 동그란 얼굴이 거대한 택배박스 안에서 고양이마냥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오빠에게 애기가 왜 박스에 들어가 있냐 묻자 유아용 텐트를 사 줬더니 포장되어 있던 박스를 더 좋아한다는 답이 왔다. 조카가 아니라 고양이라고 불러야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창밖을 바라보자 끝없이 이어지는 들판 위로 오래된 주택, 무성한 풀과 나무, 전신주가 늘어진 전봇대가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불현듯 유년시절의 기억이 떠올렸다. 책상 아래의 구석, 이불이 쌓여있는 어두운 장롱 안, 놀이터의 미끄럼틀 아래에 위치한 좁고 어두운 공간. 이러한 장소들은 어린아이들에게 동화 속으로 숨어든 것 같은 비밀스러움을 심어주지만 안타깝게도 유년의 시기를 지나면 어딘가에 몸을 숨기는 행동은 할 수 없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단 한 곳, 어른에게도 낭만적 상상을 자극하는 장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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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마주한 건축주는 60대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다부진 체격에 단호한 인상을 가진 남자였다. 조금 구겨진 하늘색 셔츠에 회색 양복을 입은 그는 소방관이었고 작년에 은퇴를 했다고 말했다.
설계담당자라 소개하며 명함을 건네자 건축주는 받아 든 명함을 안주머니에 넣고 악수를 청했다. 단단히 쥔 손에서 굳은살이 느껴졌다.
해변에서 4km 정도 떨어진 골프장 근처에 위치한 현장은 전날 눈이 와서인지 땅이 질척이고 동쪽에는 작은 개울이 있었다. 성토와 주변의 향에 따른 건물의 배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도로부터 대지 부근의 촬영까지 마치고 나서야 차를 타고 근처에 있는 카페로 이동했다.
신발 밑창이 진흙으로 잔뜩 더럽혀져 있었기 때문에 다 같이 카페 입구 카페트에 발을 굴렀다.
“이 부근에 갈 만한 카페는 여기밖에 없어요.”
카페 문을 열며 건축주가 말했다. 철이 지난 가구로 꾸며진 카페에 손님은 우리뿐이었다. 카운터에는 단발머리를 밝게 탈색한 앳된 얼굴의 여자가 앉아있었다. 손님이 들어온 지도 모른 채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점원이 뒤늦게 메뉴판을 가져다줬다.
중앙에 있는 6인용 테이블에 앉아 미팅자료를 꺼내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거주인원과 원하는 실 배치, 토지 모양에 따른 건물의 구성을 잡는 동안 건축주는 내내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크게 원하는 건 없어요. 1층에 방 하나, 화장실 하나, 2층에는 방 두 개와 화장실 하나. 와이프 때문에 주방과 드레스룸은 크게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원하는 것이 없다는 건 생각보다 까다로운 일이다. 대부분의 건축주들은 수정을 거듭하며 자신의 욕구를 깨닫게 되니까.
“건축주님께서 가장 신경 쓰시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두툼한 양손을 테이블 위로 올린 건축주가 내 눈을 바라봤다.
“사실 정말 하고 싶은 게 있는데 가족들이 반대를 하네요. 은퇴를 하고 고향에 땅을 샀어요. 애들도 독립을 하고 원하는 걸 할 수 있는 여유가 이제야 생겼거든요. 다른 곳은 상관없지만 하지만 다락방은 반드시 하고 싶어요. 아내고 애들이고 몇 달 지나면 창고가 되어버린다고 반대하는데, 다락 때문에 내내 주택에서 살고 싶었어요. 지붕을 따라 사선으로 이어지는 큰 유리창과 천창도 두 개 넣어서요.”
“가족 분들과 협의는 되신 건가요?”
“우겨 봐야죠. 어차피 제 돈으로 짓는 건데.”
“이기실 거라 믿고 다락을 넣어 평면 계획을 잡아볼게요.”
세 시간의 미팅 중 처음으로 건축주가 큰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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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미팅이 잡혀있어 곧장 전주로 이동을 해야 한다는 영업 직원에게 인사를 건네고 서울로 향하는 KTX를 탔다.
가방에서 산문집을 꺼내 십분 가량 읽다 책장을 덮고 창밖을 바라봤다. 단조롭게 이어지는 풍경 너머로 잔상처럼 남은 건축주의 미소는 어릴 적 놀러 가곤 했던 외가를 떠올리게 했다.
9살 무렵까지 존재하던 그곳은 음성의 산자락에 위치해 있었다. 한옥을 개조한 오래된 시골집은 어느 부분은 낡은 사진으로, 어느 부분은 짧은 영상으로 존재한다. 빛바랜 장면 속에서도 선명히 느껴지는 기억이 있다.
엄마의 유년과 내 유년 사이에서 존재하던 외가는 당시 살던 아파트와는 동떨어진 이질적인 공간이었다.
뒷산에는 허리까지 오는 잡초들 사이로 몇백 년은 된 듯한 오디나무 자리 잡고 있었고 마당의 돌담 안쪽에는 붉은 사르비아가 한가득 피어있었다. 발바닥에 냉기가 느껴지는 대청마루를 지나면 빛이 잘 들지 않는 어두운 거실이 나오고 안쪽 방 깊숙이에 있는 덧창 너머로 단이 높은 계단이 있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기다시피 올라가면 먼지 냄새가 스며든 다락이 나온다.
전구조차 설치되지 않은 다락은 작은 창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 전부다. 회색빛의 침침한 공기는 낮과 밤사이의 경계를 띤다. 바닥에는 할아버지가 읽으시던 한자가 어지러이 쓰인 책들이 쌓여있었다. 외부와 단절되어 시간이 흐르는 감각조차 잃은 채 웅크리고 앉아 이해하지 못할 책들을 뒤적이는 것이 그곳에서 만의 특별한 놀이었다.
다락은 오로지 나만이 속한 세계였다. 창 너머로 붉게 젖어 들어가는 하늘이 보이면 멀리서 나를 부르는 엄마의 음성이 울렸다. 엄마의 목소리는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라는 신호다.
잠에 들기 위해 다락 아래에 위치한 안쪽 방에 누워있으면 이따금 타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천장이 삐걱거렸다.
도깨비의 존재를 믿고 있던 어린 딸을 안심시키기 위해 엄마는 이불을 턱 아래까지 덮어주며 옆집에 사는 고양이가 놀러 온 모양이라고 소곤거렸다.
가물거리는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며 할아버지의 서적들 사이를 노니는 옆집 고양이를 상상했다. 지금은 그 소리가 정말 고양이였을까 싶지만 유년시절의 추억을 위해 그렇게 믿기로 했다.
외가를 떠나고 나서도 천장을 바라보며 미로와 같은 꿈을 꿨다.
다락은 내게 고요와 비밀의 공간이었다. 오래된 기억은 불분명 하기에 신비로움을 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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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과 지붕 사이에 숨어있는 다락만큼 양면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곳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음습하고 알 수 없는 장소인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평화롭고 아늑한 둥지. 정 반대의 그림에는 공통점이 있다. 외부에서 감추어진 나만의 공간.
다락의 유난스러운 은밀함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그건 유년의 기억이 침전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진짜든 허구든 간에.
다락을 겪어보지 못한 이들에게도 이곳은 유년의 향수로써 존재한다. 글과 영상에서 특정한 공간을 위한 장치로서 활용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의 책장에 꽂혀있었을 전집 중 수많은 페이지에 다락은 등장한다. 가난한 주인공이 어른들의 구박을 피해 숨어들기도 하고, 버려진 다락에서 신비한 물건을 발견하기도 한다. 보물섬과 같은 환상의 장소와 달리 다락은 주변에 존재하는 곳이기에 경험해보지 못한 이들에게도 겹겹이 쌓이는 상상과 달콤한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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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법상 규정되는 다락은 실이 아닌 지붕 아래의 공간이다. 법적으로 명시된 다락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여러 규제에 따라야 한다.
다락의 높이는 바닥구조체 윗면에서부터 지붕 마감 끝선까지의 가중평균이 1.8m 이하가 되어야 한다. 지붕재, 단열재, 슬라브, 천장마감과 바닥마감의 두께를 모두 합하면 700mm 정도가 되므로 실내천장의 높이는 더욱 낮아지게 된다. 실질적인 해결방안은 다락의 넓이를 확장하고 낮은 바닥면을 수납공간으로 활용하여 평균 높이를 최대로 올린다.
실이 아니기에 실로 판단될 수 있는 모든 부분이 금지된다. 칸막이벽, 화장실, 냉난방, 급배수시설 등 각종 설비설치가 불가하다.
설명을 들은 건축주는 억울한 마음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외친다.
“TV에 나오는 다락은 전부 있던데 왜 안된다는 거죠?”
‘그렇게 하면 불법건축물이 됩니다.’라는 말을 내장 깊숙이 삼키며 건축주를 설득시키는 지난한 시간을 거친다.
동일한 법규에 대해서도 지자체마다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유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다락을 원하는 건축주들의 욕망은 끊이지 않는다. 그토록 다락을 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담을 통해 들어온 건축주들의 목적은 다양하다. 가장 많은 사례는 역시 어릴 적의 로망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다. 그다음으로는 어린 자녀를 위한 공간이다. 자신이 겪은 설렘을 자녀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은, 이른바 욕망의 전이다.
다락을 외치는 건축주들의 절망과 원망과 조름과 수긍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연은 고양이다락방이다.
처음에는 의아함이 앞섰다. 다락이 고양이 방이라니, 고양이는 높은 곳을 좋아하지 않나? 다락은 천장이 낮아서 답답하지 않을까?
언젠가 인터넷에서 보았던 옷장과 천장사이에 끼어있는 검은 고양이가 떠올랐다. 여행지에서 보았던 지붕 위에서 평온하게 햇볕을 쬐던 얼룩 고양이도.
도면을 치며 진지한 고민을 거듭하고 있자 이를 안쓰럽게 여긴 인테리어 담당자가 설명을 해주었다.
(그녀는 베리라는 무척 사랑스러운 갈색 털에 연두색 눈동자를 가진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고양이가 높은 곳을 좋아하는 건 마치 TV를 보는 것과 비슷해요. 다락에 창문이 있어 밖을 내려다볼 수 있다면 천장이 낮아도 충분히 만족해할 거예요.”
여전히 이해는 되지 않지만 납득하기로 했다. 고양이를 이해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니까.
일반 다락과 고양이 다락의 가장 큰 차이점은 도면의 실명을 고양이 다락방으로 표기한다는 점이다. 그냥 다락방이라 표기해도 무방하지만 고양이 다락방이 오백 배는 귀엽다는 치명적인 이유가 있다. 그저 세 글자만 더해졌을 뿐인데 도면을 볼 때마다 몽글몽글한 기분이 차오른다.
어릴 적 외가의 다락방에는 해가 지면 고양이인지 다른 무엇인지 모를, 부디 고양이었으면 하는 동물이 돌아다녔지만 건축주의 집에는 털이 보송보송한 진짜 고양이가 창밖을 구경하고 있을 것이다.
다락은 많은 신경이 필요한 공간이다. 쾌적한 생활을 위한 설비 설치가 어렵기 때문에 춥거나 더운 날씨에는 장기간 머무르기 어려워 별도의 냉난방시설이 필요하다. 분위기를 만끽하며 영화를 보거나 쿠션에 몸을 묻고 책을 읽다 허리가 뻐근해져 스트레칭이라도 할라 치면 천장에 머리를 부딪치기 일쑤다. 무거운 청소기를 들고 계단을 오르거나 웅크린 자세로 바닥을 닦고 있으면 한숨이 절로 나올 것이다. 이토록 보살핌이 필요한 공간이라니. 그렇기에 어느 곳보다도 살아 숨 쉬는 공간이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나만의 비밀스런 공간이었던 외가의 다락은 부지를 구입한 사람이 새로운 집을 짓기 위해 허물어 버리는 바람에 폐가조차 되지 못했다. 이따금 목격하지 못한 다락의 죽음을 상상한다.
낡은 마루와 서늘한 온도의 거실, 이불이 깔려있던 유난히 뜨거운 방, 언제나 음식이 만들어지고 있던 부엌, 가장 깊은 곳에 은밀히 머물러있던 다락. 상상과 기억이 혼재된 멈춘 영상과 같은 그곳이 흰 먼지에 휩싸여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기억의 종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