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피곤한 금요일에는 홀로 중국음식을

by 차다

드물게 약속이 없는 금요일이다. 퇴근길 지하철 안, 단골바에 들려 위스키를 마실까 고민했지만 이내 그마저도 귀찮아졌다. 야근을 하며 준비하던 프로젝트가 리젝 되고 아침부터 쏟아진 장대비에 몹시 고단한 상태였다. 이런 날은 한없이, 최선을 다해 게을러지고 싶다.

이런 금요일의 선택은 어김없이 배달 중국음식이다.

어플의 열어 단골 식당 페이지로 이동한다. 수십 개의 요리가 화면을 채운다. 이 순간만큼은 어느 때보다 진지해진다. 5분의 고민 끝에 두 개의 요리를 선택했다. 금요일의 나태함과 함께할 음식은 우삼보, 참쌀고기완자이다.

주문을 마치고 배달이 오기 전 식탁을 정리한다. 노트북을 켜고 영화 중경삼림을 틀어놨다. 이미 세 번은 본 영화이므로 굳이 집중하지 않아도 된다. 홍콩영화 특유의 분위기와 경쾌한 음악이 저녁식사의 배경이 되어준다.

초인종이 울리고, 문 앞에는 따끈한 배달음식이 도착해 있다. 비닐봉투를 여는 순간, 기름진 불향이 새어 나온다.

우삼보와 찹쌀고기완자, 서비스로 온 마라 건두부 무침을 접시에 덜어냈다. 그리고 퇴근길에 사 온 백주를 잔에 따른다. 맑고 투명한 액체가 잔 안에서 잔잔하게 흔들리며 빛을 반사한다.

노트북에서는 중경삼림의 사운드트랙이 배경음악처럼 흐르고 있다. 왕페이의 경쾌한 움직임과 음악 California Dreamin'이 조용한 저녁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우삼보에는 업진살, 도가니, 깐양, 대파, 건고추가 들어있다. 첫 입은 업진살. 기름진 육즙과 불향이 어우러져 씹을수록 감칠맛이 진하게 번진다. 도가니는 젤라틴 특유의 미끄러움과 진득한 감촉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고추기름에 절여진 풍미와 순식간에 녹아버려 입안에 들러붙는 부드러움이 깊은 맛의 층을 이룬다. 소의 위 부분인 깐양은 업진살과 도가니와 대조되는 쫄깃한 식감이다. 씹을수록 풍미가 농축되고 묵진한 잔향이 혀끝에 남는다. 같이 볶아진 대파와 건고추가 존재감을 잃지 않고 감칠맛을 더해준다.

찹쌀고기완자를 반을 갈라 입안에 넣는다. 겉을 감싼 쫀득한 찹쌀과 고소한 고기완자가 부드럽게 씹힌다.

백주를 한 모금 들이킨다. 파인애플과 배의 달콤함이 스치고, 산뜻한 끝맛이 음식의 기름기를 깔끔하게 씻어낸다.

건두부 마라 무침은 수분이 빠진 건두부의 꼬들한 식감과 얼얼함, 매콤함이 겹겹이 밀려와 자극적인 풍미가 강하게 퍼진다.

백주와 함께 세 가지 음식이 반복적으로 들어간다.

창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Dinah Washington의 What Difference A Day Makes가 흐르고 있다.

화면에는 “편지 줘요.”라고 말하는 양조위의 얼굴이 비치고 허둥대는 왕페이의 모습이 사랑스럽게 스크린을 누빈다.

접시가 비워지고 영화는 끝이 나고 병에는 백주가 반쯤 남아있다.

California Dreamin'을 틀어놓고 배가 부른 상태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10시 30분. 느릿한 세 시간의 여운이 몸 안 어딘가에 천천히 가라앉는다. 오로지 나를 위해 허비된 시간이 포만감과 함께 침대에 녹아든다.

오늘의 나태함은 내게 가장 완벽한 위안이었다.

keyword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