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 시민의 숲. 나는 이곳을 피자숲이라 부른다. 공원 입구에 있는 지도 팻말 때문이다. 공원의 모양은 조각난 피자와 정확히 닮아있다.
“어디야?”
“저 지금 다리 건너고 있어요.”
“아, 너 보인다.”
베이지색 바지에 얇은 회색 스웨터, 부드러운 갈색 긴 머리. 건너편에서 B가 걸어오고 있다. 따스한 온도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스친다. 순간, 오늘의 날씨가 B와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항상 느껴지는 정돈된 태도와 일정한 거리감. 그 속에서 방심하듯 나타나는 다정함에서 봄의 온도가 느껴진다.
따뜻함 속에 서늘함이, 서늘함 속에 온기가 교차해야 비로소 봄이라 느낀다.
B가 지닌 한 겹 씩 교차된 온도의 간극이 되려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도 한다.
햇빛을 가려주는 큰 나무 아래, 바닥이 고른 자리를 찾아 돗자리를 펼쳤다.
“언니랑 돗자리랑 구분이 안 돼요.”
파란 꽃무늬가 있는 흰색 원피스. 집을 나설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돗자리와 똑같은 무늬다.
“아, 옷 잘못 골랐네.”
“오히려 좋은데요? 보호색 동물 같기도 하고.”
“뭐야, 그게.”
B가 가방에서 빵이 들어있는 봉투와 와인을 꺼냈다. 돗자리 위로 간단한 도시락과 과일, 간식이 놓여지자 꽤 그럴싸한 소풍의 모양새가 되었다.
B가 와인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짜잔, 오렌지와인 오는 길에 사 왔어요.”
“너무 좋은데? 오늘 분위기랑 딱이야.”
플라스틱 컵에 와인을 따르자 조금은 탁한 다홍색 액체가 찰랑거린다.
오렌지와인에는 이름과 달리 오렌지가 들어가지는 않는다. 화이트와인의 방식에 레드와인의 양조원리를 접목해 껍질과 씨가지 함께 발효하기 때문에 혼탁한 오렌지빛을 띄게 되어 이런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
내추럴와인은 첨가물 없이 자연 상태에 가장 가깝게 만든 와인이기 때문에 어느 와인을 고르냐에 따라 개성이 강하고 맛을 예측하기 어렵다. 이것 또한 봄날의 소풍과 닮아있다.
따뜻한 햇살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불어온다. 사람들의 말소리와 새의 지저귐 속에는 묘한 고요가 스며있다.
와인을 한 모금 마시자 말린 살구, 베르가못, 젖은 흙향이 느껴지고 거친 타닌이 혀끝에 남았다.
비워지는 와인병의 공간만큼 느슨함이 채워져 어느새 B와 나는 돗자리 위에 누워있다.
옆을 돌아보니 B는 선글라스를 낀 채 잠들어있다. 나는 햇빛을 가려줄 선글라스가 없었기 때문에 밀짚모자를 얼굴 위에 덮고 낮잠을 청했다.
바닥에서 냉기가 느껴져 눈을 뜨자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음막이 멈춰있다.
먼저 일어난 B가 남은 음식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부스스 몸을 일으키는 나에게 B가 말했다.
“이제 일어날까요? 좀 추워진 것 같은데.”
“그러네. 이거 마실래?”
연한 하늘색 체크무늬에 철제 손잡이가 달린 보온병을 내려다본 B가 말했다.
“따뜻한 차예요?”
“응. 히비스커스티에 위스키랑 바닐라 시럽 넣었어.”
“역시 언니야.”
시간은 오후 다섯 시를 지나 있다.
하품을 하며 돗자리에 붙은 흙과 이파리들을 털어내고 흩어졌던 물건을 제자리에 넣었다.
선글라스를 케이스에 넣고, 가방에서 꺼낸 가디건을 걸친 B가 말했다.
“한숨 잤더니 도시락 먹은 거 소화 다 됐어요.”
“근처에 내가 봐둔 하이볼바가 있는데 거기로 갈까?”
“너무 좋죠.”
B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소풍은 끝났지만 가볍게 남아있는 취기와 함께 오늘 하루는 조금 더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