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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뭉티기, 참소주

by 차다

피곤한 일주일이었다. 애매한 피로감.

힘든가?라고 생각하자면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지만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하고 베개 위를 뒤척이게 되는 날들이 더해지는 그런.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어지러운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아, 잠결에 얼마나 자세를 뒤바꿨는지 아침이 되면 목이 뻐근하게 아프다. 이런 날에는 신경이 곤두서고, 사람을 삐딱하게 만든다.


플랫폼에서 5분 정도 기다리자 서울역, 사람들의 틈바구니 사이로 마스크를 쓴 파리한 안색의 T가 걸어 나오는 게 보였다.

일주일 내내 야근과 회식을 병행하던 T는 금요일 자정, 마지막 야근의 불꽃을 피워내고 결국 몸살을 얻어낸 모양이었다.

편의점 계산대 앞에 놓인 소시지 한 움큼과 헛개수를 산 T는, 기차 좌석에 앉자마자 소시지 두 개를 먹어치웠다. 기차와 소시지에 대한 추억이라도 있나 싶었는데 곧장 약봉지를 입안에 털어 넣는 모습을 보니 그저 생존을 위한 섭취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T의 그러한 모습을 바라보며 캔맥주를 마시던 나는 어쩐지 면구스러워졌다.

안쓰러움을 가득 담아 T에게 말했다.

“가는 동안 이어폰 끼고 자도 용서해 줄게.”

“정말? 감동이야. 그래도 이어폰은 안 낄게. “

기차 안에는 톤다운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배경음악처럼 흐른다. 좌석 앞 간이 테이블 위에 올려진 커피는 얼음이 녹아듦과 함께 표면에 물방울이 맺힌다.

언제부턴가 T는 소리 없이 잠들어 있다.

기차 창 밖을 바라보면 언제나 The Chemical Brothers의 ‘Star Guitar’ 뮤비가 떠오른다.

미셸 공드리가 연출한 ‘Star Guitar’는 기차 창밖을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리듬과 정확히 맞물리는, 절묘한 구조의 영상이다. 이 뮤비를 본 후로 기차 안에서 창밖을 볼 때면 지금의 풍경에 맞춰 ‘Star Guitar’의 음절이 머릿속을 맴돈다.


대구는 생각보다 멀지 않은 느낌이다.

서대구역에 도착했다는 안내 음성이 나오자 T가 눈을 반쯤 감은 채로 몸을 일으켰다.

대구에 방문한 목적에 충실하게, 곧장 택시를 타고 식당으로 이동했다.

시간은 오후 5시. 가게가 문을 연지 얼마 안 된 터라 테이블은 대부분 비어있다.

T가 메뉴판을 펼치며 말했다.

“술은 뭘로 할까?”

“몸 상태 안 좋은데 술 마셔도 돼?”

T가 어처구니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뭉티기에 술을 안 마시는 게 말이 돼? 일부러 약도 아까 미리 먹은 건데.”

반박할 수 없는 논리적인 말에 곧장 수긍하며 T에게 말했다.

“그럼 참소주로 시키자. 대구니까.”

주문한 뭉티기와 차돌사시미, 오드레기가 차례로 테이블에 올려졌다.

대구에 오면 반드시 먹어야 하는 음식으로 손꼽히는 뭉티기는 한우 생고기를 두껍게 썰어 양념장과 함께 나온다.

고기를 입에 넣자 신선한 두께감에서 오는 쫀득한 식감과 풍부한 육향이 부드럽게 씹힌다.

평소 소주를 즐기지는 않지만 여행지에서는 메뉴에 따라 그 지역의 소주를 주문하곤 한다.

단순히 술을 마시는 행위가 아닌, 이 지역을 향유하는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차돌사시미는 기름기가 풍부한 부위 특성상 지방층의 뭉근한 탄성이 혀에 감기며 씹을수록 깊은 지방의 단맛이 느껴진다.

T와 나의 잔을 부딪히는 속도가 빨라진다.

오드레기 볶음은 대구에서 처음 접하는 음식이다. 오드레기의 소의 대동맥 부위로, 담백하게 볶아낸 쫄깃한 오드레기는 육사시미를 먹는 사이사이 꼬들한 식감으로 변주를 준다.


참소주 2병과 대부분의 접시를 비우고 식당을 나오자 T의 안색은 한결 밝아져 있다.

“소주 마시니까 컨디션 좋아진 거야?”

“그건 모르겠는데 기분은 좋아.”

만병의 근원이 덜어졌으니 T의 감기기운 또한 덜어졌으리라 생각하기로 했다.

서울과 대구의 물리적 거리만큼 애매한 상념들도 멀리 밀려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행이란 어쩌면 공간을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무게를 분리시키고 덜어내는 일일지도 모른다.

2차로 이동할 식당을 검색하며 T에게 말했다.

“다음에 또 여행 갈까?”

“좋지. 강릉은 어때?”

“강릉 좋아. 부산으로 가자.”

T가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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