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경험의 강화가 필요하다.
디지털 세계가 너무 빨리 우리 삶의 비중을 키웠다.
우리는 편리함을 얻었지만,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은 줄었다.
소속감과 연결감이 느슨해질수록, 존재에 대한 불안은 커진다.
나는 시험 때 information sheet를 허용한다.
학생 시절 암기식 공부가 버거웠던 경험 때문이다.
A4 한 페이지에 손글씨로 핵심을 정리해 가져와서, 그걸 보며 시험을 본다.
성실하기만 하다면 이 한 장이 불안을 낮춘다.
무엇을 담을지 고민하고, 여러 번 다시 쓰는 과정에서
공부는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이건 평가의 장치가 아니다.
학생들을 돕기 위한, 부담을 낮추는 장치다.
1. 점수에 과도하게 민감하다.
information sheet를 내지 않은 학생에게 “제출하라”고 하면
첫 질문이 “안 내면 감점인가요?”다.
감점이 아니라 해도, 시험이 끝난 뒤에도 다음 시간에 꼭 제출하겠다고 한다.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 모양이다.
애초에 중요한 시험 안내를 경청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큰 문제다.
‘점수를 잘 받겠다’는 목적이, 정작 시험의 본질을 가린다.
2. 규칙을 자기식으로 해석한다.
전 시간에 선배들이 작성한 샘플을 보여주고,
수기로 작성하라는 기준을 명확히 설명했다.
그런데 태블릿으로 가져오거나, A4가 아닌 작은 노트 앞뒤로 채워온다.
“왜 이렇게 했니?” 묻자,
“작은 종이라 앞뒤로 써야 했어요.” 라는 답이 돌아온다.
공정해야 할 시험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은 듯하다.
사회적 약속과 규칙에 대한 감각이 점점 둔감해지고,
각자만의 ‘해석’이 우선되는 시대다.
3. 친구들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
수업 시간에 여러 번 공지했고, 샘플도 보여줬는데
“몰라서 안 가져왔다”는 학생이 적지 않다.
시험 전 결석했다면,
중요한 공지가 있었는지 친구에게 물어보는 게 자연스러울 텐데,
그조차 하지 않는다.
심지어 어떤 학생은 지각해 중요한 부분을 놓쳤지만
묻지도 않고 그대로 시험을 본다.
중요한 정보를 나누지 않는다.
아마 친밀한 관계망이 약하다는 뜻일 것이다.
박사학위를 받고 학생들에게 지적 호기심을 유발하는 것이 재미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내가 중·고등학교 생활지도 교사처럼 느껴진다.
아침 10시 수업에 지각하는 학생이 늘고,
대부분의 학생이 긴 호흡의 수업을 견디지 못한다.
화장실을 자주 오가거나, 졸립다고 이어폰을 꽂고,
몰래 다른 온라인 강의를 듣는 경우도 있다.
초·중·고 시절부터 생활지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대학에 들어온 듯하다.
사회적 규칙을 지키거나, 맥락을 읽는 능력도 부족하다.
수업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지루하지만,
학생들의 집중력은 확실히 달라졌다.
겉보기엔 자기 개성대로 자유롭게 사는 듯 보이지만,
그 자유의 이면에는 불안이 짙다.
통제받지 않고, 어떤 세대보다 사회적 허용이 넓은 시대를 살아왔지만
아이들의 마음은 유리처럼 얇고 불안해 보인다.
이 불안은 단지 시험 때문이 아니다.
존재의 근원적 단단함이 형성되지 않았다.
디지털 세계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가족·사회·친구와의 연결감이 약해졌다.
관계 속에서 실수하고 배우는 시간이 부족했고,
그 과정에서 길러지는 정서적 내구성도 약하다.
아이를 키울 때, 부모와의 안정된 연결을 느끼는 아이는
유치원에서도 세상을 적극적으로 탐색한다.
반대로, 분리가 두려운 아이는 불안 속에서 세상을 닫는다.
안전한 연결감이 있을 때,
비로소 편안한 마음이 생기고, 학습과 성장은 촉진된다.
나는 학생들에게 말한다.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 먼저,
편안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길 바란다.”
건강한 긴장은 괜찮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의 불안,
현실을 회피하는 습관은 우리를 더 고립시킨다.
같은 교실에서조차 서로를 ‘~님’이라 부르며 거리를 두고,
먼저 말을 건네는 걸 어려워한다.
지식보다 먼저 필요한 건
“나는 이 공동체 안에서 안전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다.
그건 친구들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만 자란다.
인간의 생존은 사회와 직결되어 있다.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공동체에 안전하게 속해 있다는 감각이다.
디지털 세계는 무한한 정보를 주고
수많은 커뮤니티에 소속될 기회를 준다.
하지만 그만큼, 현실의 관계는 얇아질 위험을 안는다.
사회성은 오프라인의 상호작용 속에서
언어적·비언어적 신호를 주고받으며 체화된다.
언제든 내 마음대로 OFF 해버릴 수 있는 디지털로는 결코 배울 수 없다.
오프라인에서 사회를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세대—
그들의 마음은 생각보다 훨씬 아프다.
이 세대의 불안은 곧 큰 사회문제가 될 것이다.
‘안전함’이라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가 자리 잡지 않았다면
고차원적인 자기계발과 자아실현은 불가능하다.
디지털 세계에 의존할수록
우리는 반대로 더 단단한 오프라인 경험을 필요로 한다.
단단한 오프라인의 경험은
홀로 있어도 앞으로 나아갈 내적 동력이 된다.
마음의 두께가 유리처럼 얇은 학생들에게
이런 경험은 성장의 필수 조건이다.
학교의 의무교육을 마친 이후,
이 세대는 과연 스스로를 불편하게 만들며
어색하고 낯선 오프라인 관계를 맺으려 할까?
요즘 신입사원들의 높은 퇴사율,
그 원인 중 하나는 사회성의 결핍과
현실의 마찰을 견디지 못하는 회피 성향일지도 모른다.
디지털 시대이지만,
우리 교육은 오프라인의 강화가 절실하다.
변화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인간성의 회복이다.
오프라인의 만남, 관계 속에서 배우는 감정의 문법,
그 속에서 얻는 소속감과 연결감,
그리고 그로부터 생기는 안정감과 자기 확신—
이것이야말로 디지털 시대의 교육이 붙잡아야 할 핵심 가치다.
그러한 인재들만이 불확실한 세상을 탐험하며,
우리에게 또 다른 선물 같은 기술과 가치를 만들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