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은 고정된 것일까, 아니면 변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할 것이다.
실제로 성격은 타고난 기질 위에 형성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경험과 환경, 인간관계를 통해 일정 부분 변화해 간다.
사람은 누구나 고유한 기질을 가지고 태어난다. 누구는 감정에 민감하고, 누구는 에너지 넘치며, 또 어떤 사람은 관찰력이 예민하다. 이 기질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며, 우리의 성격의 바탕이 된다. 하지만 우리는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사회 속에서 수많은 역할과 관계를 수행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의 반응을 조정하고, 감정을 조절하고, 때로는 익숙하지 않은 행동을 반복적으로 연습하게 된다.
이처럼 사회적 맥락에서 반복되는 ‘조절’의 과정은 자연스럽게 또 하나의 자아를 만들어낸다. 심리학자 융은 이를 ‘페르소나(persona)’라 불렀다. 페르소나는 라틴어로 ‘가면’을 뜻하는 말로, 우리가 사회에서 맡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사용하는 사회적 자아를 말한다.
페르소나는 나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사회 속에서 기능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이자 전략이다. 예를 들어, 선천적으로 조용하고 내성적인 사람이 직장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회의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현하는 것은, 기질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페르소나를 적절히 활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문제는, 이 페르소나가 너무 강화되어 본래의 자아를 삼키기 시작할 때 일어난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모습에 자신을 맞추는 일이 반복되면, 자신의 욕구와 감정, 방향성이 흐릿해진다. 겉으로는 밝고 유능해 보이지만, 내면은 점점 공허해지고, 정체성의 중심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늘 긍정적이고 유능해 보여야 한다고 믿는 직장인 민수는 아무리 힘들어도 ‘괜찮다’는 말을 반복하며 웃는다. 동료들이 기대하는 모습에 자신을 맞추느라 진짜 감정을 억누르고, 쉬어야 할 때도 쉼 없이 움직인다. 그러다 결국 어느 날, "나는 도대체 왜 이러고 사는 거지?"라는 생각과 함께 모든 것이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목표를 이뤄갈수록 마음은 더 공허해졌고,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잊어버렸다.
반대로, 화려한 경력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늘 조용했던 지현은 외향적인 페르소나를 갖지 못한 자신이 뒤처진 것 같아 항상 자신을 작게 느낀다. "나는 왜 저렇게 못할까"라는 생각이 반복되며, 자신의 장점조차 인정하지 못한 채 사회적으로 실패한 사람처럼 느끼게 된다.
두 경우 모두, 페르소나를 '나'라고 착각한 데서 비롯된 고통이다. 하지만 페르소나는 배우고 사용할 수 있는 사회적 기술일 뿐,결코 나 자체가 될 수 없다.
페르소나는 나의 사회적 생존을 위한 전략이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 나와 동일시되면, 나는 점점 나 자신을 잃어간다. 중요한 것은 페르소나와 진짜 나를 구별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기르는 것이다.
그래야 페르소나를 도구로 잘 활용할 수 있고, 나다움을 기반으로 한 건강한 사회적 적응도 가능해진다.
페르소나는 필요하고 유용하다. 하지만 거기에 압도되지 않는 유연함, 그리고 그 페르소나를 조율할 수 있는 내면의 단단함이 필요하다.
그 단단함은 어디서 오는가? 바로 자기 이해에서 시작된다. 나는 어떤 기질을 지니고 태어났는가? 무엇이 나를 지치게 하고, 무엇이 나를 회복시키는가? 사람들 앞의 나와 혼자 있을 때의 나는 얼마나 닮아 있는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내면과 사회적 역할 사이의 균형을 조율해 가는 과정 바로 그것이 건강한 자기 성장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