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폐허와 남겨진 흔적

골목길 연작 에세이

by 김보리

3월 18일 인천에 갔다. 인천을 떠난 지 꼭 7년 만이었다. 홍성에서 영등포까지 기차를 타고 다시 동인천행 급행 지하철을 탔다. 제물포에서 다시 인천행 지하철을 갈아타고 도원역에서 내렸다. 도원역에 가까워지면서 창밖으로 낯선 풍경이 보였다. 언덕배기에 있던 주택 풍경 대신 흰색 휀스 너머 흙더미가 쌓여 있었다.


인천행을 택했던 것은 특별한 약속이나 일정이 있어 간 것은 아니었다. 스무 살부터 근 20년 정도 인천에 살았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홍성 역시 고향은 아니다. 일 때문에 홍성에 가게 되었고, 일이 끝난 뒤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굳이 고향이라 한다면 서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서울을 고향이라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있다 하더라도 굳이 서울을 고향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고향은 조상 대대로 살아오고, 자기가 태어난 곳을 지칭하는 단어다. 거기에 더해 고향을 떠올리면 무언가 향토적이고, 푸근한 정서를 떠올리는 것이 우리네 정서다. 하지만 서울은 도시적이고, 삭막하며, 각박함을 떠올리는 도시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요즘 들어 고향인 서울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하고는 한다. 어차피 별다른 교류 없이 조용히 살고 있는 나에게 남겨진 혼자 사는 동생과 어머니를 가까운 곳에서 돌보며 살 수 있는 곳이 서울이기 때문이다.


고향의 또 다른 의미인 마음속에 간직한 그립고 정다운 곳 정도는 아니지만 인천은 나에게 적어도 그런 곳이었다. 어디든 재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인천 역시 재개발로 곳곳이 부서져 가고 있다는 뉴스를 접했다. 내 시야와 마음에서 그곳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동네의 흔적과 기억을 찾아가고 싶은 마음에 나선 길이었다.

3월은 봄을 준비하는 달이다. 아직은 봄을 맞이하기에 충분하지 않은 달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올해 3월은 아침 기온은 영하인데 낮 기온은 20도를 넘어가면서 5월의 날씨를 보였다. 한 달 내내 미세먼지로 인한 황사 경보도 내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땅밑으로는 미처 추위를 눈치채지 못한 꽃대가 꾸역꾸역 올라오고 있었다. 수줍은 소녀의 모습이어야 하는 3월이 만개한 5월의 형색을 가진 것이다. 도원역 출구를 나와 숭의동 골목으로 들어선 순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미쳐 날뛰는 3월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숭의동은 그야말로 폐허가 되어 있었다. 전도관이라 부르던 곳은 초대 주한 미국 공사를 지낸 알렌의 여름 별장이었다. 1957년 한국예수교전도관부흥협회가 별장 건물을 헐어내고 전도관을 세웠다. 1978년 전도관이 떠나기 전까지 인천의 랜드마크 같은 곳이었다. 산꼭대기에 우뚝 솟은 직사각형의 건물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골목길에 위치한 주택들은 모두 헐리고, 전도관을 포함, 펜스 너머에는 흙더미만 쌓여 있었다. 펜스 밖 주택들과 상가들 역시 다르지 않았다. 모든 출입구에는 재개발사업 경고문이 딱지처럼 붙어 있었다. 창문은 깨지고, 문짝은 떨어져 나갔으며, 집에 있던 살림살이들이 전봇대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었다. 왕래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모두 떠나간 빈집 앞에 서서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 아무리 좌우를 살펴도 개미 새끼 한 마리 없었다. 문득 도원역에서 뒷짐을 지고 올라오는 아주머니 두 분이 보였다. 서둘러 담배를 비벼 끈 뒤 아주머니에게 다가갔다. 숭의동에 살다가 이주비를 받고 근처 동네로 이사를 했다는 아주머니는 밤이면 무서워 다니지 못한다는 말만 남기며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다.


다행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빈집 곳곳에 길고양이들을 위한 물과 사료 그릇이 놓여 있었다. 그릇에 담긴 물을 아주 천천히 마시고 있는 길고양이는 나를 의식하지 않았다. 고개도 돌리지 않고 그릇에 코를 박고 물을 음미했다. 고양이는 지치고 피곤해 보였다. 일주일 동안 중이염으로 인해 귀가 먹먹한 터였다. 귀가 먹먹해서 두통이 오는 것인지, 아니면 모든 것이 사라진 폐허가 된 동네에 있어 어지러운 건지는 모르겠다. 다만 잠시나마 살았던 동네의 흔적이 무자비하게 짓밟혔다는 난데없는 치기와 분노, 이질적이고 무례한 동네 모습에서 느껴지는 절망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계속되는 재개발의 현장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속 부서진 폐허가 하나씩 쌓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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