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연작에세이
숭의동 골목길에 전셋집을 구해 1년을 살았었다. 계약기간은 2년이었지만 채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나왔다. 사는 동안 내내 가위에 눌렸기 때문이다. 그 집은 집과 집 사이 직사각형 구조로 된 반 2층식 주택이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우측에 화장실이 있고, 계단 다섯 개를 올라가면 현관이다. 집 내부 역시 길쭉한 직사각형으로 좌측에 싱크대, 우측으로 긴 방을 둘로 구분해 방 2개를 만들었다. 외부 화장실과 집을 연결해 주는 벽체가 있기에 나머지 자투리 공간은 마당도 아니고 옥상도 아닌 공터가 있었다.
나는 이 공터가 마음에 들었다. 저녁노을이 질 무렵 의자를 놓고 앉아 있으면 선선한 바람이 하루의 고단함을 풀어주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그러나 그저 낭만에 지나지 않았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집 주변에 빨간 깃발이 펄럭이는 무당집이 삥 둘러 세 곳이나 있었다. 무슨 미신을 믿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왠지 무당집 주변에 상처 입은 귀신들이 둥둥 떠돌고 있는 것만 같은 기괴한 기분마저 들었다.
거주하고 일주일쯤 지나면서부터 온갖 알 수 없는 벌레들이 자기 집처럼 드나들었다. 날아다니는 바퀴벌레쯤은 양반이었다. 밤이면 밤마다 슬리퍼로 벌레를 때려잡기에 바빴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면 알 수 없는 기운이 들이닥쳤다. 흠칫흠칫 놀라 자다 깨다를 반복 했다. 며칠 동안 지속된 가위눌림으로 인해 집에 들어가는 일이 두려워졌다. 한 달 정도 지나 나는 이 집 저 집 잠 동냥을 하러 다닐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부동산을 통해 집을 내놓았고 이 집이 무허가 집이라는 것을 알았다. 계약을 하면서 등기부등본을 꼼꼼하게 살피지 못한 내 잘못이었다. 숭의동에 위치한 집 대부분이 무허가인 집이라는 것도 그즈음에 알게 되었다.
인천 숭의동은 변두리로 밀려난 서민들이 산비탈 골목길을 따라 주택이 형성된 동네다. 100미터를 채 가지 못해 좌우측으로 좁다란 계단과 골목들이 이어진다. 혹여 길을 잃을까 염려할 필요는 없다. 그저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다른 길이 나오거나 좀 전에 갔던 그 길과 만나기도 한다. 중간중간 동네 주민들이 생활하는데 필요한 사항들을 해결할 수 있는 작은 상점들이 있다. 목욕탕, 떡집, 이발소, 구멍가게 등이 골목 주민들에게 늘 열려 있는 사랑방이었다.
1980년에 문을 연 인일목욕탕은 오래도록 주민들의 때로 얼룩진 곳이었다. 동네 목욕탕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어릴 적 주말이 되면 어머니는 네 형제를 데리고 목욕탕에 갔다. 제일 먼저 막내 남동생을 따뜻한 물을 세숫대야에 받아 안에 집어넣었다. 다음은 내 차례다. 바가지로 물을 위에서부터 부은 다음 때타월에 비누를 묻혀 재빠르게 닦아낸 뒤 다시 물을 끼얹는다. 그리고는 탕 안으로 밀어 넣는다. 위로 큰언니와 작은언니는 나름 컸다고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둔다.
그제야 어머니는 당신 몸을 닦은 뒤 남동생을 안고 탕 안으로 들어간다. 몸이 어느 정도 불면 다시 어머니 손이 바빠진다. 큰언니와 작은언니 등을 먼저 밀어주고 나면 언니들은 목욕 의자에 각자 앉아 자신의 몸을 관찰하듯 때를 민다. 느려터진 언니들의 손짓에 어머니의 등짝 스매싱이 날아간다. 아직 어렸던 나는 어머니가 내 양팔을 잡고 때를 밀어준다. 때타월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빨간 자욱이 남는다. 그사이 남동생은 세숫대야에서 혼자 물놀이하는 것이 지쳤는지 칭얼댄다. 어머니가 요구르트에 빨대를 꽂아 내밀자 남동생의 울음이 뚝 그친다. 나도 빨대를 꽂은 요구르트를 쪽쪽 빨고 싶지만 때를 모두 밀어야만 내 차지가 될 수 있음을 알기에 묵묵히 참고 기다린다.
어머니의 성에 차지 않은 언니들의 자발적 자기 몸 성찰이 끝나기도 전에 어머니의 때밀이가 다시 시작된다. 언니들은 잔뜩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린 채 어머니에게 팔을 맡긴다. 네 명의 때밀이가 끝나야 어머니는 당신 몸 구석구석을 박박 닦아낸다. 때밀이가 끝난 우리들은 머리를 감고 후다닥 밖으로 나간다. 숨 막히는 수증기와 쭈글거리는 손바닥이 싫었다. 엉켜있는 머리카락을 그냥 둔 채 내복을 주섬주섬 입고 언니들과 킬킬거리며 평상에 누워 있는다. 어머니가 남동생을 안고 나오면 그제야 벌떡 일어나 남동생 몸에 남아 있는 물기를 닦아주고는 했다. 그래야만 삼각 포포리우유를 마실 수 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43년을 한 자리를 지켜온 인일목욕탕의 문은 부서졌고, 창틀은 한 귀퉁이가 빠진 채 흔들거렸다. 인일목욕탕을 시작으로 단골문구, 김포쌀상회, 미용실, 삼성건어물, 대왕소금, 바느질 가게, 남인천 이발관, 삼보미용실 등에도 재개발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간혹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한 차량들만이 그 골목을 지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