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

골목길 연작에세이

by 김보리

숭의동과의 인연은 작업으로 이어졌다. 남구청과 아름다운 마을 도색작업을 3년 동안 진행했다. 구청에서 신청을 받은 주택에 대한 도색작업으로 공공근로를 신청한 아저씨 3명과 함께 하는 작업이었다. 구청 담당자와 신청지 답사를 해서 디자인 작업을 하고, 페인트와 도구들을 준비해 아저씨들에게 사전교육을 했다. 미리 설명을 한다고는 했지만 대부분의 아저씨들은 도색작업이 처음인지라 어려워했다. 사다리를 타고 높은 곳에 올라가야 하는 일도 있었고, 거의 대부분 도로에서 이뤄지다 보니 물 공급도 쉽지 않았다. 상반기와 하반기 각 3개월 동안 진행된 작업에서 매번 아저씨들은 교체되었지만 거의 대부분의 아저씨들은 그들보다 나이가 어린 나를 꼬박꼬박 선생님이라 불렀다. 나도 덩달아 선생님이라 불렀다. 한 아저씨가 말했다.


-나 선생님 아닌데….

민망해진 나는 다시 김씨 아저씨, 황씨 아저씨라 불렀다.


많은 아저씨들을 만났지만 그중 한 아저씨가 기억난다. 오십 대 후반의 김씨 아저씨는 이혼 후 혼자 살고 있었다. 아저씨는 스물여섯 살에 숭의동 깡시장 근처에 있는 나이트클럽과 스탠드바에서 오르간 아저씨로 통했다. 가난했고, 배우지 못했던 아저씨는 제대 후 깡시장을 전전하며 근근하게 살던 중 아는 동생의 권유로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루 열 군데를 돌고 나면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돈벌이는 쏠쏠했다.


그러는 사이 결혼을 했고 아들도 생겼다. 번번한 직업을 가지기를 희망했던 아내의 권유로 오르간을 때려치운 뒤 아저씨는 별다른 직업을 가지지 못했다. 나의 인생이 당신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라고 아내를 원망했다. 원망은 다툼으로 이어졌고 별거를 시작했다. 인생이란 그 어느 누구의 탓이 아님을 아저씨는 모르지 않았다.


이웃의 권유로 공공근로를 신청했다는 아저씨는 몸집이 다부진 만큼 일하는 눈썰미도 있었다. 다른 두 명의 아저씨가 사다리 하나를 제대로 들지 못해 쩔쩔매고 있을 때도 사다리를 번쩍 들어 내가 말했던 위치에 정확하게 가져다 놓았다. 호기로웠던 젊은 시절, 숭의동에서 살았던 아저씨는 작업 내내 추억과 기억 사이를 헤매고 다니는 것 같았다.


구청에서 정해진 작업시간은 오후 2시까지였다. 점심은 각자가 알아서 사 먹어야 했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하는 아저씨들의 마음을 알기에 거의 대부분의 작업을 조금 일찍 시작해 12시에서 오후 1시 사이에는 마무리를 했다. 가끔은 주민들이 수고한다며 자장면을 사 주기도 했다. 어떤 날은 작업을 같이 하던 아저씨가 휴대용 버너를 가져왔다며 라면을 끓여 먹자고 했다.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 앉아 세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짜장라면을 끓여 먹었다. 국물이 있는 라면은 뒤처리가 힘드니 그나마 택한 것이 짜장라면이었던 것이다.


김씨 아저씨만큼은 좀 달랐다. 어차피 쓰려고 버는 돈이고, 집에 가도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데 이왕이면 사람들과 얼굴 쳐다보며 밥을 먹기를 원했다. 나머지 두 명의 아저씨는 아내가 있는 집에 가기를 원했다. 나 역시 집에서 혼자 밥을 먹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김씨 아저씨와 겸상하는 일은 조금은 멋쩍은 일이었다. 결국 어쩌다 구청 담당 공무원이 대접하는 식사 자리를 제외하곤 아저씨와 밥을 먹을 기회는 없었다.


작업을 하며 만났던 아저씨들은 성격도, 성향도, 일하는 품새도 달랐다. 다만 노년을 앞두고 있는 중년이라는 점은 같았다. 지금의 중년은 그냥 어른이 되기도 쉽지 않은 일인데 늙어가는 노년을 걱정하고 준비해야만 한다.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폭넓은 아량과 이해로 모든 것을 감싸주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말 한마디에 속 좁게 토라지기 일쑤고, 별 대수롭지 않은 일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하며, 사나흘에 한 번씩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들뜬 기분이 들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중년은 그랬다. 그리고 중년이 된 지금, 실제로 거의 대부분이 그러함에 가끔은 절망하기도 한다.


아저씨들 세 명이 모이면 나름 서열이 정해진다. 가장 노동 일을 잘하는 아저씨가 일 순위가 됨은 당연하다. 그 뒤로 나머지 두 명의 아저씨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순위 다툼을 했다. 그러나 흔히 생각하는 치열한 경쟁 같은 것은 없었기에 너나 나나 거기서 거기다, 라는 식으로 넘어갔다. 아주 가끔은 일 순위 아저씨가 과도하게 두 아저씨를 부려 먹는 통에 싸움이 나기도 했다. 서열에 대한 개념이 없는 나로서는 난감한 노릇이었다. 그저 멱살을 잡고 몸싸움만 일어나지만 않는다면 굳이 그 작은 계급사회를 부정하거나 무너뜨릴 가오나 용기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저씨들은 매일매일 힘든 도색작업을 하면서 꾀를 부리거나 투정 부리지 않았다. 어쩌면 3개월이라는 정해진 기간이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아침이 되면 밥 먹고 출근하고, 점심이 되면 또 밥을 먹고 일하고, 저녁이면 다시 밥을 먹고 잠을 잔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그 하루가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든다. 원만한 직장생활, 편안한 노후, 별다른 문제없는 결혼 생활, 이런 것들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범한 삶이다. 그 평범함이 때로는 위대함이 되기도 한다. 아저씨들의 그 소소한 평범함이 작업을 하는 내내 나에게 삶이라는 직업을 생각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