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것 아니지만 by 보리
열여덟 살은 내게 길고도 긴 삶이 시작되던 해였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 맞은편은 이른바 달동네였다.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이 도로를 사이에 두고 훤히 보인다. 길 하나를 두고 오른쪽은 달동네, 왼쪽은 이층 집이다. 열여덟 살 나에게 그 길은 삶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하굣길에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뒤로하고 의문의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달동네는 낯설지 않았다. 집 앞에 가득 쌓인 하얀 연탄재, 고양이가 할퀴어 뜯어진 쓰레기들, 구멍 난 방충망 사이로 보이는 익숙한 방안 풍경에는 누런 러닝셔츠를 입고 아저씨가 드러누워 있었다. 녹이 슬어 삐걱거리는 대문 앞에는 여지없이 노인이 구부정하게 앉아 있었다.
다음날은 이층 집이 있는 골목을 갔다. 대문은 굳게 닫혀 있고, 담장 너머로 하얗고, 붉은 꽃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단조로움과 권태로움이 지배했다. 삶의 모순을 이틀 만에 본 기분이었다.
이 일은 내게 삶에 대한 핑곗거리를 만들었다. 고등학생이지만 술을 조금은 마셔도 되지 않을까 하는, 그리고 담배를 피워도 되지 않을까 하는 핑계 말이다. 물론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술은 친구 집에 가서 친구 어머니가 담근 과일주를 홀짝거리다가 말았고, 청소년의 신분으로 담배를 사는 것이 어려워 피우고 싶어도 못 피웠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진학하면서 까치 담배를 샀다. 학교 후문 버스정류장 앞에는 딱 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매표소가 있었다. 아저씨는 작은 종이에 담배 3개비를 말아 100원에 팔았다. 넉넉하지 않은 호주머니 사정으로 늘 까치 담배를 샀다. 다방에서 얻어온 성냥을 꺼내 불을 켰다. 진한 황 냄새가 코를 찌른다.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깊게 빨았다. 하얀 연기가 코에서 나와 공기 속으로 흩어진다. 하지만 가슴에 쌓여있던 삶에 대한 의문들은 그대로 폐 안에 고이 간직됐다.
그 뒤로 학교 내에서 담배를 대놓고 피웠다. 당시만 해도 여성의 흡연은 공공화되지 못했고 실내 흡연 금지가 엄격하게 지켜지던 시절이 아니었다. 학생회관에서, 잔디밭에서, 술집에서 선배들과 술을 마시며 사이좋게 피웠다. 종종 ‘여자’가, 라는 시선을 받기는 했다. 무시했다. 대신 째려봤다.
청자, 백자, 장미, 은하수, 청솔, 백솔 등 시대에 따라 담배의 종류와 맛도 변했다. 내 입맛에 가장 맞았던 담배는 은하수였다. 담배의 독한 맛과 흡입력, 아릿한 담뱃잎 냄새가 적당했다. 백자와 장미는 잎 냄새가 너무 강했다. 청자는 담배의 독한 맛이 컸다. 청솔과 백솔은 무난했다. 물론 모두 내 기준에 따른 것이다. 시대가 지나면서 수입담배가 들어오고 담배의 니코틴 함량과 타르 수치가 낮아졌다. 여성 흡연율이 늘어나면서 순한 맛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지금도 간혹 ‘담배를 왜 피우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이제는 핑곗거리가 아닌 습관이다. 마치 습관처럼 커피를 마시는 것처럼 말이다. 한 마리로 말하면 담배도 기호식품이다. 누군가는 담배를 피우며 인생의 멋과 맛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멋과 맛까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담배를 피우는 동안에는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 하얀 연기와 함께 배출되며,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숨 고르기를 할 수 있는 몇 초의 시간이 주어진다. 그 찰나의 시간을 즐기기 위해 담뱃갑에서 담배를 꺼내 이제는 성냥이 아닌 라이터로 불을 붙인다.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입을 오므려 도넛을 만든다. 인생처럼 사라져 버리는 도넛을 물끄러미 쳐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