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를 켜라

별 것 아니지만 by 보리

by 김보리


오후 3시가 되면 부엌으로 햇살이 가득 들어온다. 애옥한 부엌살림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이다. 라디오를 켠다. 이리저리 주파수를 맞춰본다. 지방이라 몇 안 되는 주파수에 세상의 소리를 듣는다.


중고등학교 시절 언니와 나는 라디오 듣기를 좋아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밖으로 소리가 안 나가도록 집중해서 들었다. 부모님에게 공부는 안 하고 라디오 듣는다고 혼날까 지레 겁먹어서다. DJ의 멘트에 깔깔 웃고 흘러나오는 음악에 감상에 젖었다. 가끔은 사연도 보냈다. 사연이 소개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가끔 보내서 그런가? 그래도 예쁜엽서공모전에는 한 번 당선이 되었다. 엽서에 무엇을 그렸는지 어떤 내용을 적었는지는 너무나 까마득해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다만 언니와 함께 엽서공모전 전시회에 갔다 온 것만은 기억한다.


혼자 살다보면 가끔은 타인의 목소리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나 혼자 산다> 예능프로그램에 나오는 1인 가구를 보면 출연자들이 혼자서도 주저리주저리 말한다. 방송 분량을 챙기기 위해서겠지만 혼자 살면서 혼잣말을 하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싶다. 기껏해야 어디서 들어왔는지 모르는 짚신벌레가 재빨리 기어갈 때 어머나 하고 외치는 정도가 혼잣말의 전부다. 그러다보니 어떤 날은 종일 한마디도 안 한 적도 있다. 물론 대인기피증은 아니다. 어쩌다 그렇다는 얘기다. 그럴 때면 라디오를 통해 들려오는 세상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무엇보다 라디오의 가장 좋은 점은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어디서든 자유롭게 들을 수 있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카세트테이프, 시디, 턴테이블, 오디오 등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기였다. 기기가 무엇이건 간에 그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들의 노래를 듣는 것은 단순히 음악을 듣는다는 행위를 넘어 세상과 나 사이를 흐르는 일종의 경계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그 중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는 노래가 있다.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지하철에서 내려 집까지 가려면 20분 정도를 걸어야 했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보면 어느새 시장이 나오고 주택가를 지나면 4차선 대로가 나온다. 다시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 가파른 경사를 오르면 비로소 집이다. 시장을 지날 때였다. 슈퍼마켓에서 틀어놓은 라디오 소리가 대로변에 울렸다. 허스키하고 갈라진 목소리로 뱉어내는 내 세상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울림만큼은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세상을 너무나 모른다고/나보고 그대는 얘기하지/조금은 걱정된 눈빛으로/조금은 미안한 웃음으로/그래 아마 난 세상을 모르나봐/혼자 이렇게 먼 길을 떠났나봐/하지만 후횐 없지 울며 웃던 모든 꿈/그것만이 내 세상/하지만 후횐 없어 찾아 헤맨 모든 꿈/그것만이 내 세상/그것만이 내 세상/세상을 너무나 모른다고/나 또한 너에게 얘기하지/조금은 걱정된 눈빛으로/조금은 미안한 웃음으로/그래 아마 난 세상을 모르나봐/혼자 그렇게 그 길에 남았나봐/하지만 후횐 없지 울며 웃던 모든 꿈/그것만이 내 세상/하지만 후횐 없어 가꿔왔던 모든 꿈/그것만이 내 세상/그것만이 내 세상

그때의 내 꿈은 무엇이었을까. 그 꿈을 찾아 아직도 헤매고 있다면 그리고 후회하지 않는다면 나는 나의 세상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을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적어도 나의 작은 집에서만큼은 내 세상이 구축되어 있으니 불행 중 다행이다 싶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 라디오를 켜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창밖을 본다. 까치 한 마리가 나뭇가지 하나를 가지고 씨름하고 있다. 둥지를 만들려고 가져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작은 생명체의 부지런한 움직임에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아직은 살아갈만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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